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험에 갇히다 [쿠키청년기자단]

청년, 시험에 갇히다 [쿠키청년기자단]
공무원 혹은 전문직 시험에 수년째 도전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사진=진주영 쿠키청년기자

공무원 혹은 전문직 시험에 수년째 도전하느라 ‘고시 낭인’이 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치러진 2024학년도 수능에서 N수생의 비율은 31.7%로 역대 최대였다. 수능 응시자 3명 중 1명은 이미 1번 이상 시험을 친 경험이 있는 셈이다. N수는 수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수능을 지나 취업의 문 앞에서 다시 N수의 길을 걷는 청년들이 있다.

경기 불황과 사기업 신규 채용 축소로 공무원이나 전문직 시험 준비에 매진하는 청년이 늘어났다. 법학전문대학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법학적성시험 지원자는 약 56%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공인회계사 1차 시험 응시자가 약 4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합격자 수가 한정적인 시험에 청년이 몰리고 있다. 거듭되는 도전으로 청년들의 시간은 한없이 흘러가고 있다. 흘러가는 시간만큼 그들의 몸과 마음도 같이 병들고 있다.


지방 국립대에 재학중인 박지은(25·여·가명)씨는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박씨는 아동가족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진로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4년이 흘렀다.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니 공부가 떠올랐다. 별다른 꿈이 없었기에 자연스레 공무원 시험으로 가닥이 잡혔다.

박씨가 처음 도전한 시험은 군무원 시험이었다. 1년 반을 준비했지만, 면접에서 탈락했다. 시험에서 떨어진 후 주변 친구들을 보며 사기업에 지원하기도 했다. 서류 불합격의 결과를 마주하고 보니 그동안 공부한 시간은 경력이 되지 못함을 깨달았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서 박씨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수험 기간이 통째로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되어버릴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곧바로 9급 공무원 시험으로 눈길을 돌렸다. 1년간의 공부 끝에 일반행정직 시험을 합격했다. 막상 합격하고 나니 아쉬움이 생겼다. 박씨는 다시 수험생 신분이 됐다. 7급 공무원 시험 합격을 위해서다.

2년 반이 넘는 수험 생활은 혼자만의 치열한 싸움과 같았다. 박씨는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의심에 빠졌다. 하나둘 사회 경험을 쌓아가는 주변 친구들과 동떨어진 자신의 위치에서 불안함과 막연함이 동시에 스쳤다. 박씨는 “자격증 준비와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격차가 느껴지는 듯했다”고 말했다. “공부만 했던 나 같은 사람들은 다른 곳을 가기엔 스펙이 부족하다. 그래서 한 번 공시에 발을 들이면 놓지 못하는 것 같다”며 수험 생활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2년째 법학적성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김연수(25·여·가명)씨는 졸업을 미뤄둔 채 시험에 도전 중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시험에서 좋지 못한 결과를 얻게 돼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김씨는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떨어지더라도 다른 곳에 도전할 기회가 있지만 나는 한 번의 시험이 끝인 셈”이라며 “똑같이 시간이 흘렀지만 내 시간은 몽땅 날아간 느낌이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기무력감과 자기불신을 자주 노출된다고 말했다. “이 길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에 포기할까 했지만 이걸 놓으면 과연 다른 걸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든다”며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다 보니 번아웃이 오기도 했다. 모의고사를 풀 때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였다. 법학적성시험의 경우 전문 지식을 측정하는 시험이 아니다 보니 노력만큼 점수가 잘 나오지 않을 때도 많았다. 방황하듯 다른 길을 찾아보려다 이내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수험생활을 하다 보니 외로움도 커졌다. 도서관에 갔다 집에 돌아올 때면 외로운 감정이 파고들었다. 26㎡(8평) 남짓한 자취방에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오면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럴 때면 공부를 내려놓고 고향에 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자주 찾아왔다.

건강도 나빠졌다. 시험 준비에 몰두하는 상황에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기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김씨의 아침 식사는 주로 누룽지와 김치였다. 시험에 몰두하느라 아르바이트도 그만두어 금전적 여유가 부족한 탓도 있었다. 김씨는 “집밥이 그리울 때가 많다”며 “제대로 된 식사 없이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위가 자주 아프다”고 말했다.

진주영 쿠키청년기자 jijy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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