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오월에 부치는 편지

오월에 부치는 편지

[친절한 쿡기자] 오월에 부치는 편지

아들아.

5.18 광주민주화항쟁이 발생한 지 벌써 38년이 지났다. 

너에게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겠지. 아버지는 아직도 모든 감정이 생생하다. 당시 나는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군이 광주와 외부 연결을 차단해 집에 전화도 할 수 없었어. 고향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너희 삼촌은 시위에 참여하려고 나섰지만, 할머니가 가로막았대. 혹여 아들이 잘못될까 걱정이 된 할머니는 삼촌을 매질하고 방안에 가둬버리셨지. 내 친구들은 계엄군의 폭행을 견뎌야 했다. 소총에 대검을 장착하고 어린아이, 노인, 여자 할 것 없이 총구를 들이댔던 그들.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충격에 한 친구는 정신이 온전치 못해. 

지난해 같이 봤던 영화 '택시운전사'를 기억하니. 영화 속 위르겐 힌츠페터 독일 기자와 김사복씨를 안내하던 대학생을 공안이 두들겨 패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소리 내 화를 내고 말았지. 영화관이었는데도 말이야. 거짓말로 가득한 회고록을 내고 호의호식하는 전두환씨, 북한군 개입설을 들먹이며 광주를 모욕하는 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를 참을 수 없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꽃'이라는 이야기가 있지. 참 잔인한 말이다. 나의 뿌리나 마찬가지인 광주를 생각하면 항상 빚을진 듯해 마음이 무겁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나의 친구, 이웃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국가는 오랜 시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어. 군은 은폐·왜곡하기 급급했고 5.18 기념식은 홀대받았지. 

진상규명은 공권력에 희생된 영혼을 위한 최소한의 도리다. 나는 너희 젊은 세대뿐 아니라 우리 후손들이 5.18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매서운 눈으로 지켜봤으면 좋겠어. 공권력을 감시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깨어있는 국민'이 존재할 때,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거야. 또 사랑하던 이들이 적어도 어떻게, 무슨 이유로 희생됐는지 알아야 유가족도 마음 편히 그들을 보낼 수 있지 않겠니. 우리가 5.18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끝까지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지.

세월이 흘러도 5.18 피해자와 유가족의 상처는 아물기 힘들 거야. 다시는 국가가 자국민에게 총구를 들이미는 비극이 이 땅에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2018년 5월18일. 아버지가.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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