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죽지 않아야 했다 [또다시, 참사]


아무도 죽지 않아야 했다 [또다시, 참사]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공간을 찾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고인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일상이 무너졌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었다. 누군가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무력감에 빠졌다. 수백 명이 스러져간 참사 때마다 국가 대응은 적절했을까. 쿠키뉴스는 4회에 걸쳐 이태원 참사의 원인과 대응을 짚어보고 과거 참사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본다.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편집자 주]
매년 10월 말 서울 용산구 이태원은 핼러윈을 즐기는 인파로 발 디딜 틈 없다. 특히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 3년 만에 맞는 핼러윈이었다. 마스크도 필요 없었다. 중간 강의평가를 마친 학생들부터 한 주 업무를 끝낸 직장인까지. 청춘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지난달 29일 156명이 세상을 떠난 이태원 참사는 막을 수 있었던 인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국의 안전 불감증과 위기 대응 시스템 부재가 맞물렸다는 분석이다.

아무도 죽지 않아야 했다 [또다시, 참사]
2017~2022년 ‘핼러윈 데이 종합 치안 대책’ 문건.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첫 번째 기회-압사는 왜 빠졌을까


10월26일 참사 사흘 전. 하루 10만 명에 가까운 인원이 몰릴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사전 대책은 안일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2017~2022년 핼러윈 데이 종합 치안 대책 문건에 따르면, 용산경찰서(용산서)가 이날 작성한 2022 이태원 종합치안 대책에는 압사 사고에 대비하는 내용이 빠졌다. 대규모 인파 운집에 따른 사고 가능성 대신 무허가 클럽, 마약류, 총포, 과다노출 등 범죄 예방에 초점을 맞췄다. 경찰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핼러윈 치안 대책에 다중인파 안전사고 대책을 넣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2020년 대책에서는 안전사고 예방 및 조치사항 항목에 압사가 직접 언급됐다. 인구 밀집으로 인한 압사 및 추락 등 안전사고 상황 대비를 명시했고, 112 타격대 현장 출동해 PL(폴리스라인) 설치 및 현장 질서 유지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예년 수준의 대책만 세웠어도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셈이다. 인파 관련 안전 대책은 왜 빠졌을까. 홍기현 경찰청 경비국장은 31일 기자간담회에서 “다수 인원의 운집으로 인해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예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용산서는 아무런 해명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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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1일 오후 이태원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거리.   사진=임형택 기자

두 번째 기회-일방통행로만 설치했어도

10월27일 참사 이틀 전. 관할 지자체인 용산구는 핼러윈 축제에 대비해 긴급대책회의를 열었지만, 안전사고 관련 논의는 주요 시설물 점검에 그쳤다. 특별방역·거리 청결 문제·식품접객업소 지도점검 등을 논의했을 뿐이다. △한시적 일방통행로 설치 △차 없는 거리 운영 △이태원역 무정차 등 사고 예방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경찰과 자치구의 오판으로 참사는 예견돼 있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전 대책이 왜 부실했는지 묻자 용산구청 관계자는 “관련 내용은 수사와 감찰 조사를 통해 확인 중에 있다”며 말을 아꼈다. 

백승주 열린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사전에 중앙정부, 지자체, 경찰 등이 유기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관리 계획을 세우지 못했던 점이 이번 참사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아무리 주최 측이 없는 행사라도 시민 안전을 위해 선제적으로 대책을 마련했어야만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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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이해 인파가 몰리면서 대규모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30일 오전 출동한 119구조대원들이 희생자들을 분류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 번째 기회-위험신호는 울렸지만

10월28일 참사 하루 전. 당시 SNS에 올라온 사진과 영상을 보면 위험 징후는 이미 시작됐다. 밤부터 상황은 심상찮았다. 좁고 경사진 언덕길에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인파가 들이찼다. 온라인상에는 “인파에 떠밀려 사람이 넘어졌다”는 목격담이 잇따랐다. 당일 이태원파출소에는 총 67건의 112신고가 들어왔다. 평소 신고 건수의 1.5배에 달한다. 무수한 전조가 이어졌지만, 관계 당국은 경고를 무시했다. 김광호 서울지방경찰청장은 7일 ‘참사 전날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 부상자 발생 등 112신고가 많았음에도 대비책을 수립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당시 해밀톤호텔 주변에서 부상자 발생 등 관련 신고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명할 뿐이었다.

