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투명인간”… 新위기세대 '청년' 가난의 여로 복지의 외면

[김양균의 현장보고] 2020 빈곤 리포트 ‘新위기세대’①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는 다음과 같이 끝맺음 된다.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우리사회에서 가난한 이들은 종종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망 사건, 2018년 증평 모녀 사건, 2019년 망우동 모녀 사건과 북한이탈주민 모자 아사(餓死) 사건 등 가난의 여로는 안타까운 결말로 끝맺음되곤 한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위기가구’가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왔다. 

정부는 위기가구 발굴을 위한 여러 정책을 연도별로 펴왔다. 문제는 정책 효과가 ‘신(新) 위기가구’ 혹은 ‘위기세대’의 양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사회구조와 심화하는 소득 불균형, 청년 실업 등은 새로운 신 위기가구를 계속 잉태시키고 있다. 이들은 모습을 드러내지도,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들은 불행한 결말을 향해 치닫는 가난의 여로로 끌려가고 있다.  

◇ 청년, 新위기세대 전락하다

기자는 피라미드에서 이영선(30·가명)씨를 만난 적이 있다. 피라미드는 이집트가 아닌 서울 강북에 있었다. 네트워크 회사 또는 다단계로 불리는 이곳에서 이씨는 신입 직원들을 교육시키는 역할이었다. 50평 남짓한 사무실을 가득 채운 수십 개의 의자와 분주하게 오가는 이들. 서류에 뭔가를 적는 사람도 보였다. 검은색 넥타이를 맨 남자는 쉴 새 없이 통화 중이었다. 앞에 앉은 초로의 사내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씨와의 첫 만남은 회의실에서였다. 대개 정장 차림이었다. 앞줄에는 젊은이들이 앉아 있었는데 뒤로 갈수록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검은색 정장치마와 흰색 블라우스 차림의 이씨는 뚜렷한 이목구비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마이크를 쥐고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많이 끌어 모을수록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다고 했다. 

돈, 수익, 성공이란 단어가 나올 때마다 누구는 박수를 치고, 또 다른 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마디도 놓칠세라 필기를 하는 청년들도 여럿이었다. 옆에 앉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경찰 서장을 했었다는 그는 기자에게 명함을 건네며 연락하라고 했다. 그는 은퇴 후 ‘진짜 할 일’을 찾았다며 웃었다. 

이씨에게 커피를 권하자 그가 흔쾌히 승낙했다. 곧 자신이 왜 다단계를 시작했는지 장광설을 풀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지금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고, 현재의 선택이 얼마나 잘한 것인지, 그러니 당신도 나를 따라 열심히 다단계에 충성하라는 것이었다. 이씨의 이야기는 길었고, 우울했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중등 임용시험을 준비했다. 학원비는 부담이 커 인터넷 강의로, 용돈과 생활비, 집세는 알바비로 충당했다. 그러다 지인의 강권으로 이곳에 온 후 결국 시험 준비를 포기했다. 처음에는 한, 두 달만 바짝 돈을 벌자는 심사였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금방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6개월, 1년, 3년이 지났지만 소득은 신통치 않았다. 되레 빚만 늘어났다. 

대출을 받고, 가족과 지인에게 돈을 빌려 쏟아 부었다. 그래도 통장에 들어온 돈은 한 달에 십만 원. 그럴수록 더 열심히 했다. 그녀는 사무실의 남는 방에서 잠을 잤다. 가족과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과정은 쓰지만 결과는 달다 이거에요. 그쪽도 몇 년은 죽었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보세요.” 이씨는 불만족스런 현실보다 달콤한 내일을 꿈꾼다고 했다. 이후 다시 그녀를 보진 못했다. 

