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고양이집사’ 두 남자가 길고양이 따라나선 이유는

‘고양이 집사’ 두 남자가 길고양이 따라나선 이유는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13일 저녁 서울 경의선숲길에 있는 와인바 ‘비아토르’에서 작은 파티가 열렸다. 영화 ‘고양이 집사’(감독 이희섭) 개봉을 하루 앞두고 마련된 자리였다. 비아토르엔 고양이 7마리가 살았다. 그 중 ‘자두’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은 지난해 고양이 별로 떠났다. 자두는 살해됐다. 30대 남성 정모씨가 잔혹한 수법으로 자두의 목숨줄을 끊었다. 재판에 넘겨진 정씨는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동물학대로 실형을 선고받은 첫 사례다. 정씨는 출소를 앞두고 있다. 비아토르를 운영하는 A씨는 요즘 가게에 펜스를 단단히 치고 있다고 한다. 남은 6마리의 고양이를 지키기 위해서다. 

“기가 막히죠. 본인이 피해자인데….” 14일 서울 삼청로2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은성 피디가 들려준 얘기다. 조 피디는 반려묘 ‘해피’의 아빠이자 애묘인으로, 이날 개봉한 고양이 다큐멘터리 ‘고양이 집사’를 기획·제작했다. 한국·대만·일본의 길고양이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 조 피디의 작품이다. 당시 직접 카메라를 들었던 조 피디는 이번엔 또 다른 애묘 영화인 이희섭 감독에게 연출을 맡겼다. 카페에서 함께 만난 이 감독은 “처음으로 혼자 연출한 작품이라 두근두근하다”며 “코로나19로 상황이 좋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을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감독도 ‘냥님’을 모시고 사는 ‘집사’다. 반려묘 레니와는 ‘고양이 집사’를 작업하며 묘연을 맺었다. 부산 촬영을 마친 그에게 지인이 레니의 임보를 부탁했다. 이전 주인에게 유기됐던 레니는 여러 군데의 임보처를 전전하다 갈 곳을 잃은 상태였다. 10여년 전 첫 반려묘 히로를 떠나보냈던 기억 때문에 ‘고양이는 쳐다도 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이 감독은 히로와 꼭 닮은 레니에게 속수무책으로 마음을 내줬다. ‘임시보호’는 어느새 ‘임종까지 보호’가 됐다. 

조 피디와 이 감독, 두 애묘인은 2016년 여름 일본에서 처음 만났다. 말수 없던 이 감독이 고양이 얘기에 눈을 빛내자, 조 피디는 “나와 고양이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이 감독은 처음엔 거절했다. 하지만 조 피디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고양이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지침서 같았다. 그런 이야기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희섭, 이하 이)는 이유에서였다.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된 건 2018년 봄. 이 감독은 ‘고양이 마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던 강원 춘천 효자마을로 향했다. 조 피디는 이 감독에게 세 가지 원칙을 정해줬다. △사계절을 담는다. △개입하지 않는다. △기다린다. 조 피디는 이런 원칙을 지킬 수 있게 이 감독에게 최저생계비 이상의 월급을 보장해줬다. “가슴으로 낳고 지갑으로 키운 영화”(조은성, 이하 조)라는 농담이 나온 배경이다.

이 감독은 효자마을에 방을 얻어 1년여간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길고양이와 주민의 교감을 카메라에 담았다. 매일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중국집 사장님, 무뚝뚝해 보여도 길고양이 ‘레드’에게 기꺼이 밥과 물을 내주는 바이올린 공방 사장님, ‘고양이 마을’을 꿈꾸며 곳곳에 급식소를 설치하는 주민센터 직원…. 반면 길고양이를 마뜩잖아하는 주민들도 있다. 영화가 그들을 설득하길 바라냐고 묻자 조 피디는 “영화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순 없다”고 답했다. 다만 매일 길고양이들을 챙겨주는 이들에 대한 부채감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영화뿐’이라는 책임감이 자신들을 움직였다고, 조 피디는 말했다.

[쿠키인터뷰] ‘고양이집사’ 두 남자가 길고양이 따라나선 이유는효자마을을 떠난 카메라는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경기 성남 재개발지역, 부산 청사포 마을을 향한다. “인연과 묘연이 겹쳐서”(이) 찾게 된 곳이다. 인간 중심적인 도시 계획이 할퀴고 간 자국들은 영화의 화두를 선명하게 대변한다. 우리, 인간은 다른 생명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라는.

“길에서 사는 생명들과 공존해야 한다는 걸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아요. 하지만 그 생명들과 공존하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다른 사람과는 공존할 수 있을까요? 동물을 향한 칼끝은 언젠간 사람을 향해요. 죽이거나 때리거나 쫓아가지 않는 것. 그게 공존을 실천하는 기본이라고 생각해요.”(조)

“영화에선 편집했지만, 관악구청 앞에 마련된 길고양이 급식소에 간 적이 있어요.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데, 꼬마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지나가다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싶으면 여기에 줘라. 여기가 안전한 곳이다’라고 알려줬죠. 그 아이들이 커서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거야말로 올바르고 바람직한 미래이지 않을까요.”(이)

※ ‘고양이 집사’에 나온 노량진 옛 수산시장 철거과정에서 고양이 ‘달님’이가 쓰레기차에 섞여 없어져 상인분께서 찾고 계시다고 합니다. 턱시도를 입은 것처럼 검은색과 흰색 털이 섞인 고양이고, 실종 당시 빨간 목걸이를 하고 있었답니다. 혹시 노량진역 구 시장 근처에서 달림이와 비슷한 고양이를 보신 분은 연락 바랍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 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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