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추석남①] 역대 대통령이 추천한 ‘그 책’, 지금 읽으면 어떨까

역대 대통령이 추천한 ‘그 책’, 지금 읽으면 어떨까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핑계가 이번 추석 연휴만큼은 통하지 않는다. 10일이라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읽을 책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누군가 읽었거나 추천한 책부터 살펴보는 방법이 있다.

지난달 5일 문재인 대통령은 6박 7일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청와대에 복귀해 ‘명견만리’를 읽었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휴가에서 읽은 책을 공개한 건 지난 1996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최초다. 이후 대통령들은 재임기간 동안 읽은 책을 공개하며 자신이 어떤 국정 과제에 주력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지 전달해왔다. 역대 대통령들은 어떤 책을 읽고 추천했는지 살펴보며 그 시대의 의미, 그리고 현재의 의미를 되새기는 건 어떨까.


△ 김영삼 전 대통령의 1996년 - 클라우스 슈밥의 ‘21세기 예측’

최근엔 지금이 몇 세기인지 잘 언급되지 않는 것과 달리, 당시엔 21세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책 제목이다. 정치가, 경영인, 언론인 등 전 세계 석학 103인이 현 세계를 관찰하고 21세기를 예측한 내용을 저자가 엮은 책이다. 저자인 클라우스 슈밥은 다보스 포럼이라 불리는 스위스 세계경제포럼의 창립자이자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최근에도 ‘제4차 산업혁명의 충격’을 발간하며 미래에 대한 논의를 이끌고 있다. 세계화를 국가적인 키워드로 제시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21년 전에는 세계 석학들이 앞으로 50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 예측했고, 어떤 대안을 제시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 김대중 전 대통령의 2000년 - 피터 드러커의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경영자’

지식기반 경제(지식과 정보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을 기반으로 둔 경제)에서 경영자의 책임과 과제는 무엇인지 제시하는 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년 휴가 때 ‘지식자본주의 혁명’을 들고 간 데 이어 2000년에도 피터 드러커의 책을 읽었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저자 피터 드러커의 이야기에 그만큼 관심이 많았다는 얘기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를 알고 싶어 했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곧 다가올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추측된다. 지식기반 경제가 이미 일상에 스며든 지금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경영자’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3년 - 리처드 파인만의 ‘파인만의 물리 이야기’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물리학자 파인만이 물리학의 진수를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낸 책이다. 1963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1, 2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기초물리학 강의 중 일반인들도 흥미롭게 읽을 주제를 뽑아 정리했다. 재임 기간 동안 50여권의 책을 추천했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휴가 중 꼭 읽고 싶은 책’으로 꼽은 책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대통령이 읽는 책에 정치적인 메시지가 부여된 것과 달리, 대통령 개인적인 관심이 그가 읽는 책에 드러났다는 점이 특징이다. 물리학 강의에서 어떤 흥미를 느낄 수 있을지 궁금한 독자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지 않을까.


△ 이명박 전 대통령의 2009년 - 리처드 탈러, 캐스 R. 선스타인의 ‘넛지’

책 제목 ‘넛지’(NUDGE)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란 의미다. 두 저자는 인간이 실수를 반복하는 이유가 갖가지 편견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사람들이 틀리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현명한 선택을 이끌어 내는 방법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기업가 출신 대통령답게 실용주의를 내세운 당시 정부의 색깔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휴가를 떠나기 전 청와대 모든 직원들에게 ‘넛지’를 선물했다. 이후 책 판매량이 2배 가까이 증가하며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기도 했다. 더 옳은 선택을 하고 싶은 독자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지 않을까.

[고독한 추석남①] 역대 대통령이 추천한 ‘그 책’, 지금 읽으면 어떨까

△ 박근혜 전 대통령의 2015년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의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문명학 박사를 받은 미국인 저자의 눈에 비친 한국의 훌륭한 문화적 유산과 그것을 어떻게 지키고 살려나가야 하는지 설명하는 책이다. 한국이 약소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서 국제사회에 나아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는지 여름휴가 직후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을 청와대 참모와 내각 인사들에게 추천했다. 당시 젊은 세대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며 자조하는 것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이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과를 기억에서 지우고 읽으면 외국인에게 비친 또 다른 한국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좋은 책이지 않을까.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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