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 못가” 저당잡힌 청춘들…14시간 夜택배노동 해보니② [발로쓴다]

총 6시간의 초과근무, 휴식 시간은 단 한 시간…물류센터 화물 지옥 르포

“도망 못가” 저당잡힌 청춘들…14시간 夜택배노동 해보니② [발로쓴다]
택배 물류센터 현장의 모습 / 사진=한전진 기자
“도망 못가” 저당잡힌 청춘들…14시간 夜택배노동 해보니② [발로쓴다]
밤 12시부터 새벽 1시까지가 유일한 휴식 시간이다. / 사진=한전진 기자
[쿠키뉴스] 한전진 기자 = 14시간 夜택배노동, 해보니①에서 이어짐. 

쉴 틈 없이 진행된 4시간의 전반 작업을 마치고, 식당으로 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사람들의 팔과 등은 모두 땀으로 젖어 있었다. 지독한 땀 냄새가 코끝을 스쳐왔다. 물류센터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눈앞이었지만 마음처럼 도망갈 수는 없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 주변에는 마땅한 교통편도 숙박할 곳도 없다. 우선은 배가 너무 고팠다. 

식사 전 손 소독제를 바르고, 일회용 장갑을 끼고 배식을 받았다. 각 테이블엔 모두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방역에 상당히 신경을 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근로자가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과연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지워지지 않았다. 마스크 안에는 먼지가 땀과 범벅이 되어 새까맣게 얼룩이 져 있었다. 여분의 마스크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식사 후 물류센터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돌리자 어느새 휴식 시간도 끝났다. 적어도 작업 시작 10분 전인 12시 50분까지는 현장으로 복귀해야 한다.

새벽 2시, 무념무상 (無念無想)

새벽 1시가 넘어서자 “하차!”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다시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자 작업장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같이 일하던 고참 근로자는 무서운 속도로 화물을 내리는데 열중했다. 그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30대인 기자와 또래로 보였는데, 어렵게 말을 붙여 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노란 안전모를 쓴 신참들은 오래 근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사실 이날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한 건,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기자는 과거 삶이 어렵다고 생각했을 적, 이곳을 찾았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손쉽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수 있던 곳은 물류센터뿐이었다. 이젠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그동안 세상은 더 팍팍해진 것 같다. 불안한 현재에 미래를 저당 잡힌 청춘들은 계속 늘고만 있다. 

다만 이쯤 되니 사실상 취재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상태에선 다른 라인의 아르바이트생을 만나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다. 끝없이 밀려오는 화물에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없다. 다들 말을 받아줄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새벽 2시가 넘어선 시간, 원래의 목적도 잊은 채 무념무상의 상태로 작업에만 몰두했다.

“도망 못가” 저당잡힌 청춘들…14시간 夜택배노동 해보니② [발로쓴다]
컨베이어 벨트에 하차된 화물이 실려오고 있다. / 사진=한전진 기자
“도망 못가” 저당잡힌 청춘들…14시간 夜택배노동 해보니② [발로쓴다]
농산물과 탁자, 선물세트 등 고중량 상품이 줄을 이었다. / 사진=한전진 기자
오전 7시, 극한을 경험하다 

근로계약서 상 근무시간은 새벽 4시까지였다. 이미 연장근무로 접어든 지 3시간째다. 아침이 밝아왔지만 트럭들은 계속 몰려들었다. 5단 테이블이 실린 컨테이너를 마주했을 땐, “못 하겠다”라고 진지하게 말을 꺼내려고 했다. 사 측은 업무 시작전 안전교육에서도 이를 공지한 바 있다. 하지만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다. 기자가 빠져도, 결국 누군가가 이 자리를 채워 일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주변에 민폐를 끼치기는 싫었다. 

다들 극한으로 몰려 있기에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일이었다. 사실상 강제적인 연장근무가 큰 문제다. 야간 근무조를 늘려야 하지만, 비용이 더 드는 만큼 사 측도 부담이 큰 일인 것이다. 땀이 식으면서 몸은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오전 9시, 14시간 근무를 끝내다

마지막 트럭을 끝낸 시간이 오전 8시 반이다. 뭔가 후련한 느낌이라도 느껴질까 했지만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장시간 마스크를 쓴 탓인지 귀 뒤가 벌겋게 부어 있었다. 500ml 생수 2병을 연이어 들이켰다. 무릎을 굽히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 그저 눕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겨우 몸을 추슬러 ‘위치 추적’이 된다던 관리 앱을 켜 얼굴을 인증했다. 드디어 퇴근을 할 수 있게 됐다. 물류센터 밖에 늘어선 셔틀버스로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었다. 

집에 돌아온 것이 오후 1시. 잠을 자고 일어나니 다음날 밤 12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다리와 팔에는 멍들고 긁힌 자국이 선명했다. 14시간 쉬지 않고 일 했으니 몸이 성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통장에 찍힌 급여를 확인하니 15만원가량이 찍혀 있었다. 최저임금에 연장근무 6시간에 따른 돈이 더 얹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이 금액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지금 이 시간에도 물류센터에서 고단한 하루를 보낼 청춘들을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저려왔다.

14시간 夜택배노동 해보니 마침. 

“도망 못가” 저당잡힌 청춘들…14시간 夜택배노동 해보니② [발로쓴다]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근로자들 / 사진=한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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