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지 않았다”…청년들의 사연  

[자살예방의날①] 2030세대, 금전·경제 문제에 ‘정신적 어려움’ 덮쳐

<편집자주> 2020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한국에서 연간 극단적 선택 사망자 수는 1만3799명으로, 하루에 37.8명꼴이다. 우려되는 점은 젊은층에서의 자살 시도와 자살 사망자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30대에게 집중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불안 요인,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등은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끼친다. 9월 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국내 실태를 분석하고 청춘들의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짚어본다. 

20대 이모씨 “알바로 생계유지, 삶에 대한 허무함 들었다”


응급실 내원 시도자 중 20‧30대 압도적


‘도움’ 청하고자 극단 시도 


“살고 싶지 않았다”…청년들의 사연  
이미지=양승연 디자이너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이모씨(28‧여)는 약 5년전 처음으로 극단적 시도를 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경제적 스트레스, 외로움은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이어졌고 증상이 심화되면서 죽음을 생각하게 됐다. 

서비스 직종으로 취업에 성공하면서 점차 나아지는 듯 했지만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마음 한켠에 남아있던 작은 불씨가 되살아났다. 어느 순간부터는 예능 프로그램을 봐도 눈물부터 쏟아져 결국 직장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증상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번듯한 직장도 아니고 아르바이트로 생계유지를 하고 있으니 불안했죠. 가족도 친구도 있었지만 정작 제 상황을 말할 사람은 없었어요. 내 심정을 이해해줄까, 공감해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우울감은 더 심해졌고 삶에 대한 허무함이 들면서 살고 싶지 않아졌어요. 그래서 주방에서 도구를 가져와서 시도를 했죠. 아프더라고요. 아프지 않았다면 계속 시도했을 것 같았어요.” 

다행히 이씨는 용기 내어 친언니에게 자신의 상태를 전했다. 부정적인 인식 탓에 가고 싶지 않았던 정신과도 내원했다. ‘살고 싶어서’ 간 것은 아니었다. 살아야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것이었다. 

주치의는 이씨에게 우울증 진단을 내리고, 극단적 생각이 들 경우 지체 없이 응급실에 내원해 도움을 받으라고 전했다. 이씨는 “현재 1~2주에 한 두 번씩 내원해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가끔씩 불안하고 외로워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증상이 많이 호전됐다. 돌아보면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꼭 한명씩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살고 싶지 않았다”…청년들의 사연  
이희정 디자이너

◇젊은층 극단 선택 늘어…우울‧불안 증가 

최근 20‧30대 젊은층들의 극단적 선택이 늘고 있다. 사회활동이 가장 활발해야 할 연령대이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 경제난, 사회적 고립감 등이 가중되면서 도움의 손길을 요청조차 하지 못한 채 안타까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취업시장 전망이 한층 더 불투명해지고 금전‧경제 문제도 심화되는 한편 우울증 환자도 늘고 있어 젊은 세대들에 대한 높은 관심이 요구된다. 

자살예방사업을 진행하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20‧30대 자살사망자 수는 3220명으로 전체 자살사망자 수(1만3018명)의 23%를 차지했다. 20‧30대 여성의 주요 자살 원인은 ‘정신적 어려움’이었고, 남성의 경우 20대는 정신적 어려움, 30대는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또 20대 남성은 다른 연령대보다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인한 자살 비율이 높았다.  

같은 기간 20·30대의 ‘자살 시도’는 전체(2만1545명)의 37.8%에 달했다. 특히 20대(23%)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지난해 자살시도자는 2만2572명이었는데, 20대(28.3%), 3~40대(각 14.7%, 14.6%), 50대(13.0%), 10대(12.3%), 60대, 70대, 80대 순으로 많았다. 젊은층의 자살 시도 동기는 ‘정신질환’이 가장 많았고 이어 대인관계, 말다툼 순으로 나타나 정신건강관련 문제가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우울감이나 불안감 같은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2분기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6월 기준 20대와 30대의 우울 평균점수는 각각 5.8점과 5.6점으로 전체 평균(5.0점)보다 높았다. 우울 위험군 비율도 20대가 24.3%, 30대가 22.6%로 50대‧60대(각각 13.5%)에 비해 1.5배 이상 높았다.

‘자살 생각 비율’ 역시 20대가 17.52%로 가장 높았고 30대가 14.65%로 그 뒤를 이었다. 전체 평균은 12.41%이었다. 

하지만 심리적 어려움을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 없다고 대답한 비율은, 정신건강 고위험군이 높게 나타난 30대, 20대에서 각각 12.6%, 11.1% 순으로 다른 연령대(40대 6.0%, 50대 5.6%, 60대 7.9%)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기분장애(우울증)로 병원을 찾은 환자도 늘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기분장애(우울증)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9년 96만3239명에서 2020년 101만6727명으로 5.6% 늘었다. 특히 20대 환자는 2만9551명 늘어 20.9%나 급증했고, 지난해 전체 우울증 환자 중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연령대도 20대(16.8%)로 나타났다. 

