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맥경화’ 묵히는 의사와 보건당국 [데스크칼럼]

‘동맥경화’ 묵히는 의사와 보건당국 [데스크칼럼]
1일 오전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가 전해지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탄력을 잃고 경직된 채 막혀가는 ‘동맥(動脈)’은 제 기능을 못한다. 불통은 뇌경색, 심근경색 등 위급상황을 빚는다. 지난 2월19일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에 나선 이후 정부와 의사단체는 의과대학 증원 계획을 놓고 입장 차만 재확인할 뿐 소통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답답한 ‘경화(硬化)’ 상태가 의료대란을 현실화하고 있다.

소통 의지가 있다면 “대화하자”는 말에 그쳐선 안 될 일이다. 환자와 국민은 대화에 임하려는 적극적 자세를 보려 한다. 그러나 여전히 조건에 치중해 대화는 시작점도 못 찾는다. 정부는 의사단체에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통일된 안을 달라고 한다. 의사단체는 증원 계획의 원점 재검토가 전제돼야 한다고 맞선다.

업무개시명령, 면허정지 등의 위협카드를 내보이며 의료현장을 이탈한 전공의에 대한 강경 대응을 이어오던 정부는 최근 태세를 바꿨다. 지난 7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2000명이란 증원 숫자에 매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의대 정원 문제를 포함한 모든 이슈에 유연한 입장이라고 했다. 이에 대화의 물꼬가 트일 것이란 기대가 나왔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튿날인 8일 대통령실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검토한 바 없고, 검토 계획도 없다”고 표했다. 이날 오전 대한의사협회가 제안한 유예안을 보건복지부가 검토하겠다고 답한 지 반나절 만의 일이다. 앞서 지난달 24일 대통령이 당부한 ‘유연한 처리’도 그 범위, 방식 등을 알 수가 없다. 정부가 밝혔던 것처럼 정책을 놓고 흥정을 해선 안 된다. 하지만 조율은 가능하다.

당장 비상진료시스템을 통해 의료공백을 차질 없이 메우겠다는 공언도 한계를 드러낸 상황이다. 공중보건의, 간호사 등을 배치하고 충원하는 와중에 현장에선 “관련 교육조차 못 받고 투입됐다”, “오히려 지역의료 공백이 커진다”라는 애끓는 호소가 잇따른다. 정부는 결단을 갖고 테이블에 먼저 앉을 필요가 있다. 숫자에 갇힌 문제는 숫자로 풀 수 있다.     

의사단체는 복지부 장차관을 고소하고, 이어 정부에 대항하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고 한다. 서울의 한 의대 교수는 기자에게 “엎질러진 물”이라며 “쉽게 끝날 판이 아니다”라고 했다. 4·10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자 의사단체에선 의대 증원 추진에 따른 ‘국민 심판’이란 해석이 나왔다. 시민사회단체는 “의료대란을 만든 당사자의 적반하장”이라고 일갈했다. 민심이 여당에 회초리를 든 건 사실이지만, 이를 의사들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긴 어렵다. 애초 국민 대다수가 정부의 증원 방침에 찬성했다. 일관된 방침은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올린 요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요컨대 생명을 지키는 업(業)을 등진 순간 신뢰에 금이 갈 수 밖에 없다. 또 신뢰는 정책의 백지화를 꾀해 회복할 수 없다. 환자와 마주해야 의사다. 이는 의사도 알고 있다. 지난해 7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이 속한 보건의료노조가 처우 개선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섰을 때 의사들은 “환자의 생명을 위협해선 안 된다”, “정부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 “의료 현장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갈등이 길어질수록 정부와 의사단체의 민낯이 또렷해진다. 정부와 의사단체 모두 자부심을 가졌던 한국 의료체계의 곪아 터진 상흔도 짙어진다. 교집합을 수용하고 대화에 적용하자. 조건이 걸린 양자택일은 풀리지 않는 매듭을 더욱 옭아맬 뿐이다. 각종 포털사이트의 메인 뉴스 자리를 꿰찬 ‘의대 증원’ 문제를 아우르는, 의료체계 쇄신을 위한 큰 틀의 주제로 확장해 합의점을 모색해볼 수도 있다. 서로가 합의를 해도 그 뒤 할 일이 또 태산이다. 시간이 넉넉지 않다. 다만 대화다운 대화라면 적지 않은 국민이 인내심을 더 가질 것이다.

‘동맥경화’ 묵히는 의사와 보건당국 [데스크칼럼]

김성일 건강생활부장 ivemic@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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