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고택 4천평, 곰탕 다음 가는 나주 명물이 되다

[다시 여행이다 - 차세대 리더에게 듣다] ⑦ 남우진 39-17마중 대표

30년 방치된 나주 원도심 고택 7채에 무모한 투자
100일 동안 트럭 10대 분량 쓰레기 치우며 되살려
조선 시대 정자부터 근대 건축양식까지 모두 갖춰
지자체 도움 없이 곰탕 먹고 찾아오는 문화공간으로

코로나19로 여행이 우리를 떠났다. 오랫동안 여행은 금기어였다. 위드코로나를 앞두고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암담한 시간 속에서도 더 나은 여행을 꿈꾸며 묵묵히 내일의 여행을 기획했던 이들이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바꾼 여행업계 차세대 리더들을 만나보았다.

① 여행업계 앙팡테리블 -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
② 코로나19 극복 산증인 - 이영근 한국스마트관광협회 회장
③ 모빌리티 플랫폼의 빈틈 - 최민석 무브 대표
④ 한국형 도시민박 도전 - 조산구 위홈 대표
⑤ 부산 사나이, 광주의 기억을 되살리다 - 이한호 주스컴퍼니 대표
⑥ 오버하는 공무원, 제천을 맛의 도시로 만들다 - 이정희 제천시 미식마케팅팀장

버려진 고택 4천평,  곰탕 다음 가는 나주 명물이 되다
남우진 대표가 자신의 손으로 가꾼 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나주에 오면 이 사람을 꼭 만나봐야 한다. 나주에 그냥 미친 사람이다”. 송일준 광주대 석좌교수가 나주여행을 제안할 때 남우진 39-17마중 대표를 소개하면서 한 말이다. 남 대표는 이 지역의 버려진 옛집 여러 채를 매입해 지난 5년 동안 직접 복합문화공간으로 일구었다.

남 대표를 따라 나주 원도심 투어를 한 사람들은 두 번 놀란다. 그의 해박한 나주 설명에 한 번 놀라고 그가 나주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 또 놀란다. 고택 공간이 주는 묘한 힘에 이끌려 나주에 정착한 그는 나주 원도심 활성화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전에는 나주곰탕만 먹고 가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곰탕을 먹고 원도심을 가로질러 마중에 가서 차 한 잔 하고 오는 것으로 관광객들의 동선이 확장되었다.

여러 도시에서 수많은 도시재생 사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사업비가 끊기면 활력도 끊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마중은 나주시에서 지원금을 받지 않고 민간의 힘만으로 그 어려운 도시재생을 해냈다. 마중은 4000평이나 되는 넓은 공간이지만 잔칫집처럼 늘 사람이 붐빈다. 언제나 새로운 기획을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나주 마중에서 남우진 대표를 만나보았다.

버려진 고택 4천평,  곰탕 다음 가는 나주 명물이 되다
39-17마중의 마당과 고택.


-입구에 대형 버스가 서 있었다. 오늘도 외부에서 단체 관람자들이 왔나?

공무원 연수로 오신 분들인데 사전에 연락 없이 온 분들이다. 요즘엔 섭외 없이 차 한 잔 하러 들르는 그룹이 많다. 나주곰탕을 먹고 원도심을 둘러보고 마중에 들렀다 가는 것이 하나의 코스가 되었다. 오늘은 전파진흥원과 인터넷진흥원 회의가 마중에서 있었다. 평일 낮 시간에 혁신도시 기관들과 연계해서 회의 공간 제공하고 있는데 나주의 소규모 컨벤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나주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마흔넷에 나주곰탕을 처음 먹었다. 원래 전주에서 컨설팅 회사를 운영했다. 주로 중소기업 대표들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남의 일 말고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주 인근의 제조업 공장이나 한옥마을에서 문화사업 할 수 있는 공간을 알아보았다. 전주는 이미 만개한 곳이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때 지인을 따라 나주에 왔다가 방치된 이 곳을 보게 되었다.

버려진 고택 4천평,  곰탕 다음 가는 나주 명물이 되다
옛담의 정취까지 살린 39-17 마중의 모습.

-왜 방치되었던 고택을 사게 되었나?

