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지키는 ‘보루’인데…무너지는 중환자실

생명 지키는 ‘보루’인데…무너지는 중환자실
게티이미지뱅크

병원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바로 중환자실이다. 전공의 집단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 장기화로 중환자실이 흔들리고 있다.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보루’가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끝까지 관심을 갖고 지원을 강화해달라는 호소가 나온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료공백 사태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출구를 못 찾고 있다. 의료계는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 전면 중단을, 정부는 증원 추진을 고수하고 있다.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환자들의 피해는 커지고, 병원에 남은 의료진은 지쳐간다. 대학병원 교수들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며 개별 사직에 들어가고 주1회 휴진을 결정했다.

교수들이 사직과 휴진을 결심한 이유는 계속되는 당직 근무 등으로 인해 신체적·정신적으로 한계가 왔기 때문이다. 충남의대·충남대병원·세종충남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교수 196명 중 한 주에 100시간 이상 근무한 사람은 14.3%에 달했다. 주 80시간은 37.7%, 주 72시간은 46%, 주 60시간은 68.4%로 나타났다. 주 52시간 이상은 90.8%로 조사됐다.


의사로서의 자부심과 환자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텨온 교수들은 “힘들고 지쳤다”라고 말하지만 중환자실만큼은 손을 놓지 못한다. 이유는 하나다. 중환자실이 생명을 잇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기자와 만난 홍석경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외상외과 교수도 중환자실을 떠나지 못하는 의사다.

홍 교수에게 중환자실이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는 환자가 사투를 벌이는 곳이다. 중환자실 의료진은 그런 환자가 잘 견디며 맞설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다. 홍 교수는 “의료공백이 장기화되면 많은 교수가 떠날 수밖에 없다”며 “이미 의사로서의 자존감은 무너진 상태이고, 그동안 사명감으로 버텨왔지만 모두가 번아웃 되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 연속 당직을 서면서 이명이 생길 정도다”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중환자실을 포기할 순 없었다. 홍 교수는 “중환자실에 환자가 있고, 자식 같은 제자들이 돌아와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도망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은 이번 사태로 전체 병실의 3분의 1을 축소했다. 수술실 운영도 50% 줄였다. 전공의가 이탈한 후 업무 시간과 강도는 2~3배 늘었다. 그래도 외과 중환자실 병상은 100% 돌아가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의 중환자실 병상은 총 221개로, 국내 병원 중에서 가장 많은 병상을 운영 중이다.

신경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 각 과별 중환자실에 전담팀을 두고 있지만 인력은 항상 부족하다. 서울아산병원만의 사정은 아니다. 전국 모든 병원이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 원인은 다양하다. 낮은 수가로 병원은 적자만 나는 중환자실에 투자하지 않고, 의료진은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봐야 한다는 압박감에 못 이겨 이탈하기 일쑤다. 잘못하면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다분하고, 환자를 돌보느라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포기할 때가 많다.

미흡한 의료 인력 규정은 중환자실 운영을 더 어렵게 했다. 지난 1월 인력 기준이 강화됐지만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 규정은 ‘중환자 전담전문의가 1명 이상 있어야 한다’라고 돼 있을 뿐이다. 전담전문의를 1명만 뽑아도 법적으로 중환자실 운영에 문제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형병원이 아니라면 전문의 1명이 중환자 진료 관련 업무를 떠안는 기형적인 구조였다.

홍 교수는 “아무리 병상이 많아도 중환자 전담전문의를 한 명만 둬도 되는 기준에 따라 병원은 최소 인력을 두려 했고, 수가는 입원 전담전문의의 3분의 1도 채 되지 않았다”며 “지난 1월 대한중환자의학회의 지속적인 요구로 인력 기준이 개선됐지만 그 효과를 보기도 전에 의료공백 사태가 터졌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의정 갈등이 더 장기화될 경우 중환자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고 우려했다. 홍 교수는 “바이탈과를 가고 싶다는 전공의가 고정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중환자실이 겨우 돌아갈 수 있었던 건데, 이번 사태로 전공의는 필수의료과를 더 선택하지 않으려 할 테고 그럴수록 중환자실은 어려워질 것”이라며 “사명감 하나로 버티는 중환자실 의사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으며 일하고, 개인의 삶도 보전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정부는 선진국형 중환자실을 만들겠다며 시설과 인력 등에 투자했다. 이전의 상황이 워낙 ‘바닥’이었기 때문에 예전보다 좋아지긴 했으나 인력을 끌어들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며 “의사들이 결연한 각오를 갖지 않고도 선듯 중환자실 근무에 지원할 수 있도록 많은 지지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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