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4강’ 박종환의 작전지시에 고즈넉이 응답한 신태용 감독

‘1983년 4강’ 박종환의 작전지시에 고즈넉이 응답하다

[쿠키뉴스=전주 이다니엘 기자] 1983년,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신태용 감독은 학교수업도 제쳐두고 경기중계를 라디오로 들었다 했다. 신 감독에게 4강 신화는 충격이자 도전이었다. 기니전을 앞두고 신 감독은 그때의 소회가 원동력이 됐음을 고백했다.

“학교갈 때 라디오를 들고 갔다. 수업을 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 결국 방송실에서 전 교실에 라이브로 라디오를 틀어줬다. 지금도 그 때가 기억에 난다”

1983년 U-20 축구대표팀을 이끈 박종환 감독은 이번 대회 개막 전 신태용 감독에게 특별한 작전지시를 했다. 

“(이전 평가전을 보니)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겠더라. 단지 우려는 수비력이 약하다. 그걸 보완하면 좋겠다”

신 감독은 이 말을 그대로 실천했다. 기니전에서 대승 못지않게 값진 무실점을 기록한 것.

“박 감독님의 말씀을 듣고 ‘나도 그때처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각오를 다졌다”

박 감독과 심 감독의 인연은 각별하다. 4강 신화를 쓰고 정확히 9년 뒤인 1992년, 박 감독은 영남대 에이스였던 신태용을 불렀다.

“4강 신화를 만든 박 감독님과는 성남 일화에서 사제지간으로 인연을 맺었다. 은사시다”

성남 입단 후 전성기를 작성한 신태용이다. 1992년 신인왕을 차지한 데 이어 1996년엔 득점왕에 올랐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 7시즌동안 홀로 최우수선수상을 휩쓴 건 놀라운 성과였다. 1993~1995년엔 리그 3연패를 이끌었고, K리그 최초로 60골-60도움을 달성했다.

박 감독은 신태용에게 학창시절 축구인의 꿈을 심어주고, 현역 땐 최고의 선수로 성장시켰다. 그리고 이제 감독으로의 성공신화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신 감독이 지난해 11월 U-20 월드컵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뒤 가장 먼저 찾은 게 박 감독이다. 직접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가하면 통화를 통해 용기를 얻었다.

“1983년 신현호, 김종부 선배님을 열광적으로 응원했는데 세월이 지나 이제는 U-20 대표팀 감독으로 이 자리에 섰다. 충분히 우리 선수들이 그때 선배님들처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1983년 4강’ 박종환의 작전지시에 고즈넉이 응답한 신태용 감독

최적의 환경이다. 이승우, 백승호 등 역대 최고 멤버로 구성된 한국대표팀이다. 여기에 홈에서 치르는 경기인 만큼 일방적인 홈팬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20일 전주성에는 3만7500명의 관중이 찾았다. 장거리 비행을 한 타 팀 선수들 대비 적응해야 할 가짓수도 적다.

“관중을 12번째 선수라고 칭할 수 있다. 우리 선수에겐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첫 골을 넣으면서 오히려 12번째 선수를 충분히 활용하지 않았나 싶다. 환호성에 힘을 얻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신 감독의 꿈은 당차다. 그의 복안은 스승을 뛰어넘는 것, 그야말로 ‘청출어람’이다.

“멕시코 4강 신화를 뛰어넘고 싶다. 이것이 내 진실한 속마음이다”

dne@kukinews.com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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