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채 마르기도 전에...12명 더 세상을 떠났다 [무너진 건물 아래③]

6월 이후 철거공사장 사고 56건 발생...사상자 55명
정부 대책과 공사현장 자구 노력에도 비극 지속


눈물 채 마르기도 전에...12명 더 세상을 떠났다 [무너진 건물 아래③]
부산 범일동 철거공사 현장에서는 지난해 8월 외벽과 함께 실외기가 골목길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래픽=이해영 디자이너

9명의 생명이 사라진 광주 학동 붕괴사고는 우리 사회에 일대 경종을 울렸다. 건물 해체(철거)공사의 위험성을 인식한 시민들은 안전관리 강화를 촉구했다. 유족들도 다시는 동일한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철거공사장 사고위험은 오늘도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아찔한 기억


“떨어지는 실외기 아래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부산 동구 범일동에 위치한 한 빌딩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가을(가명)씨는 지난해 주변에서 일어난 사고를 기억하며 뒷말을 잇지 못 했다. 

지난해 6월4일. 김씨는 근무하던 건물에서 급히 대피한 경험이 있다. 철거 공사가 진행 중인 옆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가 원인이다. 그는 화재 열기에 근무 중인 건물 유리창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급히 1층으로 몸을 피했다. 건물 8층의 냉각탑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김씨의 회사 건물까지 영향이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회사 건물로 번지기 전에 불길이 잡혔지만, 김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찔한 사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씨는 직장 동료로부터 또 다른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같은 해 8월16일. 철거 건물 외벽이 골목길로 떨어져 내렸다. 떨어진 외벽은 주변 건물의 에어컨 실외기 등을 덮쳤고, 곧 대형 에어컨 실외기가 연이어 추락했다. 이 사건으로 실외기 16대와 건물 유리창 90장 이상이 파손됐다. 현장에 없던 김 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두 달 새 벌어진 사건들은 김 씨의 일상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김 씨는 첫 사고를 겪은 직후에도 건물 철거 공사장의 안전 문제를 깊게 고민해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첫 사고 4일 후 광주 붕괴사고가 발생했지만 그에게 철거 공사장의 안전 문제는 여전히 남의 일이었다. 하지만 8월까지 사고가 연이어 벌어지면서 그도 불안해졌다. 그는 이제 건물 철거 공사장을 보면 길을 돌아간다. 자신도 철거 사고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김 씨는 “첫 사고 때만 해도 단순한 해프닝(촌극)으로 생각했다. 두 번째 사고 소식을 듣고 광주 붕괴사고가 떠올랐다”며 “최근에는 건설 현장을 보면 길을 피해 간다. 대형 철거사고에 공사장 안전문제가 많이 개선된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직 개선이 더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눈물 채 마르기도 전에...12명 더 세상을 떠났다 [무너진 건물 아래③]
철거공사 현장에서 작업자의 추락사는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지난해 10월 안성의 한 철거공사 현장에서는 아무런 안전조치 없이 일하던 작업자가 6m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픽=이해영 디자이너

막지 못한 비극


계속된 철거공사장 사고는 결국 비극을 불러왔다. 지난해 10월 29일 천안의 한 병원에서 남성 한 명이 사망했다. 그는 4일 전까지만 해도 경기도 안성의 판넬 건물 철거 공사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인물이다. 6m 높이의 작업 현장에서 지붕을 철거하고 있던 그에게 사고는 한순간 찾아왔다. 6m 아래로 떨어진 그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4일 만에 목숨을 잃었다.

사고 후 드러난 사실은 한 남성의 죽음이 예고된 사고였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 사고원인은 두 가지로 꼽혔다. 먼저 경험이 없는 건축주가 직접 공사를 맡아 철거를 진행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작업계획이나 안전관리 계획은 존재하지 않았다. 공사 현장의 안전은 방치되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작업자 역시 안전모와 안전대는 물론 생명줄인 안전고리마저 체결하지 않아 비극과 마주하는 결말을 맞았다.

지난해 11월에는 강원도 원주시 단독주택 철거 공사장에서도 안타까운 생명이 사라졌다. 공사장에서 주택 외벽 일부를 절단하는 작업을 맡고 있던 남성이다. 그는 절단하던 외벽이 그대로 자신을 덮칠 줄 알지 못했다. 무너진 외벽에 30분 넘게 깔려있던 그는 끝내 세상을 떠났다. 어처구니없는 사고도 있었다. 8월 부산 남구에서는 한낮에 길을 가던 노인이 철거 공사장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차단할 안전 관리 요원과 안전 펜스 등은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눈물 채 마르기도 전에...12명 더 세상을 떠났다 [무너진 건물 아래③]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해 6월10일 광주 붕괴 사고 현장을 찾아 “2019년 서울 잠원동 사고와 유사한 사고가 재발해 국민 여러분께 대단히 송구스럽다”면서 “앞으로는 전국 철거현장에서 이런 사고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무총리실 제공

사고 56건, 사망 12명

광주 붕괴사고 이후 지난해 말까지 철거 공사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총 12명에 달한다. 쿠키뉴스가 지난해 6월 10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정부에 접수된 건설사고 가운데 철거공사만 집계한 결과 총 56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56건의 사고에서 나온 사상자는 55명. 이 가운데 12명은 사망했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에서 3명, 서울‧강원‧전북에서 각 1명, 경북‧부산‧경남에서 각 2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보면 전체 사고 건수는 크게 줄었다. 그러나 사망자 숫자는 오히려 증가했다. 2020년 같은 기간에는 76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사상자 79명 중 사망자 8명이 나왔다. 광주 붕괴사고 이후 12명이 사망한 것과 비교하면 사망자가 4명 더 적다. 정부의 각종 대책과 공사 현장의 자구 노력에도 사망자가 늘어난 것이다. 

2019년 잠원동과 2021년 광주 학동 붕괴사고 유족들은 사고 이후 공통된 바람을 내놓았다. 다시는 철거 공사장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달라는 바람이다. 유족들의 호소에 대통령부터 총리, 여러 국회의원까지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들의 약속은 지금도 유효한 상황이다. 그들의 약속은 지켜지고 있을까. 

조계원 안세진 지영의 기자 chokw@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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