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버스를 운전하지 않을 권리

버스를 운전하지 않을 권리

사진=연합뉴스

“지금 관두면 우리 모두 죽어요.”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파업을 관두고 다시 회사에 돌아가려던 재키. 그를 향해 동료이자 첫째 아들인 토니는 소리쳤습니다. 노조 규정 제1조는 “절대 배신해서 안 된다”. 회사로의 복귀는 곧 배신이었습니다. 사측에 인력이 충원되면 노조는 협상에서 불리해지기 때문이죠. 토니는 파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아버지를 설득합니다. 아들과 동료들의 말에 재키는 다시 파업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승리는 결국 사측이 거머쥐었습니다. 더 나은 근무환경을 위해 불타오르던 의지는 사라지고, 이들은 초점 잃은 눈빛으로 다시 탄광 깊숙이 내려갑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보여준 노동자의 파업 모습은 일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연맹)은 8일부터 1박2일간 서울, 부천, 인천, 대구, 경기도 등 11개 지역 버스 운전자들이 파업을 위한 찬반투표에 참여한다고 밝혔습니다. 과반 이상이 파업에 찬성한다면 전국 4만1000명 버스 운전자가 파업에 동참하고 2만대의 버스가 오는 15일부터 운행되지 않습니다.

버스 운전자들의 파업은 예고된 결과였습니다. 연맹에 따르면 전국 버스기사들의 평균 근무 시간은 일일 기준 13시간11분에 달합니다. 지난 2014년 대한민국 직장인의 하루 평균 노동 시간이 9시간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4시간가량 더 근무하고 있는 셈입니다. 운전 외에도 이들은 버스 세차와 주유 등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더 나은 노동환경 보장을 위해 파업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의 제33조는 근로자가 근로조건이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질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에 따라 버스 운전자들은 협상에 나섰습니다.

파업을 막을 기회는 있었습니다. 그간 시간은 충분했지만, 버스 운전자 노동환경에 대한 개선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정성호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은 ‘대중교통 환승 비용과 광역버스 지원을 위한 교통시설특별회계법 개정안’을, 함진규 자유한국당(한국당) 의원은 시·도 지사가 조례에 따라 운수종사자 근로여건 및 처우개선 비용을 지원하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그러나 국회가 공전을 거듭하면서 관련 법률 개정안이 해당 상임위(국토교통위원회 산하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간 버스는 대중교통으로 사랑받으며 많은 승객이 편리하게 이용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편리함은 버스 운전자가 쏟은 피로의 대가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시민들의 불편함을 이유로 파업이 저지된다면 이들의 노동환경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어두운 낯빛으로 일터에 나서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영화면 족합니다.

신민경 기자 smk503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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