지인이 같이 투자할 의향이 있느냐고 해서 둘러봤는데 첫눈에 반했다. 문화사업 공간으로서 가치가 크다는 판단이 들었다. 처음에는 투자 목적이 절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반이었다. 투자로서는 무모한 일이었다. 투자를 결정하기 전에 토지이용계획이나 건물대장을 확인하고 분석하는게 상식인데 묘하게 이끌려서 그냥 저질렀다.

-이 공간의 무엇이 마음을 붙들었나?

옛날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건물이 주는 특유의 유장함이 있었다. 마당의 수목들이 너무 좋았다. 잡목이 많기는 했지만 군데군데 좋은 나무가 많았다. 나주향교와 담을 사이에 두고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이런 공간이 시내 한복판에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상당한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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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39-17마중의 전경

-목서원과 난파정이 39-17마중의 중심인데 어떤 건물인지 설명해 달라.

목서원은 1939년에 지어진 건물로 한 건물 안에 한국식 일본식 서양식 건축 양식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다. 난파정은 1919년에 중건된 건물로 조선 중기 때부터 계속 정자로 쓰였다. 구한말에 활동하던 을미의병장 난파 정석진을 기리는 공간으로 아들이 중건했다.

목서원은 정석진의 손자가 어머니를 위해 지어준 집으로 당시 그는 8000석 부자였다고 한다. 1973년 나주 출신의 재일동포가 장학회를 설립하면서 1990년대 초반까지 사무실로 활용했다. 장학회가 서울로 이동하면서, 사랑채에서 관리인만 살고 본채는 30년 동안 방치되었다.

-방치된 기간이 길어서 보존 상태가 안 좋았을 것 같다.

대체로 양호했다. 다만 목서원을 둘러싼 공간에 잡목이 너무 많았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임금을 드리고 100일 가까이 치웠다. 잡목을 처분하기가 힘들어서 마당에 농기계 수리센터에서 사온 기계를 놓고 5일 동안 분쇄해서 소각했다. 쓰레기도 정말 많이 나왔다. 폐기물 차량 10여대 분량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일을 어떻게 했나 싶다.

-마중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설정했다. 처음에 어떤 그림을 그렸나?

기업 컨설팅을 했던 입장에서, 냉정하게 보았을 때 돈을 벌 수 있는 공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투자해도 몇 년 안에는 어렵다고 봤다. 나주 원도심은 유동인구가 적었다. 나주읍성 권역의 문화재 보호구역이라 개발 제한도 있었다. 건물도 8.5m 이상은 못 올린다. 상업행위를 한다 해도 음식점 정도였다. 내 생각에도 여긴 건물 자체가 근대문화 자산이라 훼손하면 안 되겠더라. 나주가 문화적 잠재력과 문화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꿰어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를 집약한 장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에서 문화의 힘을 봤기 때문에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동의해 주었다.

-이 곳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나?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연세가 많은 분들은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처음에는 내가 왜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살아야 하느냐는 생각도 했지만 살다보니까 이해가 되었다. 바꿀 수 없으니 맞춰보자고 생각했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으로 살았다. 투기꾼 아니라고 말하고 다녀봤자 의미 없었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그 분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공의 영역에서 지원을 받으면 말 나올 것 같아서 나주시청에는 지원도 신청하지 않았다.

-지방소멸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외지인의 투자에는 배타적이라는 부분이 좀 이율배반적이다.

지방소멸은 결국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일자리가 없어지는 이유는 지역 내 미시경제가 안 돌아가기 때문이다. 골목상권을 지키는 노력이 그래서 중요하다. 이 지역에서 일자리를 만들려면 지역이 갖고 있는 자원을 활용해서 외부인을 유입시켜야 한다. 마중에서는 13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데, 공간의 특성상 겨울이 되면 할 일이 없어진다. 관광 콘텐츠 회사로 가려면 사실 프로젝트 별로 계약하는 것이 맞다. 그래도 지금의 고용을 유지해 가는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사회적인 의미가 있는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현실적인 접근을 한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 올 겨울에 이 답을 찾아야 한다.

버려진 고택 4천평,  곰탕 다음 가는 나주 명물이 되다
39-17마중에선 숙박도 가능하다.


-공간이 4000평이나 되는데 민간이 재생하기에는 너무 넓지 않았나?

