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살인 14건·강간 9건 범행 확인” ‘최악의 미제 사건’ 34년 만의 결론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우리나라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분류되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34년 만에 이춘재의 범행으로 결론 지어졌다.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은 2일 오전 10시 경기 수원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종합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배 청장은 “이춘재의 잔혹한 범행으로 희생되신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모씨와 그의 가족, 당시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도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춘재가 지난 1986년 9월부터 지난 91년 4월까지 14건의 살인사건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86년 1월 이춘재가 군에서 전역한 이후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발생 장소 역시 이춘재의 행적 및 생활반경과 일치했다. 이 중 5건의 살인사건 증거물에서는 이춘재의 DNA가 검출됐다. 나머지 9건의 살인사건에서는 범인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을 이춘재가 자백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자백의 임의성과 신빙성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진술 내용의 핵심적인 부분이 과거 수사기록과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이춘재가 자백한 34건의 강간사건 또한 실제 이뤄진 범행으로 판단됐다. 연쇄살인의 시기·지역이 일치하고 범행 수법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다만 입증 자료가 충분한 9건의 강간사건만이 이춘재의 범행으로 공식 확인됐다. 25건의 강간사건은 진술의 구체성이 떨어지는 점, 피해자가 진술을 원하지 않는 점, 사회 분위기상 신고 되지 않은 사건이 많은 점 등으로 인해 추가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다. 

이춘재의 범행 동기는 ‘욕구 해소와 내재된 욕구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가학적 형태의 범행을 한 것’으로 판단됐다. 경찰은 “이춘재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삶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다가 군대에서 처음으로 성취감과 주체적인 역할을 경험했다”며 “군 전역 후 무료하고 단조로운 생활로 인해 스트레스가 가중된 욕구불만 상태에서 상실된 자신의 주도권을 표출하기 위해 성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죄책감 등의 감정변화를 느끼지 못하면서 가학적인 형태로 진화됐다는 분석이다. 

경찰은 이춘재에 대해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신의 범행과 존재감을 과시해 언론과 타인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이코패스 성향이 뚜렷하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춘재는 수사초기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범행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하고 자신의 건강 및 교도소 생활만을 걱정했다.  

이춘재의 자백 외에 다른 여죄는 입증되지 못했다. 경찰은 여죄 수사를 위해 거짓말탐지기와 법최면, 프로파일러 심리분석 등 다각도로 진행했다. 이춘재는 특히 92년 자신의 주거지역 인근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해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 거짓반응을 보였다. 법최면 상태에서는 해당 사건에 대해 질문하면 크게 소리를 지르는 등 ‘심리적 방어기제의 억제 특성’을 보였다. 경찰은 “범행을 완강히 부인할 뿐만 아니라 당시 수사기록 등이 미비해 관련성을 입증할 자료를 발견할 수 없었다”며 “추가 여죄를 확인하지 못해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송치 이후에도 유사수법 사건에 대한 관련성을 확인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춘재, 살인 14건·강간 9건 범행 확인” ‘최악의 미제 사건’ 34년 만의 결론지난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며 발생한 위법 행위와 미비했던 수사과정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앞서 경찰은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윤씨를 검거했다. 윤씨는 범행을 부인했으나 20년간 옥살이를 한 후 출소했다. 경찰은 “경찰이 윤씨를 임의동행한 후 부당하게 신체를 구금했다. 조사 과정에서 폭행 및 가혹행위로 인한 허위자백, 허위 진술서 작성 강요 등이 확인됐다”며 “당시 수사에 참여한 경찰관 및 검사 등 8명을 직권 남용 감금 등의 혐의로 입건했으나 공소시효가 완성돼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우선 송치했다”고 이야기했다. 

87년 발생한 ‘초등학생 살인 사건’과 관련해서도 당시 형사계장 등 2명은 피해자의 유류품을 발견했으나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경찰은 이들을 사체 은닉 및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입건했으나 공소시효가 완성돼 ‘공소권 없음’으로 송치될 예정이다. 

이춘재가 3차례에 걸쳐 경찰의 수사망을 빠져나간 것에 대한 사과도 나왔다. 경찰은 87년 7월 이춘재를 초등학생 강간사건의 용의자로 지목, 수사했으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풀어줬다. 지난 88년 11월에도 이춘재에 대한 수사가 이뤄졌으나 현장 음모와 혈액형 및 형태적 소견이 상이하다는 감정 결과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지난 90년 1월에도 이춘재는 수사 선상에 올랐으나 6차 사건에서 확인된 용의자 족장(255㎜)과 이춘재의 족장(265㎜)이 불일치해 용의 선상에서 배제됐다.

경찰은 “많은 희생자가 나오게 된 것은 경찰의 큰 잘못으로 깊이 반성하고 사죄드린다”며 “수사 과정에서의 잘잘못 등을 자료로 남겨 책임있는 수사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역사적 교훈으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진행 중인 8차 사건 재심 절차에도 지속적으로 협조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은 86년부터 91년 4월까지 당시 경기 화성군 태안읍 일대에서 여성 10명이 잇따라 살해당한 사건을 뜻한다. 미궁에 빠져있던 사건은 지난해 9월 DNA 대조를 통해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이춘재가 용의자로 특정되며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춘재는 같은 해 10월1일 범행을 자백했다.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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