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뀔 수 있다, 바뀌어야 한다” [‘D.P.’ 현실의 날②]

“바뀔 수 있다, 바뀌어야 한다” [‘D.P.’ 현실의 날②]
‘D.P.’ 스틸.   넷플릭스 제공.
* 넷플릭스 드라마 ‘D.P.’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그는 도망쳤다. 살기 위해 달아났다. 육군 일병으로 복무하던 최준목(김동영)은 선임들에게 물고문을 당했다. 밤이 오면 선임들은 그의 얼굴에 방독면을 씌우고 그 속으로 물을 부었다. ‘잘 때 코를 많이 곤다.’ 단지, 그 이유에서였다.

지난달 27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헌병대 군무 이탈 체포조(Deserter Pursuit, D.P.)인 안준호(정해인)와 한호열(구교환)을 통해 군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를 폭로한다. 최준목은 물고문 등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탈영했으나 가해자가 고작 전출 조치됐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구타, 모욕, 성폭력 등을 겪으면서도 폭력의 고리를 끊으려 안간힘 쓰던 조석봉(조현철)은 끝내 분노에 사로잡혀 폭주한다. “우리가 (군을) 바꾸면 되잖아”라는 한호열의 호소에 조석봉은 “군대 수통에 적힌 날짜가 1953년”이라며 조소한다.


작품 배경이 된 2014년은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과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때다. 당국은 이듬해 군인복무기본법을 개정해 피해 신고 의무를 포함시키는 한편, 군 내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하고 동기생활관을 운영하는 등 병영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대안을 내놨다. 이를 의식한 듯 군 내부에서는 “2014년 일선 부대에서 있었던 부조리라고 보기에는 좀 심하다”(조선일보)거나 “10~15년 전 군기가 가장 문란한 부대들에서나 일어날 만한 가장 극단적 상황을 모았다”(전인범 전 특전사령관)는 성토도 나왔다.

“바뀔 수 있다, 바뀌어야 한다” [‘D.P.’ 현실의 날②]
‘D.P.’ 스틸.   넷플릭스 제공.
그러나 군대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는 현재 진행형이다. 군 인권센터가 지난 5월 낸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센터에 접수된 가혹행위(고문·악폐습) 관련 상담은 2019년 91건에서 2020년 82건으로 소폭 줄었으나, 구타(상해·폭행), 언어폭력(모욕·폭언) 상담은 오히려 늘었다. 성폭력(강간·준강간·유사강간·의제강간)은 2019년 3건에서 16건으로, 성희롱은 44건에서 55건으로 증가했다. 올해만 하더라도 육·해·공에서 여군 중사·부사관이 성폭력 피해를 입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바뀔 수 있고, 바뀌어 왔다. 하지만 더 바뀌어야 한다.” 군 인권센터 김형남 사무국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군 내 인권침해가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로 군 인권 정책의 단발성과 군 조직의 폐쇄성을 들었다. 가혹행위나 성폭력 등 인권침해는 음지에서 벌어지기에 꾸준하고 각별히 살피지 않으면 피해 사실을 인지하기조차 어렵다. “그런데도 군은 인권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어느 순간 달성할 수 있는 임무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다.

“군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를 되도록 조용히 내부적으로 처리하고자 하는 군조직의 인식”(국가인권위원회)도 문제다. ‘D.P.’에서 헌병대장 천용덕(현봉식)은 최준목이 당한 가혹행위 피해를 “더 안 부풀리고 시마이(종결)하기로 했다”면서 이것이 “전체를 위한 판단”이라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조석봉 사건 때도 형사들이 개입하자,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 특수임무대를 소집한다. 김 사무국장은 “인권 문제는 외부와의 거버넌스(공공경영)를 통해 풀어나갈 여지가 많은데, 군은 외부 지적을 간섭이나 공격으로 받아들인다는 인상이 짙다”고 짚었다.

극 중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탈영했다가 D.P.에 ‘체포’된 조석봉은 살의에 찬 채 읊조린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다들 방관했으면서….” 이 대사가 담긴 ‘D.P.’ 6화의 제목은 ‘방관자들’. 작품이 겨냥한 화살은 가해 병사와 군 내부 시스템을 넘어 군 내 인권침해를 알면서도 묵인한 방관자들, 즉 우리 사회를 향한다. 김 사무국장은 “군을 변화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일반 국민의 인식”이라면서 “시민들의 대규모 집회로 병영 문화를 개선한 대만 사례처럼, 국민들이 계속해서 군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문제 제기에 동참해야 변화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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