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1년…마라도와 애기업개당

58년 개띠 퇴직자의 제주도 1년 살기…마흔네 번째

제주의 오름에서 만난 금새우란이다.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는 보기 드문 품종이다. 제주도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이 오름의 생태 환경을 보호하고 있어 다양한 습지 생물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어서 많은 새우란과 함께 금새우란까지 이렇게 큰 규모로 자라고 있다.

사람들이 4시면 일어나 아침도 제대로 먹지 않은 채 고사리를 꺾으러 나간다. 작은 화산이 폭발해 그 잔해가 흩어진 오름 분화구 주변에 돌과 흙이 뒤섞인 넓은 평지가 형성되어 있는 곳에 억새, 찔레, 청미래덩굴이 온갖 잡목들과 함께 숲을 이룬다. 사월 들어 이 숲에 사람들이 들기 시작해 한 달 쯤 지나면 가시덤불과 억새포기를 피해 걸어 다닌 발자국이 길이 된다.

다른 오름의 삼나무숲 속에서 운 좋게 아직 어린 금새우란을 만났다. 금새우란은 보통의 새우란 중에서 유전적 돌연변이가 이루어져 자연환경에서는 드물게 나나타난다. 다음날 이 새우란을 다시 보고 싶어 찾아갔을 때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많이 찾아오지 않는 오름이었는데 누군가 욕심을 내었다.

제주의 사월이 그렇게 지나가고 오월이 시작되면 가는 곳마다 온갖 꽃이 피어난다. 내게 그 중 최고는 새우란이다. 야생의 새우란 꽃은 대부분 짙은 고동색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고동색에도 다양한 변화가 보인다. 짙거나 엷거나 혹은 초록에 가깝거나 슬쩍 노란색이 보이기도 한다. 야생의 새우란 중 꽃 색이 가장 극적으로 변한 경우가 금새우란이다.

흰색과 초록이 어우러진 새우란 꽃이었다.

오름 두어 곳에서 본 금새우란의 꽃이 얼마나 화려하던지 온통 사막처럼 변한 삼나무 숲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야생의 새우란이 흔한 제주에서도 금새우란은 참으로 보기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누군가 욕심을 내고 캐가기 때문이다. 오름이라는 저 아름다운 정원에 두고 여럿이 함께 보고 기뻐하면 될 터인데 굳이 캐내어 화분에 심고 정원에 심어 홀로 즐기려 한다. 금새우란이 자라던 오름의 그늘과 바람과 습도를 맞추어주지 못하는 이상 제대로 자라고 번식하며  꽃을 피울 리 없다.

금새우란은 아니었지만 노란색이 많이 나타난 꽃을 피웠다.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전에 근무하며 젖어 있었던 병원의 조직문화와는 많이 달랐다. 더구나 오래된 작은 병원이 마치 배추벌레가 나비가 되듯 전혀 다른 조직으로 한 순간에 변화하려 하고 있으니 그 안에서도 여기저기서 모여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흔한 모양의 새우란처럼 보이는데 흰색 꽃잎에 분홍물을 들이고 있다. 가만히 보면 새우란은 자연 환경에서도 매우 다양한 꽃을 보여준다.

어차피 47살에 복귀한 직장에서 큰 영화를 누릴 능력은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만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이 병원을 위한 일인가’ 그리고 ‘이 병원이 속한 대학의 최고 경영자는 어떻게 판단할까’ 하는 기준만을 붙들고 해야 할 일은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나는 고집 센 직원이 되었다. 후에 누군가 내가 하던 일을 이어받았을 때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판단 기준이 되고 싶었지만 거기까지도 내 능력은 미치지 못했다.

제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새우란 꽃이다.

그러나 새 직장에 출근을 시작해 시간이 가면서 내가 정말 행복했던 이유는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종일 사람들에게 시달려 파김치가 되어 집에 오면 부모님은 늦은 시간까지도 깨어 있다가 나를 맞이했다. ‘저녁 먹었냐’고 묻는 아버지의 그 한 마디, 방에 들어섰을 때 침대에서 내미는 어머니의 왼손이 내가 일을 잘 해내야 하는 이유였다.

