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위기 소도시 주민에게 대통령선거란? [연천을 가다①]

수도권 북부 인구 4만 연천군 민심 르포
대선 관심 크지만 기대감보단 소외감 커
청정자연 활용할 새로운 리더십 등장 기대

소멸위기 소도시 주민에게 대통령선거란? [연천을 가다①]
경기도 연천군내에 내걸린 현수막들. 대선보다는 대부분 지역 현안과 관련한 내용이다.


경기도 연천군은 이중으로 소외된 지역이다. 파주와 포천 사이에 자리잡은 북한 접경지역이라 갖가지 규제가 많다. 이렇다 할 산업도 없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지원에서도 빠지는 경우가 많다. 수도권이기 때문이다. 반면 임진강과 한탄강이라는 두 큰 강이 만나는 곳으로 때 묻지 않은 자연과 두루미로 대표되는 다양한 생물종, 그리고 재인폭포, 차탄천 주상절리 같은 지질학적 명소 등은 이 지역의 자랑거리이자 큰 잠재력이다.

“이웃의 파주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전략적 선택을 잘 한 덕분에 인구가 계속 늘고 있지만 (그러지 못한) 연천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마을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연천 농협간부 출신인 김영모(가명, 50대 후반)씨는 지난 17일 전화 인터뷰에서 “연천군도 접경지역 특성상 보수 정당 후보를 선출해 왔다”면서 “이번 대선도 분위기는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지만 6월의 지방선거에서는 “전략적 선택을 통해 새로운 인물을 선출해야 한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고 말했다.

소멸위기 소도시 주민에게 대통령선거란? [연천을 가다①]
경기도 연천에 내걸린 지역 현안 현수막.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소도시들은 전국단위 대통령선거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지난달 설 연휴 직전 연천군 청산면의 한 식당. 이 지역 중학교 동창들이 모였다. 동창회장인 최모씨는 “인근 시군에 비해 연천만 낙후돼 있다”면서 중앙정부 정권교체와 더불어 지역차원에서도 보수, 진보정당 할 것 없이 새로운 리더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청산면에서 펜션업을 하는 박지훈(가명, 50대 초반)씨도 “동두천에서 연천까지 전철 개통을 계기로 종합적인 지역개발이 필요하다”면서 “초등학교 통합 및 중학교와 연계 운영 등 교육여건 개선을 통해 인구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번 대선에서 정권을 교체하면 연천도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농업을 하는 윤호석씨(가명, 60대 초반)도 “군민들이 모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여러 자질을 말하지만 기대하는 것은 윤석렬 국민의힘 후보라는 쪽으로 결론이 나온다”고 말했다.

늘 보수 후보에 투표해온 연천이 중앙정부에 매번 푸대접을 받아왔으니 이번 대선에선 다른 정당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연천에서 나고 자란 이미숙씨(가명, 40대 초반)는 이재명 후보가 경기도지사 시절인 2019년 연천을 방문했다면서 “접경지역 주민들이 안보관련 희생에 상응하는 대가를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이 후보가 했다”며 연천의 문제를 처음 언급한 그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동두천에서 태어나고 연천에서 살고 있는 김진호(가명, 40대 후반)씨는 “공약이나 도덕성보다는 이재명 후보의 추진력을 눈여겨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민 대상 여론조사에서는 이재명 후보와 윤석렬 후보가 앞뒤를 다투고 있다. 경기일보·인천일보가 공동으로 여론조사전문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2월 4일부터 5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선후보 지지도에서 이 후보는 42.5%로, 39.0%인 윤 후보를 3.5%p포인트 앞섰다. 그러나 경기도 5개 권역 가운데 유독 경원권역, 즉 동두천·양주·의정부·포천·연천의 경우에는 윤 후보(43.9%)가 이 후보(41.9%)를 역시 오차범위 안에서 따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여론조사는 도내 거주 만18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으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이다.}

연천군의 투표율은 매 선거마다 70%를 넘었다. 지역구 국회의원과 군수는 늘 보수당이 차지해 왔다. 인천광역시 강화군이 보수적 투표성향 때문에 ‘경상북도 강화군’이라고 불리듯이 경기도 연천군은 ‘강원도 연천군’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다. 게다가 연천은 경기도에서 인구가 가장 작은 지자체라서 대통령선거에서는 찬밥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연천군 인구는 1983년 8만 명까지 늘었다가 내리막길을 타서 지난 1월 기준 4만 2739명을 기록했다.

이번 대선도 마찬가지다. 윤석렬 후보는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막바지인 지난해 11월 4일 경기도 북부를 돌면서 연천 전곡시장을 찾았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경선자)가 경기북부를 찾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 화제가 됐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달 26일 고양·광명·부천·파주·양주를 방문하며 연천도 찾을 예정이었으나 취소됐다. 설 연휴를 앞두고 호남 민심을 다지는 게 더 급했다.

경기도에서 연천과 가평은 행정안전부가 지난 10월 지정한 전국 인구감소지역 89곳에도 포함됐다. 인구감소 추세가 뚜렷해 정부가 행정적, 재정적 지원 대상으로 삼은 곳이다. 그러나 수도권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 탓에 향후 전개될 지방소멸 지원 대상에서 소외되어 역차별을 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연천읍내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의 최성욱 사무국장은 이 지역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경기 남부에 예산이 100억 배정되면 북부에는 20억이지만, 전국단위 환경단체에서 예산을 배분할 때에는 경기남부 지역단체 합계가 100일 때 북부단체들 합계는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경기북도와 남도로 나누자는 말이 나오는 이유라고 그는 덧붙였다.

연천군민들은 최근에도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상처를 받는 일이 있었다. 동두천 소요산이 종점이었던 1호선 전철이 올해 말부터 연천까지 20.9㎞구간을 더 운행하기로 했지만, 군민들이 우려하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다. 한국철도공사는 당초 계획된 서울 용산-연천 직접연결이 아닌 소요산-연천 셔틀 연결에 차량도 한번에 10량에서 6량으로 줄이기로 했다고 연천군의회 박충식의원(더불어민주당)이 말했다. 군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들과 연천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기존 철도와 마찬가지로 소요산에서 갈아타야 의정부나 서울, 또는 연천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연천군의 대선에 대한 관심은 겉으로 볼 때에는 미온적이다. 군민들은 특유의 피해의식 탓에 대통령선거가 그들의 삶과 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주민들은 그렇더라도 대선 결과가 6월의 지방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지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자체 전직 공무원 김모씨는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부족하다”면서 “정권교체와 함께 연천 지역에 새로운 리더의 등장을 고대한다”고 말했다.

임항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공동대표


[연천을 가다②] 생태관광으로 소멸 위기 넘어선다


※지역 기획 연천을 가다는 3회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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