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은 떠났고, 영화인은 거리로 [코로나19, 그 후③]

관객은 떠났고, 영화인은 거리로 [코로나19, 그 후③]
12월15일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보러 극장을 찾은 관객들.   사진=이준범 기자

# 12월15일. 극장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감독 존 왓츠)(이하 ‘노 웨이 홈’) 개봉날이었다. 사전 예매율 95%를 넘어섰다. 첫 타임부터 매진이 이어졌다. 이날 하루 63만4927명(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의 관객이 ‘노 웨이 홈’을 봤다.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이렇게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은 건 지난해 1월 설 연휴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 이후 처음이다. 이날 서울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점에서 만난 이모(28)씨는 ‘노 웨이 홈’을 보기 위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두 번째로 극장을 찾았다고 했다. 이전엔 “한 달에도 여러 번 극장을 왔다”라는 그는 “(거리두기만 아니면) 지금도 영화를 보러 다니고 싶다”고 했다.

# 12월21일. 영화인 49명이 국회의사당 앞에 모였다. 머리엔 빨간띠를 두르고, 손엔 피켓과 현수막을 들었다. 이들은 “영업시간 제한 해제해 영화업계 살려내라”라고 외쳤다. 지난 16일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로 영화관 영업시간이 오후 10시까지로 제한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극장들은 당장 주말에 예약된 저녁 시간대 표를 모두 환불해줘야 했다. 한국상영관협회,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수입배급사협회 등은 긴급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이날 영화업계에 정부 지원을 호소하며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창무 한국상영관협회 회장은 이날 “극장 영화업계의 고통은 한계다. 버틸 힘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코로나19 확산으로 관객수가 급감한 지 1년10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영화계는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얼마나 많은 관객이 극장을 떠났을까. 코로나19 이후에도 영화는 계속될 수 있을까.

관객은 떠났고, 영화인은 거리로 [코로나19, 그 후③]
12월21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비대면으로 영화표를 구매하는 관객들.   사진=이준범 기자

그 많던 관객은 다 어디로 갔나

2019년 2억2600만명이 넘었던 관객수는 지난해 약 5900만명으로 크게 줄었다. 연 관객수가 6000만명 이하로 떨어진 건 2004년 영화관입장권 집계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12월21일까지 기록한 올해 총 관객수는 약 5700만명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전국 극장이 적자를 면하려면 월 관객수 1200만명을 넘어야 하지만, 약 1700만명을 기록한 지난해 1월 이후 월 관객수 1000만명을 넘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영화계에선 ‘볼 영화가 없다’는 것이 관객수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라고 분석한다. 최근 개봉한 ‘노 웨이 홈’이 좋은 사례다. 확진자가 8000명대를 기록하며 다시 방역 강화 조치가 나왔지만, ‘노 웨이 홈’은 마블 팬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여 개봉 일주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조성진 CGV 전략지원담당은 “관객들을 대상으로 극장에 오지 않는 이유를 묻는 설문조사를 하면, ‘볼만한 영화가 없다’는 답변이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극장에서 코로나19 2차 감염이 발생하지 않으면서 관객들 심리가 극장을 안전하게 느끼는 쪽으로 흘러갔다”며 “올해부터 볼만한 외국영화가 나오면서 관객을 끌기 시작했다. 관객들이 ‘노 웨이 홈’을 폭발적으로 예매하면서 영화 시장이 어느 정도 정상화되는 과정으로 간다는 기대감을 갖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극장을 찾던 관객들이 OTT 서비스로 이동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해에만 전 세계 유료가입자수 약 3600만명이 증가하며 총 2억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영화계에선 OTT를 완전한 경쟁 상대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상생의 대상이기도 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OTT 공개 작품을 위한 섹션을 신설했다. 최근 극장에서 OTT 오리지널 영화를 2주 먼저 공개하는 홀드백 제도에 맞춰 개봉하고 있다. 조성진 담당은 “관객들 습관이 집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에 우려도 있다”면서도 “극장과 OTT가 경쟁하는 모습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상생과 공생 관계로 만들어가려고 노력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관객은 떠났고, 영화인은 거리로 [코로나19, 그 후③]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영화업계 정부지원 호소 결의 대회’에 참석한 정윤철 감독.   사진=이준범 기자

영화인들은 왜 거리로 나서야 했나

‘노 웨이 홈’ 개봉으로 다시 봄날이 찾아오는 줄 알았다. 밝아진 분위기에 영화 ‘킹메이커’, ‘비상선언’ 등 한국영화 기대작들도 개봉을 준비했다. 하지만 정부의 방역 강화 조치로 영화관 영업시간이 오후 10시로 제한되며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영화들은 줄줄이 개봉을 잠정 연기했다. 올해 연말 극장가는 ‘노 웨이 홈’을 비롯해 ‘매트릭스: 리저렉션’,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등 외화로 가득 찼다.