빈곤은 그를 다단계 회사로 이끌었다. 그녀가 시험공부를 포기한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알바를 하면서 공부를 한다 쳐도 당락을 알 수 없는 희박한 싸움의 와중에서도 그녀의 생계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았다. 제로섬 게임과 다르지 않은 공무원 시험도 재정적 지원의 여부가 게임의 승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만약 기본소득이나 청년소득이 주어졌다면 이씨는 다단계 회사를 선택해 거액의 빚을 지지도, 시험공부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 사회 자산불평등 문제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하위 20%인 소득 1분위와 상위 20%인 5분위 사이의 자산격차는 감소 추세지만 절대차액은 증가하고 있다. 1분위와 5분위 격차의 절대금액은 지난 2012년 6억6000여만 원에서 2018년 7억7000여만 원으로 늘었다. 2019년 조사에는 절대금액이 8억 2000여만 원까지 증가했다. 이는 개인의 박탈감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씨와 같은 신 위기세대 청년들은 소득 하위 20%에도 끼지 못한다. 


◇ 밥 굶는 사람

박연서(38·가명)씨는 서울 아현동에 살다 최근 서울 대학동, ‘고시촌’으로 불리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재개발 전만 해도 싼 방이 즐비하던 달동네였다. 재개발 후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자 박씨는 더 싼 방을 찾아 서울 신림동으로 이주했다. 회사를 다니다 사법고시에 도전했지만, 1차 시험도 녹록치 않았다. 

그 사이 모아두었던 적금 1000만원은 사라지고, 그는 고향의 노모에게 용돈을 받아 생계와 시험 준비를 해야 했다. 신림동 고시촌으로 옮겨온 후 그는 ‘잠방’에 자리를 폈다. 보증금은 없고, 월세는 10만원이었다. 

외출 후 돌아와 불을 켜면 흩어지는 바퀴벌레, 아침마다 벌어지는 화장실 자리싸움에는 익숙해졌지만, 궁핍한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노모와 누이가 부쳐준 용돈으로 한 달을 살기란 빠듯했다. 지하철을 놓쳐 탄 택시비는 2만5000원. 박씨는 기사에게 3만원을 계좌이체해준다고 통사정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성난 택시기사의 문자메시지가 이어지다 경찰관의 전화를 받았다. 기사가 그를 사기로 고발했던 것이다. 

30만원을 주고 가까스로 합의가 됐지만, 용돈일이 돌아올 때까지는 보름 넘게 남아있었다. 1500원짜리 칼국수 한 그릇이 박씨의 하루 끼니 전부였다. 그마저도 돈이 곧 떨어지자 당장의 끼니가 문제였다. 주머니를 털어 1000원을 들고 박씨는 인근 상점으로 갔다. 3봉지에 1000원짜리 건빵을 산 후 건빵 가루를 탄 물을 마시며 일주일을 버텼다. 

그는 기자에게 “무료로 아침밥을 주는 곳도 경쟁이 치열해 허탕을 치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사법고시가 폐지되자, 박씨는 실낱같이 걸었던 마지막 희망을 잃어버렸다. 마지막으로 그를 보았을 때, 그는 공사장 일용직 자릴 알아보고 있었다. 

“난 투명인간”… 新위기세대 '청년' 가난의 여로 복지의 외면

◇ 정책 대상에 끼지도 못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9월 ‘복지 위기가구 발굴 대책 보완조치’를 발표했다. 복지 위기가구 찾고, 돌보고, 지원하는 체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긴급복지지원법, 사회보장급여법 등 관련법의 적용 대상에서 앞선 이씨와 박씨 같은 청년들은 빠져있었다. ‘위기가구’란 정의도 이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위기가구 실태조사에서 거주 등록이 되어 있지 않거나 장애 등이 있지 않은 청년층은 모니터링에서 빠지거나 제외되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주위에 힘들어 하는 이웃들이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펴봐주시고, 안타까운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실 것을 함께 부탁드린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언조차 박씨와 이씨를 비롯한 신 위기세대에게는 먼 이야기다. 이들 대부분은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 또 이웃이라 할 만한 주거 환경에서 거주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우리사회의 투명인간이나 마찬가지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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