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하는 공무원, 제천을 맛의 도시로 만들다

[다시 여행이다 - 차세대 리더에게 듣다] ⑥ 이정희 제천시 미식마케팅팀장

악초 도시에서 미식 여행 코스 개발
코로나 와중에 셀프 맛 관광으로 각광
“음식으로 오감 만족 여행 완성”
유네스코 미식 창의 도시에 도전

코로나19로 여행이 우리를 떠났다. 오랫동안 여행은 금기어였다. 위드코로나를 앞두고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암담한 시간 속에서도 더 나은 여행을 꿈꾸며 묵묵히 내일의 여행을 기획했던 이들이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바꾼 여행업계 차세대 리더들을 만나보았다.

① 여행업계 앙팡테리블 -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
② 코로나19 극복 산증인 - 이영근 한국스마트관광협회 회장
③ 모빌리티 플랫폼의 빈틈 - 최민석 무브 대표
④ 한국형 도시민박 도전 - 조산구 위홈 대표
⑤ 부산 사나이, 광주의 기억을 되살리다 - 이한호 주스컴퍼니 대표

‘오버’하는 공무원, 제천을 맛의 도시로 만들다
충청북도 제천시 미식마케팅팀장 이정희씨가 지역 약선 브랜드 '약채락'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이정희 팀장의 계정을 보았을 때 제천시의 홍보마케팅 용역사 직원의 계정인 줄 알았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제천 관광과 제천 미식 관련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나중에 충북 제천시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공무원이 이 정도로 SNS를 열심히 한다는 게 이채로웠다.

이정희 제천시 미식마케팅 팀장은 시키는 일만 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공무원으로 유명하다. 주민에게 지역 식자재를 활용한 음식을 교육하는 업무를 맡았을 때 식당에서도 배워두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해 직접 주방장들을 설득해 강의에 참여시켜 지역의 음식 수준을 높였다.


이 팀장이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왜 하라는 것만 하지 않고 그것까지 하려고 해?”라는 말이다. 약선 음식 개발만이 아니라 제천 음식 전체를 재해석 하려는 그의 노력이 제천 가스트로투어를 만들어 냈고 제천의 농가까지 관심을 넓혀 제천형 아그리투리스모(농가 미식 여행)를 구현해냈다.

많은 지자체가 케이블카나 모노레일 혹은 출렁다리와 같은 하드웨어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관광 개발을 한다. 미식이라는 소프트웨어에서 길을 찾는 사람은 드물다. 솔직히 제천이 특별히 음식이 맛있는 곳으로 알려지거나 유명한 식자재가 있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식관광을 개발한 인물이 이 팀장이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미식에 몰입하고 있는 이 팀장을 만났다.

-어제도 음식 개발 프로젝트를 하나 마쳤다고 들었다.

제천역 가락국수를 재현했다. 제천역은 중앙선 태백선 충북선을 잇는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 환승을 많이 했다. 10분 환승 시간에 제천역 플랫폼에서 먹는 가락국수 유명했다. KTX이음역 개통에 맞춰 추억의 가락국수를 복원하면 새로운 테마가 되겠다 싶어서 기획했다. 옛날 맛을 복원하고 싶었지만 홍익회에 면과 다시를 납품하던 회사가 사라진 상황이다. 요즘 입맛에 맞는 진화된 가락국수를 선보였는데 어제 시식회 반응이 무척 좋았다.

-처음 가스트로투어(미식관광)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18년 제천시 농업기술센터에 있을 때 농촌진흥청 사업인 음식관광네트워크 사업을 담당했다. 그때 서울가스트로투어 강태안 대표를 만났고 궁금해서 직접 투어를 체험해보았는데 미식여행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9년 명칭이 변경된 관광미식과의 미식마케팅팀장으로 발령 받았을 때 첫 프로젝트가 제천 도심 약선음식거리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었는데 이때 가스트로투어를 도입했다.

‘오버’하는 공무원, 제천을 맛의 도시로 만들다
악초와 약재가 많은 제천의 특성을 살려 개발한 약선 도시락.

