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중년, 고립은 단절로 이어진다

[김양균의 현장보고] 2020 빈곤 리포트 ‘新위기세대’②

#슬픔에 젖은 몸으로/ 홀로 낄낄대며 웃어도 보고/ 꺼이꺼이 울며 생각도 해보았지만/ 살면서/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엔/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다 (용혜원 作 ‘살아가면서 가장 외로운 날엔’ 중에서)

우리 주변에는 ‘투명인간들’이 곳곳에 있다. 

이들은 사회적 관계가 끊겨있다. 단절된 사람들, 투명인간들은 일부 소수만의 사연은 아니다. 기자가 만난 사람들은 함께 있지만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은 겨울밤 을씨년스러운 도시의 뒷골목과 닮아 있었다. 

네온사인이 어지러이 불을 밝히는 도시의 밤은 적당한 흥청거림과 약간의 소란이 인다. 군중 속에 휩싸여 사람의 존재 자체에 무감각해질 무렵, 여느 지나는 이들 속에 결코 편입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된다.

북적이는 금요일 밤. 연말의 적당한 흥분 속에 도시는 잔뜩 흔들리고 있었다. 한 사내가 다가왔다. 행인들의 바쁜 걸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한쪽 다리를 절고 있는 A였다. A는 무심한 듯, 그러나 짐짓 아쉬운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백 원만 있으면 빵을 사먹을 수 있는데….” 쉰 둘, 남자는 거리에서의 생존을 위해 비위를 맞추는 법을 체득했다. 호주머니 깊숙이에는 사진 한 장이 남아있었다. 지금은 해체되어 버린 ‘가족’의 흔적이었다. 

◇ 가족은 어느 샌가 사라지고

선거철이 가까워오면 지역마다 선거사무소가 꾸려진다. 선거철이 반가운 것은 비단, 예비정치인 뿐만이 아니다. A와 같이 거리의 삶을 사는 이들도 캠프를 기웃거린다. 캠프에는 사람이 몰리고, 먹을 것이 넘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가슴팍까지 단추를 푼 남루한 행색의 A가 사무소에 들어설 때까지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캠프에 사내 둘이 들어섰다. 그들도 캠프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선거대책본부장이란 남자가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의원님.” 빳빳하게 풀을 먹인 양복 가슴팍에는 금색 배지가 달려 있었다. 그 광경을 보던 A가 다가가 말했다. 

“내가 삼십년 동안 투표를 했소. 돈 좀 나눠 주소. 구걸하는 것 아니오. 내가, 그 정도는 받을 자격이 있단 말이오!” 캠프 관계자 여럿이 그를 달래 보낸다. 주머니에는 만원 한 장, A는 떡과 귤 따위가 든 비닐 봉투를 쥐고 사무소에서 쫓겨났다. 

모든 선거캠프가 이렇진 않다. 억센 사나이들에게 멱살을 잡혀 내동댕이쳐지거나 얻어맞는 일도 있다. 그럴 때마다 A는 악에 바쳐 비명 같은 소릴 질렀다. “내가 투표한 게 얼만데!”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A는 단추를 풀더니 옆구리를 보여줬다. 어디에 부딪혔는지, 상처와 시퍼렇다 못해 시커먼 멍이 들어있었다. 그는 숨 쉴 때마다 걸그렁 거리는 소리를 냈다.  

2018년 기준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는 이들이 2500여명을 상회했다. 50대가 단연 1위다(29%). 이밖에도 60대는 17.7%, 40대 17%로 나타났다. 중장년층이 고독사의 절반 이상은 차지하는 이유는 홀로 사는 중장년층 1인가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A도 비교적 최근까지는 홀로 살았다. 실직이 길어지면서 전 처와 자녀와의 연락도 끊겼다. 요금을 내지 못해 끊겨버린 휴대전화, 언젠가 전처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가 들은 가족의 마지막 소식은 전 처가 서울 구로의 식당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A는 거리에서 살았다. 갑작스런 실직과 구직의 실패, 가계의 어려움과 이혼의 결과는 한 가족을 해체시켰다. 

A와 같은 중년 남성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선택지는 많이 없다. 공사판을 전전하거나 아파트 등지에서 경비를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건강이 나빠지면 구직의 가능성은 더 낮아지고, 사회적 고립도 가속화된다. 정부는 청년층과 노령층에 대한 각종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중장년층 1인 가구의 공공 일자리 등과 사회적 복지 정책은 외면 받고 있다. 

“언젠가 나도 가족들이 있었는데….” A는 비틀거리며 네온사인이 가득한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빈곤 중년, 고립은 단절로 이어진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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