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드컵] 젠지는 변하지 않았다

▲사진=라이엇 게임즈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젠지는 변하지 않았다.

지난 18일 중국 상하이 미디어 테크 스튜디오에서 열린 ‘2020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챔피언십(이하 롤드컵)’ 젠지e스포츠(한국)와 G2 e스포츠(유럽)의 8강전 1세트 밴픽을 보고 든 생각이다. 

기자를 비롯한 동료 기자들은 젠지의 패배를 직감했다. 실제로 젠지는 1세트 대세 픽을 내준 대가를 혹독히 치렀다. 기선 제압에 실패한 젠지는 3세트를 내리 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G2전을 앞두고 반신반의했다. 

그룹스테이지를 선두로 통과한 젠지지만 유럽의 1번 시드 G2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긴 힘들었기 때문이다. G2는 ‘LCK 킬러’로 유명하다. 단단하고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한 LCK의 하드 카운터다.

게다가 이번 롤드컵에 진출한 LCK 3개 팀 중 젠지는 가장 정형화 된 팀이다. 한 동료 기자는 젠지를 “G2의 좋은 먹잇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내 중계진들의 승부 예측은 5:5로 팽팽했다. 풀세트 접전까지 이르는 힘든 승부가 될 거라고 예상했다. 

경기 양상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G2가 일방적으로 젠지를 폭행하는 그림이 나왔다. 스프링 시즌 정규리그 선두, LCK 3시드 젠지가 아무런 힘도 써보지 못하고 무대에서 하차했다. 

경기 종료 뒤 관계자들은 작심한 듯 젠지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몇몇은 화를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한 해설 위원은 “실망스럽다”며 다소 이례적인 소감을 남겼다. 젠지의 패배가 지나치게 무기력했고, 패배에 이르는 과정이 납득하기 힘들었다는 방증일 터다. 

이번 롤드컵을 앞두고 언론과 관계자들이 특히 강조했던 부분은 ‘도전자의 자세’였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롤드컵을 주름잡았던 LCK는 2018년부터 LPL(중국)에게 왕좌를 내줬다. 지난해에는 주요 국제무대 결승전도 밟지 못하며 LEC(유럽)보다도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팬들과 선수, 코칭스태프가 나란히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5월 중국과 벌인 ‘미드시즌컵(MSC)’은 기폭제였다. 중국 4개 팀과 맞붙은 이 대회에서 LCK는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벌어진 격차를 체감한 뒤에야 비로소 체질 개선을 시작했다. 조금 더 빠르게, 공격적으로, 또 유연하게 경기에 임하려 애썼다. 

실제로 MSC에 참가한 담원 게이밍, DRX, 젠지는 스프링 시즌과 확연히 달라진 경기력으로 눈길을 끌었다. 몰라보게 성장한 DRX의 정글러 ‘표식’ 홍창현은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MSC 패배에서 배운 것들이 많다”며 비결을 전했다. 롤드컵 진출권을 획득한 세 팀은 ‘명예회복’, ‘왕좌탈환’ 등을 외치며 팬들의 기대감을 짊어지고 중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적어도 G2전 젠지에게서는 MSC 이전과 달라진 점을 찾기 힘들었다. 수비적이어서? 상대보다 합류가 늦어서? 교전을 잘 못해서? 아니다. 젠지는 자신감이 지나쳤다. 수위를 높이자면 오만했다. 한국의 3번 시드가, 유럽의 1번 시드를 한 수 아래로 평가했다. 도전자의 자세는 온데간데 없었다.

이날 경기에서 젠지가 G2를 연구‧분석한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 반면 G2는 젠지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3개 세트 연속 인베이드를 시도, 소환사 주문을 빼는 등 선취점을 뽑은 것이 일례다. 경기 종료 후 G2측은 “젠지를 상대로 여러 가지 1레벨 패턴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주영달 젠지 감독 대행 역시 “자신은 있었지만 G2가 준비를 더 잘했다”고 인정했다.

2018년 이후 각 리그의 수준은 상향평준화됐다. PCS(태평양 연안 리그) 팀이 중국의 2번 시드를 꺾는 요즘의 LoL 판이다. 우리의 실수만 줄인다고 해서 손쉽게 승리를 챙길 수 있는 상대는 찾아보기 힘들다. 상대가 롤드컵 8강까지 오른 팀이라면 더더욱 만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하지만 젠지는 G2전에서 자기 객관화에 실패했다. 1세트 ‘카밀’과 ‘트위스티드 페이트’, ‘니달리’, ‘판테온’을 전부 내준 밴픽은 차치하고서라도 0대 2로 패하는 과정 속에서도 G2보다 약하다는 걸, 준비가 부족했다는 걸 인정하지 못했다. 연습 경기 결과가 어떠했든 그것만으로 스스로를 진단하고, 상대를 판단하면 안 됐다. 

객원 해설로 이날 경기를 중계한 ‘투신’ 박종익은 “젠지는 자신이 계속 강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아쉽다. G2는 확실히 자신이 강함이 어떤지 알고 그걸 디테일하게 확인해서 상대를 때리려고 하는데, 젠지는 우리가 얼마나 약한지 무엇이 부족한지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젠지의 정글러 ‘클리드’ 김태민은 경기 종료 후 화상인터뷰에서 1, 2세트 패배 후 전략을 수정했냐는 질의에 “똑같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전략적인 건 특별히 준비한 게 없다. 준비된 것만 잘 하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G2는 오는 24일 LCK의 유일한 희망 담원과 만난다. 다행히 담원은 지난해 롤드컵 8강에서 G2에게 패한 기억이 있다. 지난해 SK 텔레콤 T1의 코치로 뛰었던 이재민 담원 감독도 G2의 무서움을 잘 안다. 부디 젠지의 참패가 담원에게 자극이 되었기를 바란다. 낙담 속에서 ‘LCK는 변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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