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0일 (3)
의료인 보호냐, 환자 권리 후퇴냐…본회의 앞둔 ‘의료분쟁조정법’ 논란 가중

의료인 보호냐, 환자 권리 후퇴냐…본회의 앞둔 ‘의료분쟁조정법’ 논란 가중

의료진 중과실 아니면 ‘기소 제한’ 특례 부여
중과실 12개 유형 두고 해석 분분…“포괄적이고 모호”
李대통령 언급 후 입법 논의 급물살…“공론화 부족”
정부, 법안 통과 의지…“과거 의료특위서 합의”

승인 2026-04-17 06:00:07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의사와 환자 모두한테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의료진의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법안을 추진 중이지만, ‘인권 침해’ 반발이 확산하며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개정안에서 ‘중대한 과실’의 정의를 어떻게 규정할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16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는 17일과 23일 본회의를 열어 선거구 획정 법안과 민생법안 등을 처리할 예정으로,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도 상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분쟁조정법의 핵심 내용은 필수의료 행위 과정에서 의료진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발생하더라도 중대한 과실 등이 아닐 경우 국가가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기소 제한’ 특례다. 특례 적용 대상인 필수의료는 중증·소아·응급·분만·외상 등 생명과 직결되거나 난이도가 높은 의료 행위로 규정했다. 이 같은 특례를 적용받기 위해선 △의료배상 책임보험 가입 △의료사고 설명의무 이행 △중대한 과실 없음 등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사망 등 중대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료인은 7일 이내에 사고 경위를 환자나 보호자에게 설명해야 한다.

필수의료 붕괴의 요인으로 꼽히는 의료인 사법 부담 완화를 위해 법안이 추진됐지만, 환자들과 법조계는 중대한 권리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지난 14일 개최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 위헌성 진단 긴급 토론회’에서 박호균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변호사는 “치료 후 발생한 돌이킬 수 없는 중상에 대해 손해배상 공소 제기를 불허하는 것은 획기적”이라며 “사망 사건이 발생했는데 필수의료라고 해서 면죄부를 주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논쟁인 부분은 ‘중과실’ 범위다. 법안에서 명시한 의료진의 중과실은 △생명·신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위험 발생 가능성을 설명하지 않은 경우 △사망·중대한 신체 손상을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필요한 진단·전원 등을 하지 않은 경우 △의학적 진료지침 및 통상 수용되는 진료에서 현저히 벗어난 의료행위를 한 경우 등 12개 유형이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수술실 안으로 의료진이 들어가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의료계는 중과실 정의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중과실 여부에 대한 해석 범위가 넓어 의료현장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소아진료의 경우 성인과 달리 환자의 증상 표현이 제한적이고 보호자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으며, 증상이 급격히 악화되는 특성이 있어 임상적 판단의 불확실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입장문을 통해 “위험 필수의료 분야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높고, 경과의 변동성이 크다”며 “중대한 과실 범위는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하고 사회적으로도 명백한 안전 원칙 위반을 중심으로 엄격하고 한정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짚었다. 또 ‘예측 가능성’이나 ‘통상적 진료’, ‘안전 관리 의무’ 같이 해석의 여지가 큰 문구에 대해선 “삭제하거나 재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소아청소년과 뿐만 아니라 외과, 마취통증의학과 등 다른 진료과에서도 의료분쟁조정법에 대한 우려가 크다. 대한외과학회는 수술 후 발생하는 합병증 인과관계를 단기간에 규명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의료사고 경위를 7일 이내에 환자·보호자에게 설명하도록 한 것은 “의료진에게 불완전한 설명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환자와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의료사고심의위원회의 구성과 관련해선 “위원 17명 중 의료인이 5명에 불과한 현재의 구조로는 임상적 맥락과 수술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외과 수술의 과실 여부를 공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의료사고심의위는 의료사고의 전문적 판단을 위해 보건복지부 산하에 설치되는 전문기구로, 사고가 필수의료 행위인지, 중과실이 있었는지 등을 심의한다.

응급·소아·산모·중증환자 수술에서 마취를 책임지는 마취과 의사들은 개정안에서 ‘약물 투여 전 필수적인 과민반응 검사 미실시’를 중대한 과실의 한 유형으로 규정한 것을 두고 “오히려 위험도가 높은 영역에서 법적 보호가 제한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는 “응급 및 중증 환자 마취에서 충분한 설명과 동의, 검사, 보험 요건, 사후 설명 및 배상 요건을 동시에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이 빈번하다”면서 “생명 구호를 위한 즉각적인 의료행위가 사후적으로 이러한 요건을 기준으로 평가될 경우 임상 현실과 제도 간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3월31일 국회에서 3월 임시국회 제3차 본회의가 열렸다. 연합뉴스 

법안 숙의 과정도 미숙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분쟁조정법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말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의료사고 시 합의 등이 이뤄지면 형사 처벌하지 않는 특례법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후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며 관련 상임위와 법사위를 빠르게 넘었다.

사망이나 중대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까지 형사책임 문제를 완화하는 것은 사법체계의 기본 원칙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중과실 기준이 지나치게 거칠고 추상적이다. 복지부는 세부 기준을 하위 법령에서 정하겠다고 하지만, 그 과정마저 의사단체 중심으로 논의된다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서도 유사한 논리가 위헌 판단을 받은 바 있는데, 의료사고 영역에서 이를 다시 차용하는 것은 재판청구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한번 이런 법이 통과되면 향후 20~30년 동안 제도를 되돌리기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만큼 파급력이 큰 사안인데도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기습적으로 처리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시민사회와 법조계에선 계속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이후 국회 입법 과정에서도 제대로 된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경과까지 함께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법이 부재한 것보다 불완전한 법이라도 있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다. 신현두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지난 14일 경실련 토론회에서 “법안이 불완전하다고 지적하는데, 아예 가만히 있으면 더 힘들어진다”며 “완벽한 법을 만드는 것은 힘들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사고 피해구제법 관련 대부분의 내용은 과거 의료특위에서 합의된 사항으로, 법 시행과정에서 걱정하는 부분을 고려해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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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현 기자
보건복지, 제약바이오 이슈를 쉽고 균형 있게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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