◇경제 문제 스트레스로 작용, 기댈 곳 없어 괴로움 증폭 

취업 스트레스, 경제 상황 등은 20‧30세대들의 ‘마음의 병’을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 금융소비자 보호재단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재무 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 및 학대 문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 가운데 스트레스·불안감과 우울감·우울증 경험을 호소한 연령대는 30대가 가장 많았고, 이로 인해 자해 또는 자살관련 생각을 했다고 응답한 연령대는 20대 4.3%, 30대 4.2%순이었다.

실제로 소득 대비 가계대출 비율은 20대의 경우 150%이하 대, 30대는 200%이상 대의 비율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지난해부터 모든 연령대에서 주택담보대출금 잔액 비율이 90%를 넘어섰다. 투자행위도 증가했다. 지난해 ‘주식’ 신규 이용자와 올해 1분기 비트코인 신규 이용자의 중 20·30대의 비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며, 30대의 경우 비트코인 예치금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다. 

게다가 20대는 직업적 경제활동에 대한 어려움도 존재한다. 지난해 전체 자살시도자의 직업별 현황을 보면, 무직이 38% 가장 많았고 이어 학생/재수생 18.2%, 가사/주부 등 15.8%, 서비스/판매 10.7% 순이었다.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은 “지금의 2030대들은 불안정한 고용시장으로 인해 공무원 시험에 몰리고, 여윳돈이 아닌 전 재산을 털어 주식이나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그로 인해 심리적 불안감이 심화되는 한편 경제적으로 더 취약해지고 있다”면서 “보통 정서적 지지는 가족에게 받는 경우가 많은데 2030대를 중심으로 1인가구가 늘어나다보니 외로움, 고독감이 증폭되며 안타까운 선택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30대 자살의 원인을 개인적 사유, 개인적 병인으로만 볼게 아니라 지금의 사회경제적 환경이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적인지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홧김에 그랬다”…‘헬프 미’ 요청 사인으로 극단 시도

주목할 점은 자살 시도에 대한 진정성이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하 재단)이 최근 발표한 ‘2020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 결과를 보면, 젊은층의 경우 자살시도를 통해서 “정말 죽으려고 했다”(20대 24.7%, 30대 29.1%)고 응답한 비율보다 “도움을 얻으려고 했다”(20대 39.0%, 30대 36.6%)고 응답한 비율이 더 높아 주변인의 도움을 받고 싶은 이면이 숨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 사업’과 ‘24시간 정신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시보라매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시도자들 가운데서도 20‧30대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대부분 치명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 스스로 내원하거나 가족, 지인 등의 도움으로 병원 찾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 

송경준 서울시보라매병원 응급의학과장은 “우리 병원만 보면 한 달에 100여명 정도, 하루에 3~5명 정도의 시도자가 내원하는데 20‧30대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20대와 여성이 많다”면서도 “자살사망자로 보면 노인층이 많다. 이는 돌아가실 정도로 시도를 한다는 얘기이다. 20‧30대의 경우 시도는 하지만 아주 치명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응급실에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송 과장은 “이들은 경제, 취업, 가족, 연애 등 굉장히 여러 문제들로 인해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꼭 죽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너무 힘들어서 홧김에 그랬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응급환자를 많이 봐온 응급의학과 교수로서는 그 말이 ‘저 좀 도와주세요. 헬프 미(help me)’라는 말로 해석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살이라는 것은 총제적인 사회 흐름이나 현상이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즉 젊은층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20‧30대들도 너무 한 포인트에 집중해서 좁은 시야로 보고 섣부르게 결정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어렵다고 느낄 때면 주변에 대화를 요청하고 의견을 듣는 과정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에 도움을 요청할 곳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황 이사장은 “20대는 ‘도움을 얻으려고 했던 행동’으로 자살시도를 하고 있다”면서 “지금 2030대 자살시도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이후 4050대 자살 사망을 예방하는 골든타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살시도자의 자살률은 일반인구 자살사망률의 약 25배로 나타나고 있어 이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극단적 선택과 관련한 사회경제적 피해는 통계적으로 추산하지 않더라도 매우 크다. 1명이 안타까운 선택을 했을 경우 혈연관계에 있는 가족과 주변 지인을 포함해 20여명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황 이사장은 “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고인의 소중한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발생하는 손실비용 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자살은 사회적 연대와 결속력이 느슨해질수록 높아질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인식개선과 더불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노력 등을 관련 기관과 부처가 함께 지원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이어 “2030대는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이 많이 포함된 연령층이기 때문에 대학 및 대학 상담센터, 직장을 통한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구직활동 중이거나 자발적으로 직업활동을 하지 않는 대상 등은 한계가 있다”며 “재단에서도 이들 대상으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협력체계를 구축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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