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L 파일럿 시즌이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에 남긴 것

APL 파일럿 시즌이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에 남긴 것

국내 첫 플레이어언노운즈 배틀그라운드 프로 리그인 아프리카TV PUBG 리그(APL) 파일럿 시즌이 지난 3일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2000명의 현장 관람객이 서울 화곡 KBS 아레나를 가득 메웠고, 초대 우승팀으로 등극한 KSV 노타이틀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번 APL 파일럿 시즌은 지난해 12월부터 약 2개월에 걸쳐 진행됐다. 3개 스플릿이 마무리되는 동안 태동기에 있던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는 급속도로 변화했고, 또 성장했다. APL 파일럿 시즌은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에 무엇을 남기고, 어떤 방향성을 제시했을까.

▶ 초대 슈퍼스타 탄생

지난 3일 배틀그라운드 종목 초대 슈퍼스타가 탄생했다. 우승팀인 KSV 노타이틀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12월 창단한 노타이틀은 인기 스트리머 ‘윤루트’ 윤현우와 ‘벤츠’ 김태효, ‘에스더’ 고정완, ‘섹시피그’ 한재현이 합심해 만든 스쿼드다. 이후 ‘주원’ 김주원이 가세했다.

운이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배틀로열 장르 특성상 배틀그라운드에서는 절대강자가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페이커’ 이상혁이나 ‘류제홍’ 같은 슈퍼스타가 등장하기 어려울 거란 관측이 있었다. 지난해 11월 지스타 인비테이셔널에서 중국 iFTY 스쿼드가 일반인 수준의 예비 멤버를 끼고도 우승해 그런 주장에 힘을 실었다. 

실제로 지난해 말 APL 스플릿1에 참가한 한 선수는 스쿼드 간 우열을 가리기에는 3라운드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 번에 최소 9라운드 정도는 진행해야 실력대로 순위가 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노타이틀은 대회 기간 내내 압도적인 성적을 유지하며 모든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번 대회 스플릿1과 스플릿2 1위를, 스플릿3 2위를 차지하며 꾸준히 최상위권을 유지, 라운드 포인트 4125점을 누적했다. 2위 노브랜드와의 점수 차이는 1420점이었다. 파이널 무대에서도 2위 MVP와의 점수 격차를 200점 이상 벌렸다. 배틀그라운드 종목에서도 ‘올라갈 팀은 올라간다’가 통용함을 입증한 셈이다.

노타이틀 뿐만이 아니다. 프로 팀들의 연습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이에 맞춰 전략과 전술이 체계·고도화되면서 일정 팀들이 늘 순위표 상단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난 스플릿1~3의 총점을 합친 점수표와 파이널 무대 순위표에서 상위권 팀의 순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콩두 LSSi와 OGN 엔투스 에이스, OP.GG 등이 그랬다.

▶ 빅 데이터의 활용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 흥행의 열쇠 중 하나는 빅 데이터다. 매번 3~4라운드를 진행하는 종목 특성상 데이터 누적의 속도가 빠르고, 그 양도 방대하다. 아프리카TV 채정원 인터렉티브콘텐츠 사업본부장이 지난해11월 APL 파일럿 시즌 제작 발표회에서 강조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 채 본부장은 “지스타 인비테이셔널을 통해 실시간 데이터 체크와 정보 전달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아프리카TV는 이번 대회에 빅 데이터를 두루 활용했다. 4명의 작가를 투입했을 만큼 데이터 해석에 공을 들였다. 파이널 무대에서는 각 스쿼드가 스타팅 포인트로 어느 지역을 선호하는지, 또 실제로 해당 지역을 밟았던 빈도는 어땠는지 등을 수치화해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매 라운드 마지막에는 스쿼드의 생존 인원을 알려 시청자가 쉽게 전세를 파악할 수 있게끔 도왔다. 또 라운드 대비 각 선수/스쿼드의 킬 포인트를 제시해 팀의 활약상 또는 공격·수비적 성향 등을 참고할 수 있게끔 했다. 이러한 데이터들은 배틀그라운드의 e스포츠화가 진행될수록, 그래서 더 많은 양의 데이터가 누적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이밖에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화 최대 난제로 꼽혔던 옵저빙 또한 스플릿을 거치며 크게 개선됐다. 아프리카TV는 와이드 앵글, 분할 중계, 리플레이 적극 활용 등으로 시청자들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전달했다. 이들은 이번 대회에 6명의 옵저버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 새로운 해설 트리오의 등장

베테랑 중 베테랑인 박상현 캐스터와 김동준 해설 그리고 신인 ‘지수보이’ 김지수 해설로 구성된 해설진은 이번 대회 최고의 수확 중 하나였다. 3인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졌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배틀그라운드 외에도 다양한 종목을 소화한 경력이 있는 박상현 캐스터-김동준 해설은 능숙하게 방송 분위기를 조율했다. 때로는 다소 노골적인 간접 광고마저도 익살스럽게 소화했다. 지루하게 전개되는 경기 초반에는 다양한 정보 제공에 초점을 맞췄으며, 반대로 급박하게 흘러가는 경기 후반에는 최소한의 상황 전달에만 집중해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김지수 해설은 이번 대회를 통해 해설자로 데뷔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배틀그라운드 종목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신선하면서도 심도 깊은 해설을 선보였다.

APL 파일럿 시즌이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에 남긴 것

▶ 프로 팀 창단 가속화

소위 ‘양대 리그’로 불리는 OGN PSS 베타와 이번 APL 파일럿 시즌 기간 전후로 해 복수의 프로게임단이 배틀그라운드 팀을 창단했다. KSV e스포츠는 타 FPS 종목에서 활동한 선수들을 주축으로 한 아셀과 실력파 스트리머 위주로 구성된 노타이틀을 창단했다.

콩두 컴퍼니는 오버워치 종목에서 활동했던 ‘에버모어’ 구교민을 중심으로 해 레드도트를 발 빠르게 창단한 뒤 2개 팀을 추가로 인수, 총 3팀 체재를 완성시켰다. 관계자에 따르면 콩두에는 현재 총 14명의 배틀그라운드 종목 프로게이머가 활동 중이다.

OGN(CJ) 엔투스도 형제 팀을 창단했다. 다른 프로게임단들과 마찬가지로 월드 오브 탱크 등 타 종목에서 이름을 날렸던 실력자들을 모아 에이스를 창단하고, 이후 ‘주안코리아’ 김봉상이 속한 아마추어 팀 아미자드를 통째로 영입, 포스로 재탄생시켰다.

아프리카TV는 이번 APL 파일럿 시즌 동안 자사 플랫폼에서 BJ(방송 자키)로 활동하는 고스트와 눈길전, 2팀을 네이밍 스폰서로 지원했다. 아프리카TV는 곧 공식적으로 배틀그라운드 팀을 창단할 예정이다.

북미 프로게임단인 클라우드 나인(C9)도 최고 인기 스트리머인 ‘딩셉션’ 장광면을 필두로 뭉친 4인 G9를 영입했다. 이밖에 MVP, 단원 게이밍 등 기존에 타 종목을 후원하던 스폰서들 역시 나란히 종목 팀을 창단, 선수들에게 유니폼을 입혔다.

시범 대회였던 파일럿 시즌이 이처럼 흥행 몰이에 성공하면서 차기 시즌 개최 또한 확정됐다. 아프리카TV 서수길 대표는 지난 3일 결승전 종료 후 시상식 자리에서 “오는 3월 정규 시즌을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대회 장소는 서울 신천에 새로 건설한 전용 경기장이다.

윤민섭 기자 yoonminseop@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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