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하십니까] 21세기에 사는 게 맞나요…고등학생의 외침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21세기 한국에서 사는 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들어요”

지난 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한 고등학생의 외침입니다. 자신을 서울 한 고등학교의 재학생이라고 소개한 청원인. 이 학생이 다니는 학교에는 두발 규정이 시행 중입니다. 남학생은 앞머리 7cm, 옆머리 1cm, 뒷머리 1cm를 넘겨선 안 되고 여학생은 머리가 교복 이름표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하네요.

청원인은 “다른 학교 학생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머리 스타일로 개성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반면 제 머리를 보면 창피하기도 하고 화가 납니다”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했습니다. 또 두발 규정이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에 반하고 ▲명백한 인권 침해에 해당하고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고 조목조목 짚었습니다.

두발 규정은 교육계에서 여전히 뜨거운 감자입니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하고 ‘학생 포상·징계, 징계 외 지도 방법, 두발·복장 등 용모, 교육 목적상 필요한 소지품 검사,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 사용 등 학교생활에 관한 사항’을 학교 규칙(학칙)에 기재하도록 한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두발 검사 등 생활지도와 관련한 내용을 학칙에 기재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사라지게 됐습니다. 두발 복장 등 용모 지도가 오롯이 학교 재량이 된 셈이죠. 

그 결과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10월 기준, 두발 규정 관련 의견 수렴을 마친 관내 445개교(61.9%) 중 407곳(93.8%)이 두발 길이를 제한하지 않기로 학교 규칙을 제·개정 했습니다. 253곳은(58.3%) 염색을, 296곳(68.2%)은 파마를 허용하기로 결정했고요. 다만 두발 규제 완화가 시교육청에서 ‘권고’한 내용이다 보니, 아직 두발 규정을 고수하고 있는 학교도 있는 실정입니다. 글쓴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가 이 중 한 곳이겠죠.

두발 제한은 신체의 자유에 명백히 반한다는 학생들의 목소리. 선생님과 학교의 입장은 또 다릅니다. 지난해 교육부의 시행령 개정안이 나오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서는 “학생 생활지도의 붕괴를 가속화하고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를 초래한다”면서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교총이 전국 유초중고 교원 787명을 대상으로 모바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교원 83%가 시행령 개정에 반대했습니다. ‘생활지도 권한 범위 축소로 면학 분위기 훼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혔습니다.

학생 인권을 제한하는 교내 규칙이 두발 규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는 21대 총선부터 18살 청소년에게 선거권이 부여되면서 선거운동이나 정당 가입이 합법적으로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중고등학교에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규칙이 존재합니다.

청소년 단체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지난 3월 전국 중고교 533개에 대해 ‘정치적 권리 침해 규칙’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0% 이상의 중고교에서 학교장 허가 없이 단체에 가입하거나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규칙이 발견됐습니다. 일례로 경북 한 중학교에서는 정치 관여 행위, 학생 신분에 어긋난 행위를 한 학생은 출석정지 및 퇴학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불온 문서를 은닉, 탐독, 제작, 게시 또는 유포한 학생’을 처벌하는 규칙은 중학교 66.8%, 고등학교 70.5%에서 발견됐습니다. 30~40년 전에나 있었을 법한 ‘사상이 불온한 학생’을 학칙에 징계 대상으로 명시한 학교도 다수 있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학교 명예를 실추시킨 경우’ 징계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학칙도 있었죠. 문제는 이들 조항에 있는 ‘불온한 사상’ ‘명예 훼손’ 등의 모호한 단어가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는 점입니다. 학생의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지점입니다.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머리가 뭐 별거냐’ 이런 생각은 접어주세요. 학생들이 신체에 대한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도움을 주세요”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면서 어른들에게 SOS를 보낸 학생의 절박함. 단순히 두발 규정 때문 이었을까요. 여전히 학교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학생의 목소리는 뒷전입니다. 대다수의 학생이 표현의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게 21세기 대한민국의 교실의 현주소 입니다. 

여러분은 청원에 동의하십니까.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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