몇 달 전에도 영화계는 오후 10시 영업 종료로 운영한 경험이 있다. 이번엔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다르다. 관객들이 다시 극장을 찾기 시작한 상승 분위기를 깨뜨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동안 영화업계에 대한 정부 지원이 미약했던 점, 별다른 요구사항 없이 정부가 제시한 방역 조치보다 더 강한 제도를 자체 시행했던 점 등 쌓였던 불만이 폭발했다.

최근 한국영화 ‘유체이탈자’를 극장에서 개봉한 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영화가 개봉을 할 수 없는 상황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영화 투자배급사마다 영화를 10편씩 갖고 있다”며 “극장에서 영화를 개봉해서 투자금이 회수되고 새로운 영화에 투자가 들어가는데 1년치 이상 영화 라인업을 갖고 있으니까 투자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자영업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영화 제작사로서 너무 힘들다”라며 “매출이 –70%를 기록하는 건 여행업계, 항공업계 수준이다. 진짜 힘들고 막바지”라고 강조했다.

한국수입배급사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상진 엣나인 대표는 정부가 영화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해주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극장에서 상영되고 수익을 창출하는 건 중소규모의 영화제작사와 배급사”라며 “극장 지원이 대기업 살리기라 판단하는 건 잘못이다. 독립·예술영화 쪽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 했다. 또 “극장은 다른 대중이용시설과 다르게 봐야 한다”라며 “극장에선 한 방향으로 앞을 보고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띄어앉기를 해서 전체 좌석의 70%만 열린다. 직군 특성에 맞춰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세우는 게 맞다”고 전했다.

관객은 떠났고, 영화인은 거리로 [코로나19, 그 후③]
영화 '친구2' 촬영 현장.   사진=박효상 기자

영화 제작 현장은 어떻게 달라졌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제작 현장 풍경도 달라졌다. 촬영을 준비하는 기간부터 코로나19 방역 대책을 함께 준비한다. 현장에서 방역을 관리하는 담당자를 따로 둬서 매번 촬영할 때마다 소독기를 뿌리고 체온을 확인한다. 수시로 스태프들의 마스크를 챙기고 손 소독제를 나눠준다. 현장 스태프들은 PCR 검사를 단체로 1주~2주에 한 번, 많게는 매일 받는다. 병원이나 학교 등 관공서에서 촬영할 땐 반드시 전날 검사를 받아야 촬영이 가능하다.

스태프나 배우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 즉시 촬영이 중단된다. 예정된 촬영 일정이 바뀌고 촬영 기간이 연장되면 추가로 새 계약서를 써야 한다. 실제 촬영 현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경우도 있다. 영향을 미친 촬영 일정을 코로나19 지난 7월 배우 이정재가 출연하는 영화 ‘헌트’ 제작사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와 스태프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제작이 중단됐다. 지난 8월엔 넷플릭스 영화 ‘서울대작전’ 촬영 스태프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기도 했다. 배우들의 확진과 밀접 접촉으로 촬영이 중단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올해 초 OTT 작품에 제작 스태프로 참여했던 임모(34)씨는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촬영 현장 섭외가 가장 힘들어졌다고 했다.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100명~200명에 달하는 낯선 인원이 촬영을 위해 모이는 걸 반기는 곳은 없었다. 그는 “병원 촬영 허가를 받을 수가 없게 됐고, 가정집도 굉장히 예민해서 아파트 단지에서 촬영을 하면 주민 전체 동의를 얻으러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또 “많은 인원이 모여 있으니까 일반 시민이 신고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촬영이 우리의 경제 활동이니까 방역 조치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공문을 받아서 보여드렸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고 했다.

영화를 제작하던 현장 스태프들은 현재 대부분 OTT 영화와 드라마 제작 현장으로 이동하는 추세다. 영화는 투자를 받지 못해 제작이 대부분 중단됐지만, OTT 플랫폼에서 서비스되는 국내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은 늘어난 영향이다. 실제로 OTT 작품들은 대부분 영화인들에 의해 영화 제작 시스템으로 제작되고 있다. 한창 영화 제작이 활발하게 이뤄진 시기보다 현장 인력을 찾는 곳이 더 많아졌을 정도다.

영화 현장에서 10년 정도 근무한 김모(37)씨는 “OTT 플랫폼에서 제작하는 작품이 많아지면서 많은 영화 제작 스태프가 OTT 작품 제작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며 “100% 코로나19의 영향은 아니다. 넷플릭스와 애플TV+, 디즈니+, 티빙, 쿠팡플레이 등에서 국내 오리지널 작품을 많이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전히 영화만 고집하는 스태프도 있고 OTT 작품에서 일하는 걸 힘들어하는 분도 계신다”라며 “당장 경제적으로 급한 스태프들에게 일자리가 많아진 상황인 건 맞다”라고 설명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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