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구충제에 대한 관심이 꺼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동물용 구충제의 ‘항암 효과’ 논란에 이어 온라인상에는 사람용 구충제가 알레르기 비염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확산됐다. 여기에 구충제 이버멕틴이 코로나19 치료에 효과를 보였다는 연구가 나오면서 또 다른 구충제 열풍을 불렀다. 심지어 최근 발생한 수돗물 유충 사건에서는 느닷없이 구충제를 생산하는 제약회사의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수돗물 공포로 구충제를 찾는 사람들이 늘 것으로 예상한 결과다. 불안 심리를 틈타 ‘구충제 만능론’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구충제는 인체에 기생하는 기생충을 제거하는 약물이다. 국내 약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구충제로는 알벤다졸, 플루벤다졸 등이 있다. 주로 익히지 않은 채소에 의한 회충, 요충, 편충, 십이지장충 감염에 사용된다. 구충제가 우리 몸에 들어오면 미세 단백질에 결합해 기생충 내로 포도당이 흡수되는 것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에너지 공급을 막아 성충, 알, 유충을 굶겨 죽이는 방식이다. 다만 숙주인 사람의 장기에는 거의 흡수되지 않아 구충제로 사용했을 때 안전한 것이다.
◇스웨덴도 펜벤다졸 효과없음 결론
앞서 논란을 지폈던 동물용 구충제(펜벤다졸)의 항암 효과에 대해 보건전문가들은 근거가 부실하다고 일축한다. 항암 효과에 대한 주장은 구충제의 성분이 사람이나 동물의 세포 내에서 세포의 골격, 운동, 분열에 관여하는 미세소관을 억제해 암세포 증식을 막는 효과가 있다는 세포 및 동물 실험 결과가 바탕이 됐다. 그러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아니며 효능보다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는 “사람을 대상으로 약을 사용하기 위해선 엄격한 임상시험으로 효능과 안전성이 확인돼야 한다. 현재까지 사람에서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를 확인한 임상시험이 발표된 적 없다”며 우려를 표했다.
올해 초 국립암센터도 펜벤다졸 등 구충제의 항암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임상시험을 추진했었다. 당시 국립암센터 연구진들은 기존 동물, 세포 단위로 진행됐던 연구 논문과 유튜브에서 인용된 자료를 모아 임상시험 타당성 여부를 검토했지만 동물 수준에서도 안정성이나 효과가 검증된 바가 없다고 최종 결론지었다. 스웨덴 또한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와 관련한 사람 대상 연구를 진행했지만 같은 결과를 냈다. 스웨덴 연구진들은 2018년 임상시험을 시작해 암환자 11명을 대상으로 진행했지만, 결국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단해 올해 1월 연구를 중단했다.
펜벤다졸의 기전을 활용한 항암제는 1990년대에 1세대 세포 독성 항암제로 만들어져 이미 의료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현재 1세대 항암제를 보완한 4세대 항암제까지 개발되는 상황에서 검증도 되지 않은 구충제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대호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펜벤다졸과 같은 기전의 세포 독성 항암제가 이미 있다. 검증된 치료제가 있는데 굳이 구충제를 먹을 이유가 없다. 나아가 구닥다리 항암제들이 점점 밀려나는 상황에서 충분한 근거도 없는 구충제에 대한 임상가치를 따져보는 조차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충제 성분에 대한 논의는 이미 20~30년 전에 끝이 났다. 구충제를 사람에게 쓰는 것은 매우 위험한데도 비전문가를 통해 유사과학이 퍼지면서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코로나 치료제 부상했지만 검증안돼
코로나19 치료제로 부상한 구충제 이버멕틴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치료효과에 대한 섣부른 기대가 혼란을 부른 사례다. 이버멕틴은 선충·심장사상충, 모낭충 등에 쓰이는 광범위 구충제다. 지난달 호주 모니쉬 대학 연구소의 카일리 왜그스태프 박사가 이버맥틴이 시험관 내 실험(in-vitro) 환경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48시간 만에 소멸시켰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이버멕틴 사재기 열풍이 일었고, 국내에서도 온라인을 통해 약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강한 우려를 표했다. 대한약사회는 “이버멕틴 성분이 인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검증된 사실이 없으며, 코로나19 바이러스 억제에 유효한지 여부도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버멕틴을 동물 구충 이외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외에 구충제가 알레르기 비염에 효과가 있다거나 당뇨에 좋다는 등 유튜브 등을 통해 확산된 정보도 검증되지 않은 낭설이다. 약사회에 따르면, 구충제는 용법·용량대로 복용할 경우 부작용이 적은 약이지만, 장기간 복용할 경우 두통, 간기능 장애, 혈액 이상 등의 부작용이 발현될 수 있기에 복용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수돗물 유충 사건과도 구충제는 관련이 없다. 벌레의 유충은 기생충이 아니므로 사람 몸에서 번식하지 않는다. 자칫 유충을 먹었더라도 단백질로 흡수된다. 모두 단순한 불안 심리에 기댄 해프닝인 것이다.
보건전문가들은 ‘감정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에서 이러한 문제가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대한의학회지 논평을 통해 “불확실한 현실에 직면할 때 사람들은 꿈 또는 희망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그 꿈이 유효한지 의문을 가지지 않고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증되지 않은 의학정보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기보다 혼란을 야기한다. 근거기반의학연구를 통한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하고, 전문가들은 검증된 의학정보들을 국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기생충 감염적은 한국인, 구충제 권장 안해
그렇다면 실제 일상생활에서의 구충제 복용은 어떨까. 사실상 우리 국민 대다수에는 치료목적의 구충제 복용이 권장되지 않는다. 위생상태가 개선돼 기생충 양성률(감염률)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허선 한림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가 대한의사협회지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도 기준 우리 국민의 회충란 양성률은 0.025%, 편충은 0.4%, 요충은 0.0042%에 불과하다. 또 약물 반감기(약효 지속 시간)가 알벤다졸은 8~12시간, 플루벤다졸은 9시간으로 길지 않다.
허 교수는 “해당 연구는 2012년 데이터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최근에는 기생충 양성률이 더욱 낮아져 0.1% 미만으로 추정된다. 기생충에 감염된 환자가 그만큼 극소수일 것이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예방적 목적의 구충제를 먹는 것도 권장하지 않는다. 구충제의 약효는 하루(24시간)가 지나면 없어진다. 기생충 감염을 예방하려면 매일 먹어야 한다는 것인데, 간독성 등 부작용을 고려하면 좋은 행동은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