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원치 않아” “의료 희망 없어”…사직 전공의 ‘속내’는

사직 전공의 150명 서면·대면조사 결과 발표
과도한 근무에 건강 망친 전공의도
군 복무 기간 현실화, 수련환경 처우 개선 등 복귀 조건으로

“수련 원치 않아” “의료 희망 없어”…사직 전공의 ‘속내’는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 숫자가 부족하지만 지원율이 낮은 분과에 대한 지원 없이 개인의 사명감으로만 바이탈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잘못됐습니다. (바이탈과 레지던트 2년차 A씨)

#  환자와 의사 간 관계가 파탄 났기 때문에 수련을 포기합니다. 이제 의사로서의 삶은 어떠한 보람도 없을 것입니다. (바이탈과 레지던트 2년차 B씨)

# 이번 ‘의료개악’ 같은 일이 다음 정권에서도 반복될 것이라 생각해요. 매 정권마다 의사를 악마화할 것이고, 국민들은 함께 돌을 던질 것이기에 전공의 수련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인턴 C씨)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환자를 등지고 병원을 떠난 지 두 달째, 복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직 전공의들은 과도한 업무에 지쳐서, 한국 의료에 희망을 가지지 못해서, 알맞은 대우를 받지 못해서 병원을 떠났다고 말한다. 이들은 선의의 의료 행위에 대한 면책권과 전공의 노조의 파업권 보장,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의 경질 등을 복귀 조건으로 내걸었다.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인 류옥하다씨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센터포인트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직 전공의 150명에 대한 인터뷰 정성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3월13일부터 4월12일까지 1개월간 서면·대면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된 조사는 인턴부터 레지던트 4년차까지 각기 다른 과의 전공의 15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현재의 전공의 수련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전공의들은 질 낮은 수련환경에 실망했다고 했다. 바이탈과 레지던트 1년차 D씨는 “의료 업무가 아닌 인쇄, 커피 심부름, 운전하기 등 ‘가짜 노동’으로 인한 수련의 실효성 부족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인턴 E씨도 “제모, 이송, 영상 촬영 같은 직종을 채용해야 할 대학병원이 전공의에게 이러한 일을 부담하게 해 수련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업무에 건강을 망쳤단 전공의도 있다. 바이탈과 레지던트 3년차 F씨는 “수련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교육과 무관하게 내실 없이 과도하게 일하며 자신의 건강을 망친 채 졸국(전공의 수련과정 졸업)하는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수련 원치 않아” “의료 희망 없어”…사직 전공의 ‘속내’는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인 류옥하다씨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센터포인트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직 전공의 150명에 대한 서면·대면 인터뷰 정성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신대현 기자


사직한 전공의 1581명 중 34%(531명)는 향후 의대 정원 증원 문제 등이 해결되더라도 전공의 수련 의지가 없다고 답했다. 전공의들이 수련을 포기한 이유는 다양했다. 정부의 의료정책 강행에 따른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뒤섞였다. 인턴 G씨는 “정부와 환자들이 ‘사명감’이라는 말로 전공의들을 ‘가스라이팅’ 한다. 사명감, 희생은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일 때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을 떠나겠단 전공의도 있다. 바이탈과 레지던트 2년차 H씨는 “이 사태로 대한민국이 마주한 현실을 깨달았다. 건강보험료가 고갈되며 의료체계 전체가 붕괴할 것”이라면서 “그전에 빨리 나라를 떠나고자 한다”고 전했다.

사직 전공의들은 복귀를 위한 선행조건으로 △일반 현역병과 공중보건의 및 군의관 간 군 복무 기간 현실화 △전공의 수련환경 처우 개선 △무분별한 의료소송 억제 △전공의 노조와 파업권 보장 △박민수 복지부 2차관 경질 등을 꼽았다.

인턴 I씨는 “전공의를 하지 않으면 18개월 현역을, 전공의를 마치거나 중도 포기하면 38개월 군의관을 가야만 한다”며 “이러한 군 복무 기간을 현실화하지 않으면 동료들도, 후배들도 전공의를 굳이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의도치 않은 의료사고로 소송에 휘말려 고충을 겪는 전공의도 적지 않았다. 바이탈과 레지던트 2년차 J씨는 “수련 과정에서 기소당하고 배상까지 이르는 선배와 교수님들을 많이 보았다”며 “선의의 의료 행위에 대한 면책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바이탈과 레지던트 2년차 K씨도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결과에 따른 무분별한 소송을 막아야만 수련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옥하다씨는 “전체 의사의 7%인 수련의이자 일반의인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났을 뿐 93%의 의사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사직한 전공의들은 가혹한 수련 환경과 부당한 정부 정책으로부터 떠난 것이지 환자 곁을 떠나고자 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우리 의료체계가, 환자와 의사 관계가 회복 불능이 되지 않도록 정부는 의대 증원을 원점 재논의 해달라”고 촉구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수련 원치 않아” “의료 희망 없어”…사직 전공의 ‘속내’는
Copyright @ KUKINEWS. All rights reserved.

쿠키미디어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