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동구릉에는 보라매가 산다

조선 최대의 왕릉 "동구릉에는 참매 가족이 산다"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참매 어린 새끼들이 처음 보는 사람과 대형 렌즈가 신기한 듯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쿠키뉴스 생태조사팀은 지난 5월 21일부터 7월 10일까지 50여일간 도심 속 조선왕릉인 동구릉에서 번식 중인 천연기념물 323호 참매가족 외 다양한 조류를 기록했다.

- 수목 잘 보존된 도심 왕릉은 조류 및 동식물 서식 적합
- 구리 시 동구릉은 면적대비 다양한 조류 관찰 적지
- 참매, 새매, 까막딱따구리, 삼광조, 팔색조 등 희귀새 번식
- 코로나19로 사람 발길 끊어지자 동식물 서식환경 더욱 좋아져
- 알 품고 있는 어미 참매 경계 눈빛 사나워
- 둥지 떠난 보라매, 비행 및 사냥 훈련 분주한 나날
- 쿠키뉴스 생태조사팀 50일 위장막 설치하고 관찰

동구릉 9개 능 중 혜릉(20대 경종 부인 단의왕후) 전경

[쿠키뉴스] 구리‧ 곽경근 대기자 = 지난 5월 21일 야생조류센터 그린새 서정화 대표(이하 서대표)가 구리 시 동구릉에서 참매 둥지를 발견했다며 동행을 권유했다. 겨울 철새로 알려졌던 참매가 충주 남한강 인근에서 번식이 확인된 것은 지난 2006년이다. 이후 참매의 번식이 전국에서 확인되긴 했지만 이처럼 도심에서 특히 왕릉에서 번식이 확인된다면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따라나섰다.

위장복을 입고 쌍안경에 600mm 초망원렌즈를 들고 능 입구에서 약 20여분 걸어서 대표가 확인했다는 숲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2009년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된 사적 제193호 동구릉(東九陵)은 서울의 동쪽에 조선 왕과 왕비의 능 9기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왕조(朝鮮王朝) 518년이 잠들어있는 동구릉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부터 문조의 수릉(綏陵)까지 조선의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조선 왕실 최대 규모의 왕릉 군이 자리한 곳이다.
왕릉을 감싸고 있는 200만㎡의 넓은 숲은 삭막한 콘크리트 숲속에 사는 도시민들에게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포근함을, 새들에게는 먹이터, 쉼터, 놀이터가 보장된 도심 최적의 생태섬이다.
능 내를 여유롭게 산책하는 고라니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의 능 관람이 중단되면서 능 안의 동식물은 모처럼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났다.

사람들 발길이 끊긴 동구릉 안으로 들어서자 싱그러운 풀숲과 나뭇가지 위 새들의 지저귐이 더욱 가까이서 들린다. 흙길을 따라 고라니와 다람쥐의 발길이 여유롭고 되지빠귀 한마리가 졸졸졸 흐르는 돌다리 아래 얕은 물에서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목욕을 즐기고 있다.

되지빠귀가 얕은 물에 들어가 몸을 식히고 있다.

흙길을 벗어나 능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초망원렌즈와 대형 삼각대의 무게로 숲 속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귓가에 제법 크게 들리는 순간 머리 위에서 날카로운 경계음을 내며 수컷 참매의 위협 비행이 시작됐다.

“아 확실히 참매 어미가 둥지에 있나 봅니다” 서 대표는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나지막하게 이야기한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둥지가 있는 키 큰 소나무에 20여m 가까이 접근해 나무 뒤에서 쌍안경을 꺼냈다. 숨을 죽이고 약 18m 높이의 소나무 상층부 잔솔가지 너머 제법 커다란 둥지가 눈에 들어왔다.
취재진을 쏘아보는 어미 참매의 눈빛이 날카롭다.

쌍안경의 핀트를 조절하며 둥지 안을 유심히 살피자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매섭게 쏘아보는 어미 참매의 얼굴이 잡혔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뜨지 않으면 공격이라도 하겠다는 눈빛이다. 매처럼 날카롭게 노려본다는 ‘응시(鷹視)’란 단어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수컷 참매 역시 계속해서 취재진 머리 위를 배회하면서 큰소리를 낸다. 알을 품고 있는 어미 참매의 안정을 위해 인증 샷만 찍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600mm 렌즈에 포착된 참매 가족

수리목 수리과에 속하는 참매는 1982년 천연기념물 제323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몸길이 48∼61cm의 참매는 수컷에 비해 암컷이 조금 더 크다. 몸의 윗면은 푸른빛이 도는 회색으로 흰색 눈썹선이 뚜렷하고 윗목은 흰색으로 얼룩져 있다. 아랫면은 흰색 바탕에 잿빛을 띤 갈색 가로무늬가 촘촘하게 새겨져 있다. 날 때는 비교적 짧으면서 넓은 날개와 긴 꽁지가 눈에 띈다.

