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환자 실손보험 청구도 불가…‘본인부담상한제’ 탓

복지부 “너무한 사례 인지, 금융위에 전달” 

실비 표준약관 ‘사후환급 가능 금액 미보상’ 명시 

보험사 갑질 심각…‘스피커폰 통화’ 지시도


사망 환자 실손보험 청구도 불가…‘본인부담상한제’ 탓
본인부담상한제란 본인부담금(비급여 제외)이 개인 소득 수준에 따라 상한(10단계로 나눠 2020년 기준 월 최대 582만원까지)을 넘으면 그만큼 환자에게 환급해주는 제도다. 그래픽= 이정주 디자이너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실손의료보험사에서 본인부담상한 초과액을 미지급하는 사례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보험료 청구가 거절된 환자가 사망한 뒤에도 ‘사후환급’을 이유로 보험료 지급을 하지 않거나, 본인부담상한액을 추정하기 위해 건강·장기요양보험료 납부 확인서 제출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등의 일이 발생하자 환자와 가족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보건당국도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인지한 상황이지만, 키는 금융당국이 쥐고 있어 개입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본인부담상한제는 정부가 중증환자 등에게 복지 차원으로 의료비를 지원해주는 제도로, 연간 본인 부담 요양급여 비용의 총액이 본인부담상한액을 넘는 경우 그 초과액을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다. 지난해 기준 소득 1분위부터 10분위까지의 본인부담금 상한액은 81만원(입원일수 120일 초과의 경우 125만원)~582만원이다. 공단은 이 금액을 제외한 의료비를 환급하고 있지만, ‘연간 의료비 총액’이 대상이니 만큼 사후급여 형태로 지급하고 있다. 또 건강보험료에 따라 상한액이 결정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지급이 완료되는 시점은 개인의 보험료가 결정되는 다음연도 7~8월 이후가 된다. 

사후환급 시기까지 본인이 의료비를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실손보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보험사들은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을 이유로 지급을 거절하고 있다. 지난 2009년 10월 개정된 표준약관에는 ‘건강보험 또는 의료급여 법령에 따라 사전 또는 사후환급이 가능한 금액’을 보상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에 보험사들은 환급금 규모가 확정되지 않는 시점임에도 임의로 산정해 보험료를 지급하지 않거나 환자들에게 무리하게 건보료 납부확인서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환급금이 발생할 경우 지급한 보험료를 돌려주겠다는 각서(동의서)를 받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대구에 거주하던 암환자 A씨는 지난해 6월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보험료를 돌려받지 못한 상황이다. 유가족 등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상반기 M 실비보험사에 의료비 100여만원을 청구했으나 보험사는 같은 해 9월 150여만원의 본인부담상한제 환급금이 발생할 것으로 예단하고 청구한 보험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단으로부터 실제 환급된 금액은 57만여만원에 불과했고, M보험사는 환자에게 차액을 돌려주지 않았다. A씨 사망 이후 가족들은 부당하게 돌려받지 못한 보험료를 확인하고 M보험사에 미지급한 금액을 돌려달라고 민원을 제기했으나, 담당 직원은 그해 9월 공단으로부터 환급금이 정산돼 나오면 그 금액을 차감한 후에 돌려주겠다며 전년도 미지급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사망 환자 실손보험 청구도 불가…‘본인부담상한제’ 탓


환급금 규모를 추정하기 위해 건보료 납부확인서를 요구하는 일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가입자가 공단 민원실을 통해 확인서를 요청하는 내용을 보험사 직원이 직접 듣기 위해 휴대전화 스피커폰으로 통화연결을 종용한 일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본인부담상한금을 과도하게 책정해 망자의 보험금마저도 환급하지 않는 불법행위는 법적 근거도, 명분도 없는 현대판 백골징수”라며 “특히 1년 뒤 나올 환급금 규모를 확인하겠다고 가입자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개인정보 침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환자들은 보험사의 횡포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예상되는 일들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료를 지급했는데, 앞으로 환급될 것들 때문에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어떤 환자는 보험사로부터 대출받아서 의료비를 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면서 “게다가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환급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보험 보장을 덜 받게 된다. 이는 취약계층에 대한 역차별이며, 국가의 사회복지 정책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일부 국민들은 환자들이 이중취득을 위해 이런다고 하지만, 오히려 보험사가 이중취득을 하고 있다. 우리는 실손료도 내고 건보료도 내는데 실손보험사는 국민의 혈세로 지급되고 있는 공적급여마저 회수하는 극단적인 이기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질타했다.

보건복지부와 건보공단도 실손보험이 본인부담상한제 환급금을 환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공단측은 “본인부담상한제는 정부 정책에 따라 관리운영 주체인 공단에서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해 시행하고, 민간보험의 고유 업무는 금융감독원과 보험회사에서 수행하고 있다. 민간보험은 이윤추구가 목적이고 당사자 간 계약에 따라 운영하는 것으로 보험약관(특약사항)을 통해 보험금등 지급·결정되고 있다”며 “민간 보험사에서 상한제 사후환급금을 공제하고 지급하는 것 자체가 국민건강보험법 및 상한제 도입취지 등 고려할 때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금융위원회와 공‧사 의료보험 연계를 추진하면서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인식 복지부 의료보장관리과장은 “암환자단체 등을 통해 소비자 입장에서 공정하지 않고 너무하다고 생각되는 사례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일들이 의료현장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금융위원회측에 전달할 것”이라며 “이번에 추진하는 공사보험연계법도 실태조사를 통해 필요한 제도개선을 이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내용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공 과장은 “금융위도 약관대로 이행하는 보험업계 목소리를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일단 약관 제도가 있기 때문에 약관을 개정하거나 보험료를 올려 환급금까지 모두 지급하는 것으로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우리가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에 있어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키는 금융위가 쥐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단 관계자는 “현재 복지부와 금융위가 개선안을 마련 중이며, 공단에서도 급여사업실과 공사의료보험개선지원반에서 제도개선을 위한 자료제공, 의견제출 등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이해관계자별 첨예하게 입장이 달라 지속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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