흑인 인어공주에게 벌어진 일 [낫 유어 에리얼②]

편집자 주 : [낫 유어 에리얼]은 흑인 인어공주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쓴 ‘나의 에리얼이 아니다’(#NotMyAriel) 해시태그를 뒤집어 ‘너의 에리얼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쓴 제목입니다. 나의 에리얼은 백인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타당한지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흑인 인어공주에게 벌어진 일 [낫 유어 에리얼②]
영화 ‘인어공주’ 예고편. 월트디즈니스튜디오 유튜브 캡처

변화는 진통과 함께 찾아온다. 디즈니 실사 영화 ‘인어공주’(감독 롭 마샬)의 주인공 에리얼로 발탁된 아프리카계 미국 배우 핼리 베일리를 둘러싼 공방이 뜨겁다. 흑인 인어공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발이 거세서다. 캐스팅 공개 후 온라인에서 해시태그 ‘나의 에리얼이 아니다’(#NotMyAriel)를 단 글이 퍼지자, 베일리를 옹호하는 쪽에선 ‘흑인 소녀의 마법’(#blackgirlmagic)과 ‘대표성은 중요하다’(#representationmatters)는 해시태그로 맞섰다.

“그녀도 나처럼…” 소녀들이 감격한 이유

실사 영화 캐스팅에 반대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1989년 개봉한 동명 애니메이션 속 에리얼이 백인으로 설정됐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에서 2억3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크게 흥행하자, 흰 피부와 푸른 눈을 가진 작품 속 에리얼이 인어공주의 원형으로 여겨졌다. 디즈니가 지난달 10일 유튜브에 공개한 실사 버전 ‘인어공주’ 예고편 댓글창은 캐스팅 찬반론자들의 싸움판이 됐다. 유튜브는 해당 영상의 싫어요 수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지만, 이미 150만 건 넘게 싫어요가 눌렸다고 포브스 등 현지 언론은 설명했다. 급기야 한 트위터 이용자는 예고편 속 베일리의 피부를 희게 바꾼 영상을 제작해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이 누리꾼은 “교육적 목적”을 강조했지만, 트위터 측은 그가 이용 정책을 위반했다며 계정을 정지시켰다.

반대편에선 흑인 인어공주를 반기는 라틴·아프리카계 소녀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TV로 ‘인어공주’ 예고편을 보던 3세 소녀 에머리는 베일리가 화면에 등장하자 어머니를 향해 “그가 나처럼 브라운(갈색 피부)인 것 같다”고 재잘대며 웃었다. 4세인 맥켄지는 자기 아버지처럼 머리카락을 굵게 땋은 베일리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반응을 전하며 “아이들이 기뻐서 비명을 지르고, 춤을 추고, 눈물을 흘리고, ‘그녀도 나처럼 갈색이야’라고 외치는 영상이 입소문을 타고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흑인 엄마들은 (흑인 인어공주라는) 새로운 렌즈를 통해 어린 시절을 다시 체험할 수 있었다”고 짚었다. 영상을 본 베일리는 “내가 어렸을 때 흑인 인어공주를 볼 수 있었으면 내 인생관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며 “예고편을 시청하는 소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척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흑인 인어공주에게 벌어진 일 [낫 유어 에리얼②]
1992~1994년 CBS에서 방영된 ‘인어공주’ 애니메이션 시리즈 속 라틴계 인어 가브리엘라. 유튜브 캡처 

인어공주는 ‘원래’ 하얗다?…“인어공주는 늘 흑인이었다”

논쟁이 격해지면서 흑인 인어공주가 과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보수 성향을 가진 미국 온라인 정치 평론가 맷 멀시의 의견이다. 그는 팟캐스트 ‘맷 멀시 쇼’에서 “과학적으로 피부가 어두운 사람이 깊은 바다에 사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심해 생물은 반투명하다. 색소가 전혀 없다. 인어공주는 창백한 수준을 넘어 반투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SNS에서도 “할리우드가 전통적인 백인 캐릭터를 흑인으로 바꾸고 있다. 할리우드 방식대로 표현하면 이건 ‘백인 지우기’”라며 “블랙 팬서를 백인이 연기하면 끔찍한 인종차별이 된다. 그런데 흑인 배우가 연기하는 인어공주에 불평해도 인종차별이라고 불린다”고 불평했다.

멀시의 논리는 온라인에서 즉각 조롱거리가 됐다. 롤링스톤은 멀시의 주장을 소개한 기사에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인어의 역사적 정확성을 우려한다”는 제목을 붙였다. 실재하지 않는 인어공주를 두고 ‘흑인 인어공주는 비과학적’이라고 주장한 대목을 비꼰 것이다. 미국 웹진 34번가는 “블랙팬서, 뮬란, 모아나 등 (백인이 아닌) 캐릭터들의 경험은 그들의 문화·인종적 환경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 캐릭터들에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문제인 이유”라고 꼬집었다. 쿠바 출신 소설가 트레이시 바티스트는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인어는 항상 흑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미 카리브해와 서아프리카 지역 구전 설화에 마마 들루 등 인어가 등장했다면서 “안데르센이나 디즈니가 ‘인어공주’를 만들기 훨씬 전부터 검은 인어는 항상 존재해왔다”고 짚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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