-일반인에게 제천은 맛의 도시는 아니다. 유명한 식자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장벽이었다. 제천이 한방의 도시, 약초의 도시여서 약채락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는데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약재로 만드니 몸에는 좋겠지만 맛이 없을 거라는 선입견이 강했다. 제천은 70%가 산이라 산나물이 많이 나오는데 다른 지역과 차별화 하기 쉽지 않았다. 대체로 양념을 세게 하는 곳이어서 맵고 칼칼한 음식이 많았는데 이를 다듬는데 시간이 걸렸다.

-농업기술센터에서 향토 음식 개발 업무를 했었다고 들었다.

제천이 도농복합도시인데 요리학원이 없었다. 오로지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농업기술센터여서 농촌 주민들과 시내권 주부들이 신청해서 배웠다. 200명 정도 신청해서, 오전반 오후반 나눠서 강의해야 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만족스러워 하는데 식당하는 분들에게 보급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식당을 대상으로 하니 신청을 안 했다. 제천 시내 식당을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간신히 15명 채우고 교육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이후 꾸준히 식당반을 개설했다.

-제천 약선음식 브랜드 ‘약채락’ 개발을 주도했다고 들었다.

당시 시장님이 2010년에 제천에서 국제한방바이오엑스포가 열리니 우리 지역 약초를 활용한 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약채락’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약초비빔밥을 개발했다. 처음에는 약초를 넣어 많이 넣어서 쓰고 맛이 없어서 혼도 많이 났다. 의욕만 앞섰다. 과하지 않게, 억지로 새로운 음식을 만들지 않고 스토리와 역사성이 있는 식재료로 꾸밈 없는 맛을 내는게 가장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식재료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식재료가 나오는 시기를 놓치면 제대로 개발할 수가 없다.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특화음식, 가공상품을 개발하고 특허 내면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공무원들은 상품화보다는 개인의 실적을 더 중요시하기 쉽다. 하지만 상용화되지 않는 상품은 무용지물이다. 외식경영 전문가를 초빙했을 때 상품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약초비빔밥 하나로 여러 개의 메뉴를 만들어내고 그릇, 상차림, 메뉴판 사진 등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빨리 안착시킬 수 있었다. 그 다음은 엮어내는 일이다. 전에는 음식점 육성에 주력했는데 지금은 기존에 육성하여 놓은 사업장들과 제천의 숨은 자원을 엮어서 음식관광, 미식여행 상품을 만드는데 더 주력하고 있다.이렇게 개발한 음식을 바탕으로 가스트로투어를 만들었다.

‘오버’하는 공무원, 제천을 맛의 도시로 만들다
제천 약선음식 거리를 중심으로 만든 가스트로투어 안내판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코스를 정할 때 유념한 것은 무엇이었나.

약선음식거리 상인회에 63개의 음식점이 있었지만 약선이라는 특성이 약했다. 음식점들을 살펴보니 중앙동(명동)에 고기집이 모여 있는 구간이 보여서 이 구간을 “명동갈비골목”으로 거리 이름을 바꿨고, 나머지 구간은 가스트로투어를 접목했다. 가스트로투어 구간 상인들을 모아서 사업설명회를 하고 신청을 받아서 지금의 A코스, B코스를 개발해서 5가지 정도의 음식을 경험하게 했다. 인근 내토시장의 명물인 빨간오뎅도 코스에 넣어서 재래시장을 경험해 보게 이끌었고 중앙공원에 올라 칠성봉의 이야기도 듣고, 시내에 조성된 달빛정원에서 사진도 찍고 도심숲을 맛볼수 있게 코스를 구성했다.

-맛집을 선정하는 일이라 현장의 민원이나 청탁도 많았을 것 같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소수의 맛집을 선정하는 게 정말 어려웠다. 제천 맛집에서 떨어진 분들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항의 전화도 하고 말도 아니었다. 그래도 선정된 식당들이 믿음을 주면서 미식도시 제천 브랜드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의욕적으로 가스트로투어를 개발했는데 코로나19로 타격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어려움이 많았다. 당초 10명 이상 모객이 되어야만 진행할수 있게 만든 패키지상품이었는데 코로나로 4명으로 진행하게 됐다. 이번 달부터 위드코로나가 되면서 비로소 날개를 달았다. 한 달만에 500명 이상 예약 들어왔다. 제천 가스트로투어가 네이버 포스트 여행분야 1위로 올라기도 했다.

