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힘들죠”… 물어줄 사람이 없다 [매일 36.1명이 떠난다②]

자살률 십 수년째 1위인데 예방 예산은 일본 160분의 1
상담전화 응답률 57.9%… “인력 충원 절실”
자살 고위험군 ‘유가족’, 몰라서 지원 못 받는 경우 대다수 

36.1명. 2020년 매일 우리 곁을 떠난 자살 사망자 숫자다. 그해 10만명 중 25.7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0.9명)보다 2.3배 많다. 십수 년째 1위다. 과연 우리 사회는 자살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사회적 안전망을 더 촘촘히 짜고 있을까. 쿠키뉴스가 살펴봤다.

“많이 힘들죠”… 물어줄 사람이 없다 [매일 36.1명이 떠난다②]
그래픽=이해영 디자이너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또 차지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간한 ‘2022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전년 대비 1.2배 감소했으나 자살률은 OECD 회원국 평균(11명)보다 2.2배 높다.

자살예방을 위해 많은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됐지만,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메워야 할 빈틈이 여전히 많다. 현장에선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탓에 자살 고위험군 구조에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22 자살예방 예산 451억원… 총지출의 0.044% 불과

보건복지부가 올해 자살예방을 위해 편성한 예산은 총지출(101조4100억원)의 약 0.044%인 451억원에 불과했다.

복지부가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도 정부 예산안 중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에 편성된 돈은 451억2300만원이다. 세부적으로 △자살고위험군 발굴·지원 166억8400만원 △자살예방 사업 운영 및 센터 지원 143억8800만원 △자살예방교육 및 홍보 활성화 28억1300만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운영 67억8700만원 △1393 자살예방상담전화 운영 44억5100만원 등이 편성됐다.

이는 일본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다. 생명운동연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일본의 자살예방 관련 예산은 6조7033억원으로 한국보다 160배 많은 수준이다. 연간 인구 1인당 자살 예방 예산은 한국은 805원인데 비해 일본은 5만3180원에 달한다.

지자체 자살예방 예산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허억 가천대 안전교육연수원장이 국회자살예방포럼을 통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자체의 자살예방 예산은 총예산인 242조원의 약 0.017%인 414억9620만원에 그쳤다. 평균으로 따지면 지자체당 약 1억81120만원에 불과한 셈이다. 

자살예방인력도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내부 조직 공무원은 인구 10만명당 약 1.87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0.39명은 비정규직 노동자다. 외부 자살예방센터 직원은 지자체 평균 7.11명이 근무하는데, 여기서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3.14명은 비정규직이다.

“모든 상담사가 통화 중”… 자살예방 핫라인 ‘빨간불’

복지부는 위기상황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1393 자살예방상담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10명 중 4명은 상담사와 통화조차 하지 못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1 회계연도 결산 위원회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자살예방 상담전화의 평균 인입건수(응대성공+미응대 건수)는 3년만에 20배 증가했다. 2018년 762건에서 2020년 1만5395건으로, 상담 전화의 수요가 급증했다.

그러나 2018~2022년 실제 상담이 이뤄진 건수는 57.9%에 불과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상담 건수가 증가한 2020년 9월에는 상담전화 응대율이 29.4%까지 하락했다.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는 데 한계에 봉착한 모습이다. 이에 복지부는 상담사 정원을 80명까지 확대하기로 했지만 인원 충원이 어려운 모양새다. 10차례 모집공고를 냈으나 모집 인원 대비 신규 채용인원을 충족한 적이 없었다. 지난 6월 기준 자살예방 상담전화 재직인원은 56명으로, 정원의 70%밖에 채우지 못했다. 

“많이 힘들죠”… 물어줄 사람이 없다 [매일 36.1명이 떠난다②]
그래픽=이해영 디자이너

자살예방전화 인력을 구하지 못한 탓에 주무 부처인 복지부는 지난해 자살예방사업에 책정된 예산조차 모두 쓰지 못했다. 자살예방 상담전화 운영체계 개선에 편성된 예산은 46억6400만원이었으나 2억4200만원을 남겼다.