모슬포의 운진항에서 마라도까지는 배로 20여 분 걸리는데 멀어지는 해안을 바라보며 모슬봉, 산방산 등을 눈으로 더듬어 찾다보면 어느새 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
마라도 선착장은 절벽 아래 옹색하게 자리하고 있다. 도착과 동시에 오래 전 분출된 용암이 바닷물과 만나던 순간의 격렬함을 상상한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4월 중순 바람이 잔잔하고 맑은 날을 잡아 마라도를 다녀왔다. 코로나 19 폐렴이 사람들을 얼어붙게 했지만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운진항 주차장엔 차 댈 곳 찾기가 어려웠다. 이십여 분 걸리는 마라도 뱃길은 멀어지는 제주 해안의 모슬봉, 바굼지오름,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을 잠시 바라보다가 끝난다. 마라도 부두에 배가 가까이 가면 지금까지 가본 어느 해안의 부두와도 다른 모습을 본다. 바닷가 절벽 아래 겨우 배가 들어설 곳을 만들어 두었다.

계단을 올라서서 마라도를 살피기 시작한다.
주민 수가 100여 명을 조금 넘는 작은 섬이지만 마라도에도 초등학교가 있다. 휴교 상태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순간 마라도가 참 삭막하다는 느낌이 들며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 망설여진다. 마라도를 소개하는 무엇인가 근처에 있을 법한데 아무것도 없다. 섬의 크기에 비해서는 다소 과하게 큰 비가 서 있어 살피고 있는데 그새 배에서 내린 사람들 대부분 오른쪽 상점과 식당이 있는 쪽으로 사라졌다.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 앞에 넓은 잔디마당이 펼쳐져 있다. 학교가 휴교중이니 편안하고 생기 넘쳐야 할 잔디마당이 썰렁하기만 하다.

이제는 마라도의 짜장면이 뭔가 특별한 듯 알려져 이곳에 가면 꼭 먹고 와야 하는 음식이 되었다. 어차피 점심은 먹어야 하겠기에 호객하는 주인을 따라 들어갔다. 가격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맛은 특별히 기억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른쪽으로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생각으로 걷다보니 안쪽에도 짜장면 집이 의외로 많았다. 하기는 일년에 60만 명이 찾아와 서너 시간 머물다 나가니 그 많은 사람들이 간단하게 요기하기에 짜장면만한 음식이 또 어디 있을까.

마라도 절집은 인기척이 없었다. 종루의 범종은 바닥에 내려앉았고 단청은 벗겨지고 있었다. 바위에 새겨진 얼굴의 표정이 눈길을 끌었다.

이 조그만 섬에 몇 가구 살지도 않는데 절과 성당과 교회가 하나씩 들어와 있다. 절의 단청은 곳곳이 벗겨져 있고 범종은 종루에서 떨어져 바닥에 내려앉았다. 경내엔 어디에도 인기척이 없다. 댓 명 들어가기에도 빠듯하게 보이는 작은 성당엔 누군가 관리하고 있는지 깨끗하게 보였고 문을 열어 두었다. 섬 중앙의 교회는 섬에 비해 규모가 컸지만 역시 인기척이 없었다.

마라도에 찾아오는 관광객이 하루 1,500명쯤 되니 이 작은 섬에 생기가 넘칠 것이라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퇴락하는 집도 보인다.

마라도 남쪽 끝 바닷가에 바다로 향한 커다란 바위가 장군바위다. 하늘의 수호신이 땅에 사는 지신을 만나러 내려오는 이곳에서 주민들이 해신제를 지낸다. 마라도 주민들에게는 나름 신성한 곳이어서 함부로 오르지 않는다. 가파도에도 사람들이 신성시 여기며 오르지 않는 바위들이 있다. 올라가면 바람이 높아져 바다에 나간 사람들이 위험에 빠진다고 믿는다. 관광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코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는다.

문이 닫혀 있는 이유가 코로나 19 폐렴 때문으로 생각되는데 다시 사람들이 찾아와 분주하게 드나드는 모습을 상상한다.

섬 가장 높은 곳에 흰색으로 우뚝 솟은 등대는 관광객들에게 일정부분 개방되었었지만 코로나 19 폐렴 확산 방지를 위해 잠정적으로 폐쇄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등대 주변에 전시되어 있는 전 세계의 등대 모형과 이런 저런 글귀들을 읽으며 잠시 머물다간 지나간다. 이젠 마라도에 대한 호기심이 거의 사라졌다.

