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코미디는 어디로 갔나 [정치 풍자 예능①]

블랙 코미디는 어디로 갔나 [정치 풍자 예능①]
2012년 방영된 tvN ‘SNL 코리아 3’는 당시 대선 토론을 풍자해 인기를 끌었다. 

“박 후보님은 제가 무섭습니까? 저번 면접 뒤에 저 이 집에 못 들어오게 하려고 면접 규칙 바꾸셨잖아요. 그게 바로 독재 정치, 박 후보님입니다.” / “이 후보님께서는 베이비시터가 될 생각이 없잖습니까. 그런데 왜 자꾸 이 자리에 나오시나요?” / “참 여러 번 말씀드리는데요. 저 박 후보님 떨어뜨리려고 나왔습니다.” /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총성 없는 전쟁과 같다. 제18대 대선 토론을 방불케 하는 살벌한 대화. 이는 대통령이 아닌 베이비시터를 뽑기 위한 자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2012년 당시 대선 토론을 풍자한 tvN ‘SNL 코리아 3’ 베이비시터 코너의 한 장면이다. 김슬기, 김민교, 정성호가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정희, 문재인, 박근혜를 각각 맡아 연기했다.

10년이 지난 2022년. 정치 풍자 코미디는 찾아보기 어렵다. 코미디 프로그램 자체가 적어지기도 했지만, 현존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인 KBS2 ‘개승자’와 tvN ‘코미디 빅리그’에도 정치 풍자 코너는 없다. 국내 OTT 플랫폼 쿠팡플레이가 새로 제작한 ‘SNL 코리아 시즌2’가 맥을 잇고 있다. 그마저도 신랄한 풍자가 오가던 과거와는 다르다. 정치 풍자 코미디는 왜 자취를 감췄을까. 


블랙 코미디는 어디로 갔나 [정치 풍자 예능①]
우리나라 정치 풍자 코미디의 시초로 꼽히는 KBS2 ‘유머 1번지’의 회장님 우리 회장님.

블랙리스트로 위축되고 ‘팬덤 정치’에 몸 사리고

일각에서는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풍자 코미디 판의 경직된 분위기가 이어지는 것과 정치인의 지나친 팬덤화를 문제로 본다. 한 방송 PD는 쿠키뉴스에 “상황이 달라졌다 해도 모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면서 “보수, 진보 등을 고르게 풍자한다 해도 어느 한쪽의 반발을 사는 게 부담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과거에는 신랄한 풍자일수록 대중에 환영받았다. 서슬 퍼런 검열의 시대에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속 시원한 풍자에 시청자는 열광했다. 1980년대 방영된 KBS2 ‘유머 1번지’ 회장님 우리 회장님은 코미디언 고(故) 김형곤이 재벌 회장을 맡아 당시 정치권과 사회 현안을 풍자해 반향을 일으켰다. 이외에도 KBS2 ‘쇼 비디오 자키’ 네로 25시, ‘일요일 밤의 대행진’ 보통 앵커론 등이 사회 문제와 정치권을 꼬집으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정치인에 지지층이 결집하고 막대한 팬덤이 형성되며 상황이 달라졌다. tvN ‘SNL 코리아 시즌 1’ 여의도 텔레토비가 폐지되고 시사 풍자를 다룬 KBS2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용감한 녀석들과 사마귀 유치원 등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제재 받고 정치인에게 고소를 당하는 등 부침을 겪었다. 이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반(反) 정부 인사로 분류된 연예인이 출연 제한 등 외압을 당하고, 극성 지지층의 등장으로 사회 양극화가 심화하며 시사 풍자가 설 자리는 자연히 줄어들었다. 

블랙 코미디는 어디로 갔나 [정치 풍자 예능①]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2’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자취를 감췄던 정치 풍자 코미디의 명맥을 잇고 있다. 

“풍자를 풍자로만 봐줘야 하는데…” 방송계의 고민

여러 층위에서 갈등이 심화된 지금, 풍자 코미디는 발 디딜 곳이 없다. 익명을 요구한 방송 관계자는 “성별 대결, 세대 갈등 등 사회 전반이 날 선 분위기”라면서 “풍자를 풍자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요즘 시대의 풍자는 유머보다 ‘공격’으로 인식된다”이라고 진단했다. 다른 관계자는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을 수위로 완전무결한 코미디를 선보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어중간한 풍자는 오히려 반감을 불러온다”고 짚었다. 

사회적 올바름(PC)에 민감해진 시청자들의 변화 역시 시사 풍자 코미디에 독이 됐다. 과거에는 논란이 되지 않던 일도 요즘 시대에는 지적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한 PD는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는 지적은 제작진에게 치명적”이라면서 “일반 예능도 논란이 잇따르는 만큼 시사 풍자는 연출하기가 더욱더 어려울 것”이라고 견해를 전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프리랜서인 코미디언들이 논란이 될 콩트를 선보이는 건 부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사 풍자 코미디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현 상황에서 코미디가 살길은 시사 풍자뿐”이라고 봤다. 정 평론가는 “약자를 대상으로 코미디를 하면 약자 비하라고 비판받는다”면서 “강자를 대상으로 코미디를 하려면 시사와 정치가 제격”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감한 개그를 던지는 코미디언이 주목받아야 시사 풍자 코미디도 확대될 것”이라면서 “편 가르기에 급급한 사회 분위기를 단기간에 변화시키는 건 쉽지 않다. 다양한 시도가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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