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사이드] 내 이름은 이특, ‘청담 이씨’죠

[딥사이드] 내 이름은 이특, ‘청담 이씨’죠

내 이름은 이특, ‘청담 이씨’죠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11시29분. SM엔터테인먼트의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 ‘버블’로 “지금 유튜브에서 이은호 기자님 얘기할게요”라는 문자가 날아들었다. 발신자는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이특. 나는 솟아오르는 광대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유튜브에 접속했다. 이특이 ‘[체험기] 이특 버블 제가 구독해봤습니다’ 기사를 실감 나게 구연하는 중이었다. 세상에. 우리 엄마도 안 읽는 내 기사를 대(大) 한류스타 이특이 읽어주다니! 신기함은 잠시, 그가 기사인지 ‘입덕썰’인지 모를 내 기사를 읽어나갈수록 얼굴이 달아오르고 겨드랑이에선 땀 분비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내 안의 ‘관심종자’가 백기를 들었다. 이특씨, 제발… 제발 그만!! 제발 그만해주세욧!!!

하지만 아무도 그를 멈출 순 없었다. 이특은 이내 ‘“슈퍼주니어, 정말 징하네요…어메이징! [들어봤더니]’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잠깐. 혹시 내가 오타를 내지 않았던가? 이특의 코멘트를 좀 더 많이 실을 걸 그랬나? 그때, 이특이 물었다. “이은호 기자님은 제가 최애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나는 방구석에서 속마음으로 답했다. 이특은 내게 ‘청담 이씨’를 하사했다. ‘청담 이씨’는 서울 청담동 SM엔터테인먼트에서 탄생한 가문으로, 진정한 엘프(슈퍼주니어 팬클럽)들만 이 가문에 들어갈 수 있다. 아버지. 불효녀를 용서하세요. 저는 이제 공주 이씨에서 청담 이씨로 다시 태어나렵니다.

이특. 현직 슈퍼주니어의 리더이자 전직 ‘날개 잃은 천사’. 이특은 싸이월드가 유행이던 2009년 자신의 미니홈피에 “기억상실증에 걸린 날개 잃은 천사 이특입니다. 제가 태어난 7월1일은 비가 내렸습니다. 하나뿐인 천사를 땅으로 내려보내서”라고 적었다가 실제 그가 태어난 날의 강수량이 0㎜였다는 사실이 누리꾼에 의해 밝혀져 놀림감이 됐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특의 감수성은 메마를 줄 몰랐고, 급기야 슈퍼주니어 정규 8집 발매를 앞두고 있던 2017년에는 멤버들과 ‘SNS에 의미심장한 글 올리지 않기’를 약속하기도 했다. 마초적이라기 보다는 감성적이고, 마음이 여려 눈물도 자주 흘리는 사람. 그래서 때론 주변 사람에게 농담 섞인 구박을 받을 때도 있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이특은 기대고 싶은 리더인 동시에 지켜주고 싶은 리더다.

슈퍼주니어가 여러 풍파 속에서도 15년째 ‘한류 제왕’으로 입지를 지키고 있는 데엔 이특의 공이 컸다. 2000년 SM엔터테인먼트에 연습생으로 입사해 2005년 정식 데뷔한 그는 개인보다 팀을, 자신보다 멤버들을 우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데뷔 초 수록곡 ‘미라클’(Miracle) 활동을 앞두고 ‘이 노래의 반응이 좋지 않으면 팀을 접어야 한다’는 사실을 혼자서만 알고 감당한 이가 이특이었고, 신인 시절 김희철이 차가운 인상 때문에 주변의 오해를 받게 되자 착실한 미소와 90도 ‘폴더 인사’로 팀의 이미지를 좋게 만든 이도 이특이었다. 그는 통제하고 가르치는 리더가 아니라 귀 기울이고 수렴하는 리더였다. MBC에브리원 ‘주간아이돌’에서 ‘동생 멤버들이 말을 듣지 않아 힘들다’는 후배 그룹의 리더에게 이특은 이렇게 말했었다. “동생들이 리더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리더가 동생들의 말을 들어야 해요.” 

모두를 품고 이끌어야 하는 자리는 때론 그를 외롭게 만들기도 했다. 이특은 2018년 방송한 XtvN ‘슈퍼TV’에서 동갑내기 친구인 김희철과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는 “리더십이 없어도 있는 척해야 했고, 강하지 않아도 강한 척해야 했다”고, “‘나는 어디에도 기댈 수 없구나’라는 생각에 너무 많이 외로웠다”고 했다. 상담을 마친 뒤 숙소로 돌아온 김희철은 ‘콜라가 없다’는 이특의 말에 부리나케 편의점으로 달려갔고, 샤워를 하고 나선 러닝셔츠에 트렁크 바람으로 재롱을 부리기도 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통하는 이들의 우정이었다. 슈퍼주니어가 데뷔 10주년을 맞았던 2015년, SM엔터테인먼트 산하에 단독 레이블을 설립할 수 있었던 것도, 멤버들 간의 이런 ‘찐’ 우정, ‘찐’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슈퍼주니어가 지난달 31일 개최한 온라인 콘서트 ‘비욘드 더 슈퍼쇼’에는 전 세계 12만3000여명의 시청자가 몰렸다. 역대 ‘비욘드 라이브’ 공연 중 가장 많은 관객 수다. 앞서 언급한 유튜브 방송에서 이특은 “슈퍼주니어와 엘프가 새 기록을 세웠다. ‘슈주 뽕’(슈퍼주니어에 대한 자부심)과 ‘엘프 뽕’(엘프에 대한 자부심)이 차오른다”며 뿌듯해 했다. 한껏 흥이 오른 이특의 모습 위로 언젠가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은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나가 이미지가 망가지더라도, 슈퍼주니어는 시간이 지나더라도 계속 고결한 느낌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번에는 이특이 틀렸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망가진 이특’이 아니라 ‘슈퍼주니어의 리더 이특’일 것이기에. ‘청담 이씨’의 DNA에 펄 사파이어 블루가 새겨져 있는 한 말이다.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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