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알바 '히어로'를 모십니다" [놀이터통신]

초등학교 10곳 중 4곳 '학부모 교통안전봉사'
학부모들 "봉사 아닌 강제…부담스럽다"

교통안전봉사 녹색어머니 깃발. 사진=임지혜 기자

"40분짜리 교통안전 봉사 활동에 1만5000원 드립니다. 제발 연락주세요"


녹색어머니회 활동 D-6인 지난 3일 고심 끝에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녹색 알바(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교통안전 '봉사'에 굳이 비용까지 들이며 왜 알바를 구했을까. 이날 오전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녹색어머니 활동을 약 일주일 남기고 일정을 전달한 게 발단이 됐다. 봉사 취지를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론 사실상 통보라는 불만을 지울 수 없었다. 하필 이날 부부 모두 취소할 수 없는 회사 업무가 있었던 탓에 당장 봉사활동을 대신 해 줄 수 있는 대체자를 찾는 일이 급선무였다. 


먼저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 일정을 바꿀 수 있을지 연락을 취했다. 돌아온 답은 "반 친구 학부모님들과 (일정을) 바꾸세요". 맞벌이 부부인 탓에 다른 학부모들을 만날 일이 많지 않았던데다 가깝게 알고 지내는 학부모가 없어 난감했다. 담임 선생님이 어렵게 연결해 준 같은 반 학부모도 갑작스러운 부탁에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모두를 위한 봉사활동이 모두의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세 자녀를 키우며 교통안전봉사를 하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늘 어려움이 있었다. 부부 중 누구 하나라도 연차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봉사활동에 나섰고, 막내 아이가 어릴 땐 아기띠를 한 채 녹색어머니 깃발을 들고 횡단보도에 섰다. 여의치 않은 경우엔 먼 거리에서 온 조부모가 활동을 대신하기도 했다. 

실제 많은 워킹맘과 전업맘들(아빠 포함)은 이같은 상황을 겪고 있으며 부담스럽다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일부 지역은 교통안전봉사를 축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초등학교 10곳 중 4곳은 학부모들의 봉사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 10월 국감에서 교육부를 통해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학부모 교통안전봉사제도를 운영하는 초등학교는 전국 6212개교 가운데 약 43%에 달한다. 

맘카페, 지역카페, 당근마켓 등에 올라온 녹색어머니 구인글. 사진=당근마켓, 네이버 캡처
학부모 입장에선 아이들 안전을 생각하면 교통봉사활동을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스쿨존 내 12세 이하 어린이 교통사고 건수는 483건이다. 2019년 567건에 비해 14.8% 줄어든 수준이지만 여전히 부상자는 연간 500명을 웃돌고 있다.

지난 8일 인천의 부평구의 한 교차로에서 학교를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이 화물차에 치어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3월에도 인천의 한 초등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이 화물차에 치어 숨진 바 있다.  

자신이 봉사활동을 하지 않으면 다른 학부모에 일을 전가하는 것이란 부담도 크다. 초등 4학년 자녀를 둔 이모씨(40)는 "교통안전 봉사활동 일정을 바꿀 수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학부모와 서로 맞아야 가능하다"며 "다들 아이 키우며 힘든 상황인 것 아는데 (변경을) 부탁하는 입장에선 눈치보이고 미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초등 2학년 자녀를 둔 양모씨(39)는 "녹색어머니회 반대표도 아닌데 (전업맘이라는 이유로) 다른 학부모의 봉사활동을 대신 해달라고 연락을 받을 때마다 당혹스럽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일부 학부모들은 맘카페나, 지역 카페, 당근마켓 등 온라인 플랫폼으로 알바를 고용한다. 온라인에 올라온 구인 게시글들을 살펴보면 1시간도 채 안되는 시간에 책정된 알바비는 보통 1만원~2만원선이다. 

기자 역시 당근마켓을 통해 알바를 고용했다. 히어로(영웅)처럼 등장한 어르신이 대신 녹색어머니 조끼를 입었다. 여유시간을 이용해 알바를 하신다는 어르신은 활동을 마치고 "언제든 또 불러 달라"며 멋있게 퇴장했다. 

일각에선 교통안전봉사를 사회적 일자리 사업 등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일자리로 제공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2번째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으로 '어린이 등하굣길 교통안전' 공약을 발표하고 "학부모의 무임 노동에 기댄 말뿐인 봉사활동을 없애고 어린이 안전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며 "사회적 일자리를 활용해 등하굣길 교통안전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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