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민우가 빠진 착각 [‘우영우’ 신드롬⑦]

권민우가 빠진 착각 [‘우영우’ 신드롬⑦]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권민우(주종혁).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권민우(주종혁)는 스스로를 가엽게 여긴다. 그에게는 우영우(박은빈) 같은 천재적인 두뇌가 없다. 대형 로펌에 입사시켜줄 ‘빽’도 없다. 하다못해 차에 딱 하나 남은 자리마저 허락되지 않는다. 권민우는 부르짖는다. “이 게임은 공정하지 않아요. 우영우(박은빈)는 매번 우리를 이기는데 정작 우리는 우영우를 공격하면 안 돼요, 왜? 자폐인이니까. 우영우가 약자라는 거, 그거 다 착각이에요.”

그러나 권민우는 외면한다. 천재적인 두뇌로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서 만점 가까운 점수를 받은 우영우가 ‘빽’ 없이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현실을. 최수연(하윤경)이 말했듯 “네 성적으로 아무데도 못 가는 게 차별이고 부정이고 비리”라는 지적을. 우영우에게 택시를 잡는 일은 자신이나 최수연보다 훨씬 더 어려우리라는 예상을. 우영우를 약자로 만드는 것은 그의 장애가 아니라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라는 사실을, 권민우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가 외치는 공정은 구조적 차별을 은폐하기에 기만적이다.

서번트 증후군이 아닌, 현실의 대다수 우영우들은 어떤가. 서울대 로스쿨은커녕 대학교 문턱을 밟기도 어렵다. 교육부가 낸 2022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특수교육 대상자 중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20%에 그쳤다. 전체 고등학교 졸업자의 대학 진학률(73.7%)에 크게 못 미친다. 특수학교 등 장애인 교육기관과 교육인력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24조엔 “장애인의 교육받을 권리를 차별 없이 실현하기 위해 통합된 교육제도와 평생교육을 보장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제24조)고 명시됐지만, 관련 기반이 부족해 통합 교육은 꿈도 꾸기 어렵다.

낮은 학력은 노동 시장에서의 소외로, 결국 빈곤으로 이어진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를 보면 월평균 총 가구 소득이 200만원 미만인 장애인 비율은 59%다. 같은 해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현황에서도 장애인 가구 수급자 비율(19.1%)이 전체 세대(7.4%)의 두 배를 훌쩍 넘었다. 마땅히 작동해야 할 장애인 보호 시스템에 구멍이 난 결과다. 그래서 ‘고스펙자인 우영우가 인맥 없인 취업하지 못한 것 자체가 장애인 차별’이라는 지적은 타당하지만 충분하진 못하다. 대부분의 장애인은 교육받을 권리도, 노동할 기회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민우가 빠진 착각 [‘우영우’ 신드롬⑦]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난 26일 공개한 만평. 전장연 SNS 캡처

“우영우는 장애의 아픔을 딛고 남을 돕고 배려하지만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은 장애를 이용해 서민들이 이용하는 지하철 막고 피해를 주잖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출근길 지하철 타기 투쟁을 벌이는 전장연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자신들 상황을 비교한 만평에 달린 댓글이다. 이 댓글은 포털사이트에서 1000명 넘는 누리꾼들에게 동의를 얻어 베스트 댓글이 됐다. 하지만 이 댓글은 지하철 등 공공 교통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현실을 외면한다. 장애인 이동권은 그들의 교육권, 나아가 생존권과 직결된다는 사실에도 눈을 돌린다. 불평등한 구조를 보지 않은 채 기계적 평등만을 외치는 권민우와 다르지 않다.

우영우를 향한 권민우의 적대감이 심화된 7회 방송 이후 SNS에선 “사람들은 대부분 권모술수 권민우처럼 살면서 본인이 봄날의 햇살 최수연인 줄 안다”는 글이 2만 번 넘게 공유되며 공감을 얻었다. 비장애인에게 알맞게 설계된 사회에서 권민우처럼 말하긴 쉽지만 최수연처럼 실천하긴 어렵다. 당장 출근길 지하철이 지연되면, 권민우가 그랬듯 “도둑맞은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우영우와 전장연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 자기 몫의 권리를 되찾으려 할 뿐이다. 숫자가 더 많다는 이유로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소외시키는 사회는 정상도, 정의도 아니란 사실은 쉽게 잊힌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직시하는 것. 드라마 속 권민우에게 가장 필요한 일 아닐까.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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