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아니 크리스” 직급 뺀 영어 이름, 수평문화 불러올까


“부장님…아니 크리스” 직급 뺀 영어 이름, 수평문화 불러올까
▲사진=출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 박태현 기자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직급을 빼고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사내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 내부 전산망에는 영어 닉네임을 그룹 포털에 등록한 뒤 사용하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사측은 공지글을 통해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전문가로 인정받는 수평적 기업문화의 첫 출발은 서로 영어 닉네임으로 부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카오, SK텔레콤 등 대기업뿐 아니라 신생 스타트업에서도 영어 이름으로 통일해 부르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서로를 호칭할 때 ‘대리’ ‘과장’ 등 직급 없이 영어 이름만으로 부르는 식이다. 직급과 서열이 주는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의사소통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외부에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난데없이 영어 이름을 지어야 하는 직장인들이 적절한 이름을 추천해달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글은 온라인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인’에는 “이직하게 된 회사에서 영어 이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어떤 이름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하고 있는 영어 이름이 있는데 나이대와 맞는지 조언이 필요하다” 등의 글이 있다.

“부장님…아니 크리스” 직급 뺀 영어 이름, 수평문화 불러올까
▲사진=영어 이름을 추천해 달라며 올라온 글들. 네이버 지식인 캡쳐.

영어 이름을 사용 중인 직장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10년차 IT계열 직장인 강모(34)씨는 “직급을 붙이고 안 붙이고가 생각보다 차이가 크다. 이름만 부르는 것만으로도 위계적인 느낌이 덜하다”면서 “영어 이름을 외우는 게 일이기는 하다. 또 조직의 평균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면 거부감 때문에 적응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핀테크 업체 직장인 김모(29·여)씨는 “소통이 자유롭고 바로 위의 상사와도 평등한 기분이 든다”면서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직급이 높은 구성원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상명하복과 집단주의적 직장 문화는 직장내 괴롭힘의 근본적 원인이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이 넘었지만 직장내 괴롭힘은 줄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지난 7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겪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45.4%(454명)에 달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직전인 지난해 조사(44.5%)보다 0.9%포인트 높은 수치다.

일단 시행은 했지만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많은 직장인의 공감을 산 장류진 소설가의 데뷔작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에서는 회사 대표가 수평적으로 소통하자며 영어 이름 사용을 의무화했지만 자신에게는 깍듯한 존댓말을 요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직원과 상사 사이에는 “저번에 데이빗께서 요청하신…” 혹은 “앤드류께서 말씀하신…”의 식의 대화가 오간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직 문화 관련 전문가는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해 기업들은 오랫동안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대부분 미국 기업에서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영어 이름 부르기는 그 중 하나의 외형적인 요소일 뿐이다. 조직 내 권한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요소들도 당연히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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