마라도는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섬이다. 이날 평일이었음에도 많은 낚시배가 섬 주위에 떠 있었고 해안 바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마라도는 섬 전체가 풀과 잔디로 덮여 있었다. 유독 눈에 띄는 식물이 방풍나물이었다. 사방에 지천으로 자라고 있어서 마라도 특산 식물로 알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 중심부엔 곰솔과 몇 종류의 잡목이 자라며 제법 울창한 숲이 형성되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 숲이 울울창창해져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명소가 될 것이다.

마라도 남쪽 끝에 가서야 대한민국 최남단을 알리는 비석을 보았다. 대한민국 최남단은 해양과학기지가 있는 이어도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북동쪽 해변에 안내 표지판이 하나 서 있다. 마라도 해녀들의 험한 물질을 지켜주는 할망당 (애기업개당) 안내문이다. 제를 올리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고 정성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때 제를 올린다고 한다.

하늘의 신이 땅의 신을 만나러 온다는 이 장군바위에서 주민들은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지낸다. 마라도의 주민들은 이 바위에 오르지 않지만 관광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올라 기념사진을 찍는다. 가파도에서 본 커다란 바위에는 이름이 있고, 그 위에 함부로 올라가면 바람으로 인해 바다에 나간 사람들이 험한 일을 겪는다고 한다. 마라도의 장군바위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오르기 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오래 전 마라도에 온갖 해산물이 넘쳐나던 때, 모슬포에 사는 이 씨 부인이 버려진 아이를 데려와 딸처럼 키우고 있었다. 이 아이가 여덟 살 되던 해 이 씨 부인이 아이를 낳자 데려와 기르던 아이는 애기업개가 되었다. 이 시절 마라도는 물살이 험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섬이었다. 물결 잠잠했던 어느 봄날 모슬포의 해녀들이 테우에 몸을 싣고 마라도로 향했다. 이 씨 부인이 물질하는 동안 아기를 돌보아야 할 애기업개도 함께 갔다.

커다란 달팽이를 생각하게 하는 아주 작은 성당이다.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었고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해녀들은 가지고간 양식과 물이 거의 다 떨어질 때까지 머물려 많은 해산물을 건져 올렸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고 테우를 바다에 띄우던 날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섬에 오르면 바다는 다시 잠잠해지고 테우를 띄우면 험해지기가 반복되면서 결국 먹을 것과 물이 바닥났다.

마라도의 등대는 섬 어디에서나 보인다. 우리나라 해양과학의 꿈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곳이다.

아침에 상군 해녀가 지난밤의 꿈 이야기를 했다. 애기업개를 두고 가지 않으면 모두 물에 빠져죽는다고 했다. 테우 주인도 같은 꿈을 꾸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어멍·아방 없는 아이니 두고 가야쿠다.” 테우를 물에 띄우고는 저쪽 바위 위에 있는 아기 기저귀를 가져오라고 애기업개를 보냈다. 애기업개가 뛰어가는 동안 테우는 마라도를 떠났다. 바닷가로 돌아온 애기업개가 가져온 기저귀를 흔들어도 테우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라도에도 섬 규모에 비해서는 꽤나 큰 교회가 있다. 그러나 인기척은 없었다.

삼년이 지나고 해녀들이 마라도에 갔을 때 애기업개는 유골이 되어 있었다. 해녀들은 애기없개를 장사지냈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이곳에 애기업개당을 만들어 그 원혼을 달랬다. 어떤 이는 그 때 애기업개 나이가 열네 살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더 어렸다고도 했다. 어른이 되지 못하고 죽은 애기업개는 처녀가 되고 할망이 되었다. 더러는 애기업개당이라 하고 더러는 처녀당이라고 하며 더러는 할망당이라고 한다.

마라도 북서쪽 바닷가 절벽 끝에 자리한 할망당은 버려진 아기가 커서 애기업개가 되어 살다가 이곳 마라도에서 희생된 인신공양의 흔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약한 자를 희생시켜 제 안녕을 얻으려 한다.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희생되었던 아이가 이제는 그들의 안녕을 지켜주는 신이 되었다. 그 억울하게 죽은 아이의 원혼을 어르고 달래며 사람들은 제 소원을 빈다.

사람들은 정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제를 지낸다고 한다. 사람들은 아무도 보호해주는 이 없던 아이를 희생시키고는, 이제는 자기들의 무사와 안녕을 비는 신으로 섬긴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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