예로부터 사냥능력이 뛰어나 해동청으로도 불렸던 참매는 꿩과 토끼 등 날짐승과 들짐승 사냥에도 쓰였다. 5월 상순경에 보통 3~4개의 알을 낳아 40일 가까이 품는다.
우리나라에서 매는 6종이 기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황조롱이와 매의 2종과 수리류 중 참매·붉은배새매·새매와 개구리매 등 4종을 한데 묶어 매류로 취급한다. 1982년 천연기념물 제323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참매는 또한 북한을 상징하는 새로 북한의 국조(國鳥)이기도 하다.

날아가는 먹이를 잘 낚아채 ‘바람의 사냥꾼’으로도 불리는 참매는 꿩과 멧비둘기, 직박구리 등 조류와 다람쥐와 청설모 같은 작은 포유류를 잡아 새끼를 키운다. 참매는 둥지를 새로 짓기도 하지만 새집을 짓는 건 생각보다는 힘든 일이어서 지난 해 둥지를 보수해서 재사용하기도 한다. 

약 18m 높이의 소나무 상층부에 둥지를 틀고 번식 중인 참매 가족. 새끼들이 크고 먹이가 쌓이면서 둥근 둥지는 점차 평탄해지고 약해진다. 수컷 참매는 수시로 솔가지 등을 물어와 둥지를 보수한다.

둥지는 나무의 상층부에 긴 타원형 모양으로 보통 크기가 약 132~141cm 정도에 이른다. 둥지 내부에는 솔잎이나 신갈나무 혹은 졸참나무 잎을 바닥에 깔아서 만드는데 새끼들이 크고 어미들이 먹이를 잡아다 쌓아놓으면서 무게에 눌려 평평해진다.


알에서 부화하면 주로 암컷이 새끼들을 돌보고 수컷은 둥지 보수, 주변 경계와 먹이 사냥 등 바깥 활동을 주로 한다.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먹잇감을 잡아 엽기적이지만 목을 날카로운 부리로 잘라내고 몸뚱이만 둥지에 저장해 두었다가 손질해서 먹인다.
새끼를 품고 있는 칡때까치

큰유리새

팔색조(천연기념물 204호)

서 대표는 10년 째 동구릉에서 숲 해설과 생태 조사를 하면서 다양하고 희귀한 새를 많이 만났다고 말한다. 소나무 외에도 다양한 수종이 잘 보존 관리되고 있는 왕릉은 새들이 살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특히 동구릉은 텃새들이 많아 이를 먹잇감을 삼는 맹금류도 여러 종 살고 있고 인근에 왕숙천이 있어 먹고 쉬고 씻는데 부족함이 없다.

까막딱따구리(천연기념물 242호)

큰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동구릉에는 까막딱따구리와 아물쇠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쇠딱따구리, 청딱따구리 등 국내서 볼 수 있는 6종의 딱따구리가 모두 살고 있고 그 외에도 삼광조로 불리는 법종 보호종 긴꼬리딱새와 팔색조 등 귀한 새들도 만날 수 있다.

솔부엉이(천연기념물 324호)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 긴꼬리딱새(삼광조)

노랑턱멧새

동구릉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박방오(49) 주무관은 “동구릉은 인근에 다산, 갈매신도시가 건설되면서 농토가 사라지자 능 안으로 새나 동물들이 더 많이 찾아들었다”며 “코로나19로 두 달 가까이 능 관람이 중단되면서 동물들의 행동반경이 더 넓어지고 자유스러워진 것 같다. 새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새끼들도 예년에 비해 훨씬 더 많이 날아다니고 활기차 보인다”고 말했다. 

동고비

직박구리

첫 발견 후 보름이 지나고 아침 일찍 동구릉을 찾았다. 연초록 나무 잎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큰유리새를 비롯해 저마다 아름다운 목청을 뽐내는 숲 속에서 갑자기 고라니가 튀어나와 사람을 놀라킨다. 참매 둥지가 있는 능 안쪽 숲으로 다가가기 위해 위장복을 고쳐 입고 자세를 최대한 낮추어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지만 8km 떨어진 곳의 물체도 찾아낸다는 매의 눈과 청각을 속일 수는 없었다. 취재진을 발견한 참매 수컷과 암컷이 숲 사이를 오가며 긴박한 경계음과 함께 취재진 머리 위로 빠르게 날아다닌다. 


서둘러 위장천막을 치고 초망원렌즈를 설치해 둥지에 핀트를 마치고 조용히 기다렸다. 얼마가 지났을까 솜털 뽀송뽀송한 3마리 참매 새끼가 번갈아 둥지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바깥세상이 몹시 궁금한 눈초리다.
쿠키뉴스 생태조사팀은 600mm 초망원렌즈와 200~500mm 줌 망원렌즈를 사용해 참매 둥지 30m 후방 나무 숲에 위장텐트를 설치하고 취재했다.