백 교수는 “사고 전날에라도 위험 징후를 읽었더라면 경찰·지자체 등 관계당국은 군중 밀집도를 해소할 방안을 마련하고 참사 가능성을 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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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 청년추모행동이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앞에서 국화를 들고 대통령 집무실까지 행진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네 번째 기회-놓쳐버린 골든타임

10월29일 참사 당일. 전날보다 많은 인원이 이태원 일대에 몰렸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이날 이태원역 이용객(승하차 포함)은 13만131명이다. 지난 3년간 동일 기간 승하차 인원 평균치(7만7278명)의 2배에 달한다. 경찰은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대로변에 설치된 CCTV를 통해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었다. 

대규모 인파를 통제할 경력은 충분치 않았다. 주로 성범죄와 마약 단속 등 범죄 예방에만 치중한 나머지 시민 안전을 위한 동선 확보에는 힘쓰지 못했다. 참사 당일 현장 배치된 경력은 137명에 불과했고 정복 차림의 경찰관은 58명뿐이었다. 혼잡경비를 담당하는 기동대도 배치되지 않았다. 서울지방경찰청 경비부는 당일 81개의 기동대를 서울 주요지에 배치했으나 이태원에는 투입하지 않았다. 

당일 참사 현장 목격자들에 따르면 참사 직전까지 사고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옆 골목은 한 발짝 내딛기조차 힘들 정도로 인산인해였다. 위험을 느낀 시민들은 오후 6시34분부터 참사 발생 전까지 총 11건의 신고를 했다. 하나같이 “압사당해서 죽을 것 같다”, “제발 살려달라” 등의 긴박한 내용이었다.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골든 타임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경찰의 대처는 허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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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10월3일 경북 상주시 계산동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상주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경찰 관계자들이 사고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05년 10월3일 경북 상주시 계산동 상주 시민운동장에서 발생한 상주 압사 참사도 안전 관리 부실을 보여준 대표 사건으로 꼽힌다. 당시 시민 11명이 압사하고 162명이 부상 당했다. 당시 시민운동장 주변에는 구조 요원이 없었다. 안전요원 수도 부족했다. 행사 주최 측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비전문 인력을 고용 배치하면서 피해는 커졌다. 한 해 뒤인 2006년 3월26일 서울 롯데월드 무료 놀이동산 개방행사에서 35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주최 측은 자체 안전요원 50여명과 사무직 직원 150여명만을 배치했을 뿐 경찰과 안전대책을 협의하지 않았다. 두 사고 모두 행사 주최자가 시민 안전 대책을 소홀히 했고, 관계 당국도 손을 놓으면서 빚어진 인재란 지적이 나왔다. 

모든 인재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위험 징후가 존재했고, 막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국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태원 참사를 비롯한 대형 사고는 관계 당국의 인지 능력 부족, 재난에 대처하는 안전 관리시스템의 오작동과 피해 최소화를 위한 통제력 상실, 정부 컨트롤타워의 조정 능력 부재라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 결과는 대형재난이었다. 

손원배 초당대학교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대다수 참사는 관계 당국의 선제적인 예방 체계가 무너진 상태에서 발생한다. 유사 재난을 막기 위해서는 안전 대책을 감시하는 상위 조직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면서 “사고 발생 이후에 허점을 메우는 방식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역으로 대책을 세우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쿠키뉴스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과 함께 슬퍼합니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언론이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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