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 확 줄었는데 피는 낭비 중…정부 ‘적정수혈’ 지원사격 

올해부터 '환자혈액관리' 시범사업 운영, 수혈 적정성평가 실시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코로나19 사태로 헌혈 인원이 급감하면서 혈액 수급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의료현장에서는 ‘적정 수혈’에 대한 정책 부재 및 인식 부족으로 다량의 피가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정부가 의료계와 손을 잡고 올해부터 적정수혈 관련 3개년 시범사업을 시행할 계획이지만, 일각에서는 사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임상적 근거와 예산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한다.


◇ 헌혈자 감소해도 ‘적정 수혈’ 인식 낮고 대체제는 비급여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지난 5월 혈액보유량은 적정 혈액 보유량의 절반 수준인 2.7일분으로 급감했다. 헌혈자 수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1만명 이상 감소해 헌혈 참여를 독려하는 재난문자가 발송되기도 했다. 

‘혈액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저출산‧고령화로 헌혈자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대신 혈액사용량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헌혈 참여자는 청소년과 군인, 10대와 20대에 집중돼 있고, 전체 헌혈인구의 약 43%가 학생들의 단체헌혈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적십자사의 ‘2019 혈액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실제 헌혈자 수는 전년 대비 4만4244명이 감소했고 10대 헌혈자 수도 크게 줄었다. 

혈액 확보 방안으로는 크게 ‘헌혈 증진’과 ‘적정 수혈’이 있다. 헌혈을 장려해 혈액 수급을 늘리거나, 적정 수혈로 불필요한 혈액 사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우리나라는 정기적인 캠페인 등을 통해 헌혈을 유도하고 있는데 반해 혈액관리 관련 정책은 전무한 수준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2010년 환자혈액관리(PBM)를 도입하도록 권고한 상황이지만 국내 의료현장에서는 불필요한 수혈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 

PBM는 ▲환자 스스로 혈액 생성을 촉진하도록 해 수혈을 최소화 ▲수술시 환자의 출혈을 최소화 ▲수술이 끝난 이후에 환자의 혈액량이 적어도 생리적 보전능력을 향상시켜 집중관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정재 순천향대 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PBM은 수혈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수혈을 적게 해 혈액사용량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다”며 “지난 10년간 헌혈이 줄면서 공급량은 줄었지만 정작 피를 사용하는 병원에서는 변화가 없었다. 최소 수혈, 적정 수혈에 대한 인식도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보건당국과 대한수혈학회가 지난 2016년 수혈가이드라인을 개정(4판)한 이후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의사들의 80%가 지침을 따르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대체로 관행적(선배로부터 배운 대로)인 이유 혹은 저렴한 혈액 등으로 인해 과도한 수혈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의과대학 교과과정에는 적정 수혈에 대한 내용이 없고, 가이드라인을 개정해도 이행하는 의료진이 적다”면서 “수혈이 적절했는지, 왜 필요했는지, 대체치료법이 있는지 등을 환자에게 제대로 설명하는 병원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영국에서는 A의사가 1년간 쓴 혈액량을 확인하는 등 의사 개개인에 대해 평가를 하고, 호주는 주정부가 의사들과 협력해 혈액 관리를 하고 있다”며 “우리는 올해 10월 처음으로 슬관절(무릎관절)치환술에 대한 수혈 적정성평가를 실시하는데, 대상 질환을 늘려야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수혈 대체제에 대해서도 보험 급여를 적용해야 혈액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빈혈이 있는 환자에게 철분제를 주입하고 빈혈을 교정한 후 수술하면 수혈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쓰이는 치료제가 비급여”라면서 “고용량 철분제는 500ml에 10~15만원이다. 보험이 되는 저용량을 쓰려면 여러 번 내원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혈액은 한 팩에 5만원 정도다. 보험이 적용되면 본인 부담금은 그 절반도 안 된다”며 “수혈이 불필요해도 수혈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한편, 최소 수혈은 혈액 확보뿐만 아니라 환자의 치료결과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악셀 호프만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PBM 시행 후 환자의 수혈은 10~95%, 사망률은 68%, 입원기간은 최대 33%, 재수술율 43%, 합병증 발생율 41%, 감염율 80%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적정성 평가 확대하고 PBM 지원사업 실시…‘연구비 지원’ 필요 

정부는 혈액관리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수혈 적정성 평가 대상을 점차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최근 3년간 혈액 보유량이 급격히 감소했고, 저출산‧고령화 구조가 이어진다면 혈액 수급은 명백히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우선 슬관절 수술에 한해 수혈 적정성평가가 올해 10월부터 시행된다. 내년과 내후년에는 대상 질환을 확대할 수 있도록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논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복지부는 올해 1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환자혈액관리 지원도구 마련 및 시범사업 운영’ 과제를 3개년에 걸쳐 시행할 계획이다. 여기에 더해 의료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혈액관리 기본계획 제정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중장기적인 관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관계자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PBM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치료재료 수가나 적정 수혈 유도 방안 등에 대한 검토가 미흡했다”면서 “수혈 가이드라인과 PBM 전산시스템을 개발해 의료기관의 혈액 보유량, 사용량, 폐기량 등의 정보를 수집하고, 보수교육 등을 통해 적정 수혈을 권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전체 의료기관이 PBM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TF팀에 참여하고 있는 김영우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정부 결정에 환영을 표하면서도 혈액관리 효과 등의 임상연구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시범사업이 확대되고 의료현장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치료결과가 향상되고 효과가 있었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추진 의지만으로는 예산을 받을 수 없다. 시범사업이 끝나는 3년 후에도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근거 마련을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연구비 지원”이라며 “아울러 중소 의료기관의 참여를 이끌기 위해 시범사업을 통해 구축된 전산시스템 등의 설치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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