초기에는 투기꾼이라는 소문이 많았다. 신천지 소유라기도 하고 시장 측근이 실제 소유자라고도 하고, 지난 해까지도 부정적인 소문이 제법 있었다. 금방 팔고 나간다고들 했는데 5년 정도 지나니까 생각이 조금씩 바뀌시더라. 마중을 통해서 나주 원도심이 활성화되었다고 고마워하는 분들도 많아졌다. 예전에는 곰탕만 먹고 갔는데 원도심에 두 개의 포인트가 생겨서 그 사이에 상권이 형성되었다. 이 부분을 인정해준다. 지역에 유명한 공간이 생겨서 손님을 데려올 곳이 생겨서 고맙다고 하기도 한다. 이제야 반쯤 이 동네사람 된 기분이다.

-관의 지원이 아쉽지 않았나?

공무원들은 시민들이 눈치를 주면 지원하지 못한다. 이제는 내가 자신 있게 숟가락을 얹으라고 얘기한다. 지역에서는 민과 관의 선이 명확히 그어져있다. 출신이 민이면 아예 배제해 버린다. 민간주도 도시재생을 가로막는 구조가 있다. 내 의견은 거의 반영이 되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수용하려는 태도가 읽힌다. 민간의 영역을 포함해서 큰 그림을 그려보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의든 타의든 목소리를 대표하는 입장이 되었다. 행정에서는 답을 알아도 접근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계속 목소리를 내야 변화가 생긴다는 책임감에서 요즘은 조금씩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마중과 같은 민간 주도형 도시재생의 장점은 무엇인가?

기존의 공간 활성화는 공적인 영역에서 공간을 소유하고 용역 업체가 이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행정에서 주도하는 한 입찰을 통해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운영 주체가 자주 바뀔 수밖에 없고 공간이 일관성을 갖기 힘들다. 소유와 운영의 두주체 모두 결과가 그리 중요하지 않고 과정만 문제 없으면 된다. 문체부의 폐자원 활용사업, 국토부의 도시재생 사업으로 복원된 공간들이 대부분 그렇다. 초기의 방향성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다. 나주에도 그렇게 방치되다시피하는 공간이 곳곳에 있다.

-코로나19로 힘들지 않았나?

코로나19 초기에는 정말 불안했다. 마중이 홍보되고 알려져서 성장해야 할 시기였는데 코로나19가 길목을 차단했다. 매년 적자도 상당하고, 금융 비용도 컸다. 3년차에 좀 기지개를 켜려고 했는데, 흐름이 끊겼다. 다행히 야외 공간이라 좀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는지 손님들이 다시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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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7마중에선 이런 찻상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이제는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

민간영역에서 하다보면 가장 힘든 것이 홍보다. 공적 영역에는 홍보마케팅 예산도 많고, 지자체 자체 채널도 있고. 관련 기관에서도 홍보도 해주는데 민간은 그렇지 않다. 운영하기도 벅찬데 홍보예산까지 편성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자체적으로 길을 찾았다. 초기에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초대했다. 나주에 대해서 곰탕과 홍어밖에 모르는 분들에게 하룻밤 주무시고 가게 하고, 공간을 경험하게 하고, 입소문 마케팅을 내게 유도했다. 유튜브 채널 등에서 취재 와서 노출 빈도수가 높아졌고 자연스럽게 지상파 방송도 연결되었다. 이후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탄력을 받았다. 노출이 중요했다. 노출만 되면 가치가 알려진다.

-관의 지원은 아예 안 받았나?

시에서 부담스러워해서 우리도 명확하게 선을 그어놓고, 한국관광공사나 문체부 등의 공모사업에 도전했다. 2018년 문체부 전통한옥 프로그램, 2019년 ‘테마여행 10선’의 관광 콘텐츠 공모사업, 2021년 문체부 전통한옥 브랜드화 사업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전라남도 예쁜 정원 콘테스트 우수상’을 받았고, 전라남도에서 16번째로 민간정원에 선정되었고 산림청 선정 민간정원도 최종 심사 중이다. 한국관광공사에서 한옥 체험 분야 품질 인증도 받았다. 우리 힘으로 우리의 자격을 증명하고 있다.

버려진 고택 4천평,  곰탕 다음 가는 나주 명물이 되다
일본 근대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 목서원 본채.


-지치지 않고 쉼 없이 기획하지만 아니다 싶으면 거침없이 변경하는 것 같다.