하루 종일 얼굴 주변을 왱왱 거리며 맴도는 날벌레를 손으로 쫒아내며 기다려도, 새끼들이 먹이를 달라고 울어대도 이따금 주변에서 경계음만 낼 뿐 참매 암수는 둥지를 찾지 않았다. 취재진 때문에 둥지에 들어오지 않는지 걱정스러워 서 대표와 통화를 했다. “낮선 사람 때문일 수도 있지만 새끼들이 어느 정도 크고 홀로 먹이를 먹을 정도면 원래 둥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며 “밑에서 보이지 않지만 둥지 안에는 어미들이 잡아서 손질해놓은 먹이가 충분히 있을 것이기 때문에 걱정 안해도 된다”며 안심 시킨다.

목화송이처럼 참매 새끼들의 솜털이 보송보송하지만 눈매와 부리는 벌써 날카롭다.

그러고 보니 새끼들이 연신 둥지 밑에서 무언가를 쪼아 먹는 듯 머리 윗부분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저녁 무렵 먹이를 물고 잠깐 둥지를 찾았다가 바로 둥지를 벗어나는 어미 새를 확인하고 철수했다. 숲을 벗어나자 취재진도 하루 고생했다는 듯 어미 참매가 하늘로 잠시 올라 배웅한다.
먹잇감을 많이 물어다 놓았는지 둥지의 어린 새끼들 주변에 파리와 날벌레들이 수없이 맴돌고 있다. 새끼들도 날벌레들이 귀찮은 듯 연신 몸을 움짓거리고 눈을 껌벅인다.

그로부터 다시 2주 후인 6월 19일, 참매 가족에게는 달갑지 않은 손님인 취재진이 위장텐트 안으로 재빨리 스며들었다. 어느새 어미 참매만큼 덩치가 커진 새끼들은 듬성듬성 솜털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 깃털로 덮여 있었다. 

솜털과 깃털이 뒤섞여 마치 누더기 옷을 입은 것 같은 참매 새끼가 날갯짓과 점프를 하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둥지가 무너질 정도로 껑충 껑충 점프도 하고 날갯짓도 해본다. 맏형으로 보이는 새끼 한 마리는 벌써 둥지 옆 나뭇가지에 점잖게 서 있다. 

6월 24일, 혹 새끼들이 이소(둥지 떠나기)했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다시 동구릉을 찾았다.

참매 새끼들이 제법 어른스런 모습을 갖췄다. 1년 동안 어미 영역에서 생활하면서 하늘과 숲 속을 날며 사냥기술을 습득할 것이다. 둥지를 떠났지만 1년이 안 된 매 새끼를 ‘보라매’라 부른다.

3마리 새끼 중 가장 덩치가 큰 녀석이 날갯질을 하면서 둥지 옆 나무가지로 이동하고 있다.  어미가 물어다 놓은 먹이는 힘이 센 참매 새끼부터 서열이 정해져 차례로 먹는다.

며칠 사이에 깃털 사이로 간간이 보이던 솜털은 거의 빠지고 성체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아직 둥지를 떠나지는 않았다. 망원렌즈를 유심히 바라다보는 새끼의 눈매가 어미처럼 매섭다.

덩치가 비교적 작은 막내 참매 새끼가 둥지 밖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위장텐트 안에서 본 참매 둥지 전경

그 어미에 그 새끼다.
먹잇감도 손질하지않고 통째로 물어다주는지 어떤 녀석은 큼지막한 새 발가락을 물고 있고 또 다른 녀석은 부리에 털이 붙어 있다.
며칠 내로 비좁은 둥지를 떠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제법 큰 새의 다리를 물고 있는 참매 새끼

다시 일주일 후 설레는 마음으로 둥지를 찾았다. 예상대로 둥지는 비어있었고 주변에서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고 새끼들을 찾아 나섰지만 울창한 숲속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새끼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렵게 발견해서 카메라를 새끼에게 향하려하면 쏜살같이 날아가 짧은 시간에 더 이상 새끼들을 촬영하기는 어려웠다. 

모두 안전하게 둥지를 떠났으니 참매 새끼 3형제는 마음껏 하늘을 날며 어미에게 사냥기술을 배울 것이다. 마침내 어느 날은 높은 하늘에서 호버링(제자리 비행)하며 9개의 능을 한눈에 내려보다가 쏜살같이 하강해 날카로운 발톱으로 먹이를 낚아 챌 것이다. 우리는 둥지를 떠나 비행과 사냥훈련에 매진하는 어린 매를 ‘보라매’라 부른다. 

동구릉 전경

창공을 향해 힘차게 솟구치는 동구릉 보라매 3형제의 힘찬 날갯짓이 눈에 선하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 서정화 야생조류센터 그린새 대표 / 취재지원=왕고섶 사진가‧ 이원철 사진가‧ 동구릉관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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