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카드] 향로컵과 e스포츠 올림픽 입성

[옐로카드] 향로컵과 e스포츠 올림픽 입성

[옐로카드] 향로컵과 e스포츠 올림픽 입성

[옐로카드] [레드카드]는 최근 화제가 된 스포츠 이슈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되짚어보는 쿠키뉴스 스포츠팀의 브랜드 코너입니다.

‘향로했다’는 이번 롤드컵 최고 유행어다. 빈사상태 원거리 딜러가 아이템 ‘불타는 향로’의 체력 흡수 효과에 힘입어 완전히 되살아나고, 뒤이어 대규모 교전을 캐리하는 상황을 뜻한다. 얼핏 보면 ‘입롤’이지만 지난 2주 동안 빈번하게 연출된 장면이다. 그만큼 불타는 향로가 강력하다.

불타는 향로는 아이템 밸런스를 붕괴시켰고 챔피언 생태계를 어지럽혔다. 이번 롤드컵 1티어 서포터 잔나·룰루의 밴&픽 확률은 92%에 달한다. 가장 궁합이 좋다고 평가받는 원거리 딜러 챔피언 칼리스타는 유례없는 100% 밴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향로 메타’ 최대 수혜 지역은 중국이다. 지난 주 조별예선에서 정상급 원거리 딜러 ‘우지’ 지안 즈하오와 ‘미스틱’ 진성준을 앞세워 B조와 D조 1위 팀을 배출해냈다. 복수 전문가들은 이들이 무난하게 4강 또는 결승에 진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실 중국의 선전은 예견됐다. 과거 ‘웨이샤오’ 가오 쉐청부터 지난해 ‘데프트’ 김혁규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원거리 딜러 캐리 전략을 선호해왔던 지역이다. 향로 메타 도래로 인한 원거리 딜러 캐리력 증가는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이에 일부 팬들은 ‘라이엇 게임즈가 한국 독주를 견제하고, 중국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불타는 향로를 버프시킨 것 아닌가’하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근거가 없고, 설득력도 떨어지는 낭설에 불과하다.

불타는 향로가 지금처럼 강력해진 것은 지난 1월 서포터 아이템을 전체적으로 상향했던 7.2버전 패치 이후부터였다. 그로부터 약 반 년이 지나서야 재조명됐을 뿐이다. 라이엇 게임즈는 지난 8월에서야 ‘불타는 향로’의 능력치를 한 차례 감소시켰다.

현역으로 활동 중인 한 서포터 선수도 이런 ‘카더라’와 관련해 “이번 대회가 중국에게 기회인 것은 맞지만, 특정 지역 득세를 위해서 밸런스를 변경했다는 건 말 그대로 헛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롤드컵에 참가한 한국 원거리 딜러 캐리력이 중국에 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카더라’는 라이엇 게임즈, 리그 오브 레전드 그리고 불타는 향로와는 별개로 e스포츠의 올림픽 입성을 추진하는 이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종목사 주도 패치로 인한 게임 밸런스 붕괴 및 특정 지역이 얻는 낙수효과로 인한 유저 불신 문제다.

e스포츠는 캐릭터·아이템 밸런스 패치나 게임 규칙 변경 등에 의해 승패가 크게 좌우된다. 가령 국제대회에서 항상 좋은 성적을 내왔던 대만 플래시 울브즈는 이번 롤드컵 조별예선에서 1승5패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조기 귀국했다. 향로 효과를 등에 업고 날뛰었어야 할 ‘베티’ 루 유훙이 상대 원거리 딜러와의 캐리력 대결에서 완패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게임도 마찬가지다. 블리자드가 만든 FPS 게임 오버워치도 리그 오브 레전드와 같이 한국이 절대적 강자라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 힘의 원천인 탱커·힐러 포지션의 캐리력을 제한한다면 타 지역과의 갭은 줄어들게 돼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종목사는 절대적 권한을 갖는다. e스포츠의 태생적 특징이자, 한계다.

과거 3개 종족 선수가 모두 출전해야 했던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는 어쩌면 이 부분에서 가장 자유롭다 할 만하다. 특정 종족의 밸런스를 조절할 시 양 측이 똑같이 수혜 혹은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아시안 게임에서 선보일 스타크래프트2는 단체전이 아닌 단순 개인전일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기업인 라이엇 게임즈나 블리자드, 밸브가 특정 지역 혹은 국가의 득세를 위해 게임 밸런스를 건들 리야 만무하다. 하지만 어쨌거나 해당 종목 협회가 아닌 사기업 주도 하에 이뤄진 변화가 경기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기존 스포츠에 전례가 없던 일이다. 아디다스가 축구공을 마름모꼴으로 바꾸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메이저 스포츠는 이 다름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을까. 설득하는 건 그들이 아닌 e스포츠 측의 몫이다.

올림픽은 수조 원이 오고 가는 ‘규모의 게임’이다. 다른 종목이 그러하듯 e스포츠도 정치, 권력, 돈 등 각종 논리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심을 잡아줘야 할 국제e스포츠연맹의 영향력이 아직 미약하기에 더욱 그렇다. 이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서 성급히 아시안 게임, 올림픽 등 메가 스포츠 이벤트 입성을 추진했다가는 “너흰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핀잔만 들을 게 자명하다. 조급해선 안 된다. 여전히 더욱 느린 호흡, 더욱 멀리 보는 시각이 필요한 시기다.

윤민섭 기자 yoonminseop@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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