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초점] 여배우의 베드신, 픽션이 아닌 실제 폭력이라면?

여배우의 베드신, 픽션이 아닌 실제 폭력이라면?

이은지 기자
입력 : 2017.08.11 17:42:26
수정 : 2017.08.11 17:42:39


[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여성 배우들이 영화에서 찍는 노출과 섹스 장면은 어떤 영화건 초미의 관심사다. 이른바 ‘베드신’(Bed Scene)으로 총칭되는 성적인 장면들은 남자 배우들과 비교하면 비정상적이라고 할 정도의 큰 관심을 모은다. 최근 개봉한 영화 ‘리얼’만 해도 영화의 완성도를 제쳐놓고 개봉 전 주연배우인 설리의 베드신이 큰 홍보 포인트가 됐을 정도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관심은 배우들의 역할이나 캐릭터, 연기보다는 맨몸이나 성적 대상화에만 몰려 있고, 자연스레 배우들이 꺼리기 마련이다.

이는 최근 불거진 김기덕 감독의 폭행 혐의와도 맞물린다. 지난 3일 여배우 A씨 측은 “김기덕 감독이 2013년 영화 ‘뫼비우스’를 찍으며 여배우 A에게 대본에 없는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거나 뺨을 때리는 등 모욕적인 행동을 해 영화에서 하차했다”며 김기덕 감독을 고소했다고 밝혔다. 김기덕 감독은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해당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고, 김 감독은 곧 소환조사를 앞두고 있다.

이 같은 베드신을 둘러싼 트러블은 사실 김기덕 감독만의 일은 아니다. 비슷한 사고가 종종 있다는 것은 영화 제작 스태프를 넘어 일반 관객들도 암암리에 알고 있는 내용인 것. 당초 협의되지 않은 베드신 촬영 때문에 배우와 제작진이 의견 충돌을 일으키는 것은 워낙 유구했다. 앞서 거론했듯 유쾌하지 않은 관심 때문에 배우들은 자연스레 베드신 촬영을 꺼리게 되고, 이에 제작진은 대본에 베드신을 최대한 축소해서 기재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 ‘일단 계약만 하고 보자’는 식의 졸렬한 관행이다. 이후 완성된 대본을 받아들고 촬영에 들어갔을 때, 배우는 생각보다 길고 노출이 많은 베드신에 당황하기 일쑤다. 카메라를 비롯한 현장이 모두 마련돼 있고, ‘너만 참으면 된다’는 식의 강요에 울며 겨자먹기로 베드신을 찍은 후 후회했다는 여배우들의 이야기는 종종 방송에서 이야깃거리로 소비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단순한 이야깃거리로 소비되고 끝날 일일까. 지난 10일 방송된 온스타일 ‘뜨거운 사이다’에 출연한 배우 이영진은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지금 (이런 이야기가)터진 것도 늦게 터졌다는 생각이 든다”는 이영진은 “베드신은 대본에 단 한 줄 뿐이었고, 이미지 처리를 하기로 돼 있었지만 막상 촬영장에서 베스신을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현장에서 감독이 ‘완전히 노출해 달라’고 설득했다는 것. 덧붙여 이영진은 베드신이 여배우에게는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며 “뭉뚱그려 쓰지 말고 철저한 계약 하에 찍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이외에도 앞서 배우 이상아는 중학교 2학년 때 촬영한 영화 '길소뜸'에서 임권택 감독의 요구로 전라노출 연기까지 감행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당시 이상아는 “벗어야 한다고 해서 못 하겠다고 했는데, 임권택 감독님이 '너 돈 많니?'라고 물었다”며 “'너 돈 많으면 이때까지 찍은 필름 다 물어내고 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이상아는, 성인 영화 스태프들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카메라 앞에서 전라 노출까지 하게 된 것이다.

관객들은 수많은 영화를 본다. 대부분의 영화는 ‘픽션’이라는 이름하에 다양한 내용을 다룬다. 그 안에 아무리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이 담겨있더라도 관객들이 가볍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이유는 그 모든 것이 가짜로 만들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찍은 배우들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로 폭력적인 상황에 처해서 해당 장면을 찍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 영화를 즐겁게 소비할 수 없을 것이다. 베드신 촬영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성폭력과 강요는 단순한 이야깃거리로 다룰 일이 아니다.

onbge@kukinews.com

맨 위로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