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집에서 쉬자?… “노동자 놀리는 것 불과”

“법적·제도적 장치 없이 쉬라는 건 말도 안 돼… 방역의 성공은 정부에 달렸다”

[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생활 속 거리두기’ 방역체계를 전환하면서 개인 방역수칙의 첫 번째로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를 꼽았다. 이에 대해 현실과 맞지 않는 이야기며 노동자를 놀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역 당국은 6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하면서 사회·경제 활동이 재개되고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일상과는 다른 ‘뉴 노멀’이 펼쳐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개인 방역 5대 핵심 수칙으로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 ▲사람과 사람 사이, 두 팔 간격 건강 거리두기 ▲30초 손 씻기, 기침은 옷 소매 ▲매일 2번 이상 환기, 주기적 소독 ▲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은 가까이 등을 내세웠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아프면 쉬자’는 단순한 명제를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은 노동자인데, 이를 지원해줄 법적, 제도적 장치는 하나도 없다”며 “고용노동부는 뒤에서 방관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는 상병수당(일을 하다 다치거나 앓게 될 때 요양에 필요한 비용 외에 따로 더 받는 수당)을 도입했고,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지난 1952년부터 사회보장 최저기준에 관한 조약으로 상병수당 규정을 제시해 각 국가에 권고하고 있다. 

또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연합(UN)은 상병수당을 보편적 건강보장의 핵심요소로 국가 수준의 사회보장 최저선에 포함하도록 요구해왔다. 한국은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상병수당을 부가급여로 할 수 있다고 명시돼 법 개정 없이도 도입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지난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결과, 유급 병가를 보장하는 기업은 7.3%에 불과하다. 

박 활동가는 “대다수 노동자가 코로나19 1차 웨이브 때 연차를 소진했다”며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는데 아프면 쉬라고 하지만, 직장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경제가 안 좋아져서 많은 이들이 해고됐다. 이러한 상황에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데 아프다고 쉴 수 있냐. 생활방역수칙은 노동자를 놀리는 것에 불과하다. 노동부가 질병 휴가를 보장하고 휴가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 등의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K-방역이 민주주의적이었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견디고 인내하고 참았다. 정부는 왜 책임지지 않나,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호주에서는 총리가 학교 휴교 결정을 내리면서 학부모에게도 유급 휴가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해당사자가 같이 움직일 수 있게 정책집행이 돼야 한다. 초기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이슈가 많아지면 꾸준히 지속되기 어렵다.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방역수칙이라지만, 개인이 선택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박 활동가는 “자기 주도로 일하는 사람, 권리가 많은 사람은 쉴 수 있지만, 고용 구조상 약자들은 그렇지 못하다”며 “코로나19 대응에서마저 빈부격차가 드러나고 있다. 일례로 정규직은 코로나19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지만, 같은 일을 하더라도 파견직은 제외된다. 방역의 성공은 정부에 달린 법”이라고 밝혔다.

지난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있었던 황금연휴 기간 서울 이태원 클럽을 중심으로 확산한 집단 감염으로 ‘N차 감염’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16일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코로나19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산발적인 유행 그리고 이완을 반복하면서 우리 사회에 오래 남아 있을 것”이라며 “언젠가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고 코로나19를 극복할 것이 분명하다. 철저한 생활방역을 실천하면 전파를 막거나 2차 전파를 차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활동가의 말처럼 법적, 제도적 장치 없이 개인에게 방역을 맡기는 것은 장기적으로 힘들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지난 12일 민주노총·한국노총·건강과대안·보건의료단체연합·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참여연대 등과 함께 ‘상병수당과 유급병가휴가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남 의원은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는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여실히 드러냈고, 상병수당 도입과 유급병가휴가 법제화는 노동자가 아플 때 소득감소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우선적 과제”라며 “노동자의 쉼은 곧 소득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대부분 아파도 쉴 수 없다. 우리나라는 노동자가 아프거나 다쳐서 근로 능력을 상실했을 때 소득을 보전해 주는 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고, 질병 관련 소득보전 제도로 산업재해보험의 요양급여와 휴업급여가 있지만 '업무상 질병'에만 해당하기 때문에 대상은 매우 한정적”이라고 지적했다.

nswreal@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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