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더니] “비둘기가 더 많아” K뷰티 1번지의 몰락…900m 거리 임대만 40개

4호선 명동역에서 소공동 롯데백화점으로 가며 찍은 임대 매장들 / 사진=한전진 기자
900m의 거리에 임대 딱지가 붙은 매장은 40곳이 넘었다. / 사진=한전진 기자
[쿠키뉴스] 한전진 기자 = 봄기운이 완연하던 지난달 31일. 이날 오후 찾은 명동의 경기는 여전히 한겨울이었다. 거리 한가운데 늘어섰던 노점상들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고, 건물 매장에는 곳곳이 텅 비었거나, 철거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명동역 6번 출구에서 소공동 롯데백화점으로 꺾이는 900m의 골목을 걸으며 ‘임대’가 붙은 매장을 세어보니 40곳이 넘었다. 폐점 화장품 매장의 누렇게 변한 중국어 안내문만이 북적였던 지난 과거를 말해주는 유일한 증인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이 국내에서 첫 발생한지 437일째. ‘쇼핑의 메카’, ‘K뷰티 1번지’ 명동 상권이 붕괴하고 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주 고객이던 외국인 관광객이 뚝 끊기다 보니 가게를 폐업하는 곳이 늘고 있다. 백화점 등이 밀집한 강남 등 다른 상권들은 봄 날씨와 코로나19 백신 접종 효과 기대에 점차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명동은 외국인 상권인 탓에 이런 특수조차도 비켜가고 있다는 한숨이 나온다. 

명동에서 소규모 옷가게를 운영 중인 사장 A씨는 최근 상황을 ‘초토화’에 비유했다. 그는 “입 밖으로 말하기 힘들 정도로 매출이 크게 감소한 상태”라며 “오죽하면 사람보다 비둘기가 더 많다 하겠나, 백신 접종 등 이야기도 들리지만, 지난해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어 “코로나19 이후로 명동 상권 전체가 초토화 됐다고 보면 된다”면서 “이번 임대 계약이 만료되면 이곳을 벗어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화장품 로드숍 등의 폐점이 이어지고 있다. / 사진=한전진 기자
대기업이 운영하는 매장들도 명동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의 명동본점도 이날 문은 닫았다. 스웨덴 패션 브랜드 H&M의 국내 1호 매장인 명동눈스퀘어점 매장도 지난해 11월을 끝으로 셔터를 내렸다. 유니클로의 간판 매장이었던 '명동중앙점'도 지난 1월 폐점했다. 이외에도 ‘에이랜드’, ‘후아유, ’게스‘ 등 굵직한 의류‧신발 등 패션 매장들이 모두 명동에서 사라졌다

여러 업종 중에서도 명동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화장품 매장이다. 명동은 몇 해 전만 해도 화장품 로드숍들이 거리를 점령했다고 할 만큼, 외국인 관광객의 'K뷰티' 수요가 몰리던 곳이다. 당시 불과 50m거리에 각기 다른 로드숍 9개가 들어서는가 하면, 동일 브랜드가 명동 거리에 6개까지 가게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2017년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도 버티며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나 명동의 로드숍들은 코로나19에 사상 최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내수 침체와 경쟁 심화, 온라인 몰의 급성장도 전망을 더 어둡게 한다. 현재 아모레퍼시픽 등 화장품 업체들은 이니스프리 등 오프라인 매장을 축소하는 대신 ‘라이브 방송’ 등 온라인 진출에 힘을 쏟고 있다. 기존에 남아있던 명동의 로드숍들 조차 올리브영과 같은 H&B(헬스앤뷰티) 점포로 재편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명동은 과거 K뷰티 1번지로 불리며 외국인 관광객의 수요가 몰리던 곳이다. / 사진=한전진 기자
철거가 진행된 한 매장. 골목 전체가 텅 빈 곳도 눈에 띄었다. / 사진=한전진 기자
실제로 화장품 업계의 로드숍 개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18년 말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움 매장은 1186개, 이니스프리 매장은 750개, 에뛰드 매장은 321개였으나 지난해말 기준 각각 880개, 546개, 170개만 남았다. 주로 명동과 홍대입구 등 코로나19로 외국인 관광객이 사라지며 매출 타격이 컸던 곳들에서 폐점이 잦았다. 

가맹점주와 직원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명동에서 화장품 매장을 운영하는 B씨는 “코로나19 백신 소식에 해외여행이 다시 풀리길 바라며 버티곤 있지만, 몇 달 내로 이뤄질 것 같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라며 “영업시간을 단축해 인건비를 줄여도 적자를 메우기 어렵다”라고 호소했다. 인근의 다른 매장에서 점원으로 근무하는 C씨는 “3년간 일한 매장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민이 깊다”면서 “(코로나19가) 끝이 없는 터널 같아 힘들다”라고 씁쓸해 했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한류 열풍으로 명동을 찾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과 보따리상들이 코로나19로 사라지면서 명동의 매출 회복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직영 온라인몰의 수익을 공유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맹점을 위해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결국 폐업을 내걸거나 휴업에 나서는 매장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ist107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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