-코로나 와중에 주춤하기는 커녕 새로운 미식여행 상품을 개발했다.

코로나 시국에 맞는 개별 프리미엄 미식여행 상품을 개발했다. 하나는 ‘제천 미식이와 떠나는 셀프 맛 여행’으로 해설사 없이 혼자서 관광택시를 타고 오디오 미식이가 안내하는 대로 여행하는 셀프맛여행이다.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아그리쿠리스모(농가 체험 여행)를 생각하고 오직 한마을에 머물면서 마을의 식재료로 맛을낸 다이닝과 식재료가 나고 자라는 논밭에서 테이스팅 체험, 농가 민박을 할 수 있는 프라이빗한 마을 맛 여행 상품을 개발했다. 두 번의 팸투어를 통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가스트로투어 이용자들의 평가는 어떤가?

최근 마을 맛 여행 상품 팸투어를 하고 페이스북에 올린 홍보글에 황교익 맛칼럼니스트가 “최근에 본 농촌음식관광상품중에 제일 나아 보인다. 순수하다. 도시에는 없는 것이다”라는 코멘트를 올려 주었다. 임인학 여행작가협회 회장은 “맛만 좋으면 되지 이렇게 감동까지 줄 줄이야” 라고 했고 국제미식여행사 송자인 대표는 “거창하진 않지만 대접받는 느낌의 밥상! 오래간 여운이 남는 밥상이다” 라고 해주었다. 오랫동안 공들여서 만든 상품에 이렇게 좋은 반응을 해주어서 뿌듯하고 보람되었다.

‘오버’하는 공무원, 제천을 맛의 도시로 만들다
가스트로투어를 안내하는 팜플렛만 있으면 혼자서도 쉽게 제천의 맛집을 찾아다닐 수 있다.

-지자체 관광개발은 하드웨어 중심이다. 미식관광과 같은 소프트웨어 개발은 많지 않다.

공감한다. 관광미식과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바가 많다. 시군마다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케이블카나 모노레일 혹은 출렁다리 설치다. 작게는 몇십 억에서 크게는 몇백 억까지 투자를 한다. 미식 개발 같은 사업은 예산이 작다. 미식 개발 사업은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지원하는 구조가 없다. 귀하게 예산을 얻어서 허투루 쓸 수가 없어 노력을 많이 한다.

-미식 관광 개발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관광을 위해 시설을 만드는 것이 집을 짓는 하드웨어라고 한다면 미식 개발은 그 집안에 예쁜 가구와 소품들을 아기자기하게 꾸며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은 단순히 한끼 식사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지역 이미지 제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독립된 브랜드다. 음식에서 일정한 성취를 이뤄내야만 오감을 만족하는 여행을 선물할 수 있다.

-다른 지자체도 미식 관광 개발에 적극적이다. 선험자로서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는 데만 집중하는 일은 지양했으면 한다. 대부분 유명 셰프를 데리고 와서 음식 개발부터 한다. 처음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음식은 흐지부지 없어져버리고 만다. 그들(식당)이 가장 잘 하는 음식을 다듬어주고 스토리를 입혀주고 지속적으로 홍보를 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 좋다. 하나의 음식이 정착되려면 주인의 끈질긴 노력과 인내와 함께 관의 지속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가스트로투어도 지속적인 홍보 덕에 2년만에 단체 관광객이 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부분을 더 해보려고 하는가? 

언젠가 TV에서 '문화의 질주, 맛있는 나라의 유혹'이라는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다. 영국 런던에서 릭슈타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음식을 맛보기 위하여 작정하고 찾아오는 손님들로 지역에 사람이 넘치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는 릭슈타인의 말에 공감하면서 어떻게 하면 제천을 미식도시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많이 달려왔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부족한 것들이 많다. 일단은 프리미엄 미식관광 상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다. 그 방법은 인문여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궁한 가능성을 보았다. 제천을 유네스코 미식 창의 도시로 만들고 싶다.

고재열 여행감독 gosisa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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