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민할 시간 없어요. 그때그때 작품에 집중하는 거예요. 고민하는 순간 연기 외의 수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돼요. 그러면 전 연기를 좋아하지 못할 것 같아요.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면 그건 연기가 아니라 저를 전시하는 거예요.” 배우 구교환(44)은 자신에 대한 대중의 기시감을 걱정할 여력이 없다. 개성 있는 연기로 주목받은 뒤 익숙한 다작 배우가 됐지만 여전히 ‘배역으로 남고 싶은 마음’뿐이다. 28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요즘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는 생각이 가장 크다”고 힘주어 말했다.
구교환에게 ‘지금 이 순간’이라 하면 영화 ‘군체’ 개봉과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 종영이 있겠다. ‘군체’는 올해 개봉작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누적관객수 200만명을 돌파했고 ‘모자무싸’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애청자들의 ‘인생작’으로 꼽힌다. 지난해 연말 이례적인 흥행에 성공한 로맨스물 ‘만약에 우리’까지 합치면 ‘3연속 홈런’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타자’가 아닌 ‘투수’라고 소개했다. “제가 타석에 들어간 적이 있나요? 홈런은 관객분들이 쳐주시는 거고 저는 투수의 입장으로 계속 공을 던져드리는 겁니다.”
구교환은 투수 중에서도 포수의 프레이밍을 잘 따르는 유형이다. 그는 자신의 개성이 포수에게서 나온다고 봤다. 이는 자신을 ‘전시’하지 않고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이유다. “시키는 대로 던져요. 포수는 감독님이나 촬영감독님일 수도, 배급사 쇼박스나 제작사 와우포인트일 수도 있고. 공을 잘 꽂아 넣는 편인 것 같아요. 그래서 ‘군체’라는 팀에서 뛸 수 있는 거겠죠. 그것도 못 하면 안 끼워주겠죠(웃음). 배우끼리는 서로 이닝을 달리하는 거죠. 마운드에서 이어달리기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주변에서 들었던 제 장점이 ‘생각보다 피드백을 잘 수용한다는 것’이었어요. 저를 그 배역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은 다 다르잖아요. 그 사람들의 개성을 흡수하는 것이 곧 개성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군체’에서 포수 격인 연상호 감독은 이미 ‘반도’(2020)로 한 차례 호흡을 맞춘 사이다. 그때는 서대위였고, 이번에는 서영철이다. 서영철은 감염사태를 일으킨 제1빌런 생물학 박사로, 좀비떼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이들을 업데이트하고 조정하는 인물이다. 구교환은 같은 서씨지만 새로웠단다. “새로울 수밖에 없죠. 최규석 작가님의 시나리오로 처음 연기했어요. 그리고 보셨다시피 서대위와는 또 다른 빌런 서씨가 탄생했어요. 서대위가 굉장히 불안하고 아슬아슬하고 연약하다면 서영철은 강한 확신으로 똘똘 뭉쳐 있어요. 또 서영철은 깔끔하게 퇴장해요. 사실 더 나쁘잖아요. 악역이 잘 죽는 것만큼 쾌감이 큰 게 없어요.”

괜한 자신감은 아니었다. 구교환이 새로운 유형의 악인을 선보인 것에는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특히 그는 자칫 우습게 보일 수 있는 좀비와의 교감을 실제인 양 구현하는 중책을 너끈히 수행했다. 이를 두고 연상호 감독은 ‘마그네슘 부족 액션’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구교환은 대본에 충실했다지만 분명 그만의 해석도 유효했다. “이미 다 있는 설정이었어요. 저는 그 강도를 조절하려고 했어요. 처음에는 와이파이 두 칸 뜨는 느낌으로 거칠게 몸을 뒤트는데 풀로 다 차서 통신이 잘될 때는 눈만 움직여도 매끈하게 연결이 되는 거죠. 컨디션에 따라 움직임을 달리 가져갔죠.”
구교환은 이번 작품에서 전지현과 처음 만났다. 극중 전지현은 생존자 그룹 리더이자 생명공학과 교수 권세정 역을 맡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척점에 있었지만 극 후반까지 함께(?) 살아남아서일까, 제법 좋아 보이는 이들의 현실 케미스트리가 화제다. “혼자 친해졌다고 오해하고 있거든요. 가깝게 지낸 만큼 극 안에서 더 멀게 지내는 게 되더라고요. 적으로 만날 때도 친분이 있으면 더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원래 제가 선배 빅팬이어서요. 내가 아는 배우 전지현의 모습과 실제로 마주한 전지현의 모습이 똑같은 건 되게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데 선배는 생각한 그대로였어요.”
전지현을 염두하고 쓴 시나리오가 있다는 깜짝 고백도 덧붙였다. “전지현 선배는 모르고 계셔서 조심스럽습니다. 기사 보고 놀라시지 않으셨으면 좋겠고요. 선배 이미지가 진짜 다양하시잖아요. 예니콜(‘도둑들’)부터 안옥윤(‘암살’), 련정희(‘베를린’)까지, 제가 도움받아야 되는 얼굴이에요. ‘군체’의 권세정도 전지현 선배라서 매력적인 거예요. 저는 코난과 김전일의 실사화를 보는 기분이 들었어요. 바로바로 서영철의 퀴즈를 풀이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잖아요. 이건 배우의 능력치거든요. 전지현이 곧 개연성인 셈이죠.”
구교환의 능력치도 무시할 수 없다. 그에게는 본인은 물론, 파트너까지 돋보이게 만드는 재능이 있다. ‘만약에 우리’로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문가영이 그랬고, ‘모자무싸’의 고윤정과 ‘군체’의 전지현도 그렇다. “그 상 제 거예요(웃음). 모두 다 받아서 여우주연상이 세 개면 좋겠어요. 상대가 상을 받는다는 건 제가 잘했다는 거 아닐까요? 저라는 요소도 분명히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함께 연기한 배우가 수상하거나 작품상을 받는 걸 너무 좋아해요. 제가 받고 싶은 건 인기상뿐이에요. 연기를 해서 인기를 얻다니 얼마나 영광스럽나요.”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