내가 기업컨설팅 전문가라서 그런 것 같다. 관점이 문화기획자의 사고방식과 다르다. 분석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중간에 냉정한 판단을 한다. 리스크를 많이 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다 싶으면 바로 수정했다. 민간이라서 바꾸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내 분야를 접목을 했지만, 산업적으로 생각했던 것과 현실이 많이 달랐다. 일곱 채의 폐가가 있던 땅 4000평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험한 곳이라 한 번에 할 수 없어서 잘게 잘게 나눠서 하다보니까,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으로 비춘 것 같다. 이 공간이 어떤 공간이었는지 아는 사람들은 이 변화를 크게 봐준다.

-마중에 대한 시선이 바뀐 것이 느껴지는가?

지금은 ‘마중이 있어서 원도심이 살고 있다.’ ‘마중같은 명소가 있어서 든든하다.’는 분들이 많다. 나주 출신으로 외지에 나가 살던 분들이 숙박하거나 방문을 많이 한다. 외면 받았던 지역에 활력의 모델이 되어서 즐겁다. 마중이 좋은 공간이고, 나름 의미를 갖고 있고, 지역에서 뭔가 하려고 노력하는 곳이라는 말이 힘이 된다. 올해 마중에 자문을 받으러 오거나 선진지 견학을 오거나 벤치마킹하러 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버려진 고택 4천평,  곰탕 다음 가는 나주 명물이 되다
마중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체험 활동.


-이런 도전을 하면서 어떤 교훈을 얻었나?

초기에 나주의 역사성을 부각했는데 극히 일부를 빼고는 관심이 없었다. 역사가 먼저 나가지 않고 뒤에 자연스럽게 제시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수목, 정겨운 골목, 예쁜 카페가 있는 곳으로, 관광의 개념으로 풀어야 겠다고 생각했고 적중했다. 공간을 즐긴 다음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공간의 역사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옛것을 여행자의 눈높이에 맞춰 변화시킨 것에 만족한다.

-버려진 한옥 고택을 되살려 보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 충고를 한다면?

100평 넘으면 하지 마라고 한다. 특별한 사업을 할 거라면 모를까, 노후를 편안하게 살고 싶어서 한옥에 이사오려면 100평 넘기지 말라고 한다. 관리 측면에서 만족보다 불만족이 커지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폐가를 고쳐서 귀촌해서 사는 것에 로망을 부추기는데, 아무래도 편의성이 떨어진다. 외풍을 한옥의 정취로 느끼면 상관 없겠지만 겨울에 발이 시린 것은 대부분 불편하게 느낀다. 집보다 땅을 먼저 보라고 하고 싶다. 한옥은 새로 지어도 나쁘지 않고 옮겨 짓는 일도 가능하다.
버려진 고택 4천평,  곰탕 다음 가는 나주 명물이 되다
교양 프로그램에 스튜디오로 쓰인 마중.

버려진 고택 4천평,  곰탕 다음 가는 나주 명물이 되다
마중은 드라마와 영화 촬영 명소로도 널리 알려졌다.

-앞으로 해보려고 하는 기획은 어떤 것들이 있나?


나주의 역사문화 자원이 가장 큰 자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마찬가지다. 폐가 한 채를 부수고 그 자리에 옛 나주역 앞의 배창고를 옮겨올 생각이다. 1920년대 나주배 원예조합이 만든 창고다. 창고 트러스트를 해체해서 옮긴 다음 소규모 컨벤션센터로 활용하려고 한다. 그래서 나주 근대 건축물의 스토리를 이어갈 예정이다.

-사람들은 이 공간에 와서 힐링을 하고 가는데, 본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힐링하는가?

애초에 상당 기간은 이 곳에 틀어박혀 일해야 한다고 각오하고 들어왔다. 여기서는 쉬는 날 없이 항상 일해야 한다. 공간이 아직 외형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야외 공간이 많아서 손이 가야 할 일이 많다. 앞으로도 5년 정도는 실험의 과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님이 들어오기 전과 나간 후, 아침 저녁으로 공간이 주는 편안함을 즐긴다. 나아져가고 있다는 보람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

고재열 여행감독 gosisain@gmail.com

버려진 고택 4천평,  곰탕 다음 가는 나주 명물이 되다
마중에선 계절에 따라 글램핑도 즐길 수 있다.

버려진 고택 4천평,  곰탕 다음 가는 나주 명물이 되다
버려진 옛집이었던 마중이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도심의 문화 공간으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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