구인난의 배경에는 상담사의 과도한 업무량, 고강도의 감정노동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상담전화 수요는 느는데, 그만큼 인력이 충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담사들은 양질의 자살예방 상담이 이뤄지기 위해선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3월까지 자살예방 상담전화에서 자원봉사를 한 조모(47)씨는 “한 번은 자살시도를 하기 직전의 위기상황에 내몰린 분과 통화한 적이 있다. 1시간30분동안 전화를 하며 소방·경찰을 출동시켜 막은 적이 있다. 전화를 하며 심적인 부담이 상당히 컸는데, 인력이 부족해 전화를 끊자마자 3분만에 다른 전화를 받아야 했다”고 토로했다.

양모(51)씨는 “자살예방 상담사 정원인 80명이 아직까지 충원되지 않고 있다. 3교대 근무, 고강도의 감정노동 등으로 피로도가 높아 퇴사율도 높다. 임금도 낮은 수준이라 인원 충원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상담사들의 심리상담 지원도 지난해에 이벤트성으로 이뤄진 것이 전부다. 고강도의 감정노동을 하는 상담사들이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담 지원이 전무한 셈이다. 양모씨는 “지난해 연차가 높은 순으로 힐링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정례화된 게 아니라 올해는 예정된 지원 프로그램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상담사 임금 상승 등 처우 개선, 인력 충원 함께 이뤄져야 질 높은 자살예방 상담도 담보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가족 지원 사업 참여율 ‘저조’… “정책 홍보 필요”

자살 유가족 지원 역시 자살예방 사업의 큰 축이다. 자살 유가족 10명 중 6명이 자살 고위험군이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발표한 ‘2015∼2021년 심리부검 면담분석 결과’에 따르면 면담에 참여한 유족 952명 중 566명(59.5%)은 자살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유족 83.3%가 우울 증상을 경험했고, 이 중 60.9%는 중증 이상의 우울 상태였다. 

특히 심리부검 대상 자살사망자의 42.8%(343명)는 생존 당시 자살로 가족, 지인을 잃은 자살 유족이었다. 자살시도자뿐 아니라 유족에 대한 사후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이 확인됐다. 

유가족 지원 사업에는 자살 유가족 원스톱 서비스, 자살 사후대응사업, 자살유족지원체계 구축 등이 있다. 자살 유족이 발생하면 경찰·소방이나 주민센터 등이 자살예방센터에 연락하고, 원스톱서비스 전담팀이 유족에게 받을 수 있는 도움에 대해 설명하고 서비스 제공 동의를 받는 방식이다. 

애도 상담과 자조모임 같은 심리 지원부터 법률·행정 처리(최대 70만원), 특수청소(최대 80만원), 학자금(최대 140만원), 일시 쉼터 이용(최대 200만원) 등의 지원도 이뤄진다.

그러나 현장에선 유가족 지원 사업을 이용하는 경우가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살 유가족 자조모임 리더를 맡고 있는 조동연(47) 동료지원활동가는 “자살 유가족들은 대개 사별한 뒤 죄책감을 느끼고 지인들에게 숨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조차 인식을 못하는 분들이 많다”고 밝혔다.

자살 유가족 원스톱 지원 서비스의 허점도 지적했다. 그는 “자살 유가족 지원 사업이 있지만 이를 알지 못해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원스톱 지원서비스가 생겼지만 대상자 대비 유입률이 15% 정도에 그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경찰 조사 중 유족에게 안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지면 참여율이 늘어날 텐데, 조사가 끝난 뒤 연락처만 주는 경우 희망자가 줄어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가족 지원 서비스 자체는 잘 갖춰져 있다. 그러나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지원받으려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면서 “유가족이 자살 고위험군인 만큼 지원을 강화하고, 정책 홍보 등을 통해 많은 유가족들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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