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1년…오름의 황제 거문오름 (1)

58년 개띠 퇴직자의 제주도 1년 살기…스무 번째

거문오름 (제주시 조천읍 선교로 569-36)은 2005년 천연기념물 제444 호로 지정되었고 2008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주차장에서 세계자연유산센터로 가자면 전시되어 있는 다양한 기암괴석이 눈을 사로잡는다. 이 돌은 용암이 나무를 에워싼 후 나무가 타버리고 용암이 식어 굳으면서 나무 자리에 구멍이 생겨 형성된 것이다.

제주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불편을 느꼈던 부분이 대중교통이었다. 이는 제주의 교통 체계가 불편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한 내 탓이었다. 숲길과 오름을 걸을 때는 자동차를 가지고 가면 대부분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으니 아무 불편 없었다. 그러나 버스를 타야 하는 경우에는 매우 난감했다. 제주의 지리를 모르니 어느 방향의 버스를 타야 하는지 며칠 전부터 온갖 자료를 찾아보곤 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센터 건물은 거문오름의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낮게 지었다. 오른쪽은 사무용 공간이고 왼쪽은 지하층까지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스마트폰에 제주버스 앱을 설치하고부터는 버스 이용이 한결 편해졌다. 노선, 경로, 정류소, 주변정류소, 버스시간표, 즐겨찾는 노선과 정류장 등록 등의 기능이 있어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타야 할 버스를 찾는다. 자동차를 이용할 때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리고 조금 더 걷기는 하지만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고, 먼 거리 걷기를 하더라도 반드시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지 않아도 되니 편리함이 더 크다.

거문오름 탐방길은 태극길이라고도 한다. 시간과 체력을 고려해 1시간, 2시간 그리고 세시간 구간으로 운영한다. 1구간과 2구간까지만 해설사가 동행하며 3구간은 자유 탐방인데 거의 다 2구간에서 끝낸다.

요즈음엔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지도에도 버스 노선 번호 등이 제공되니 디지털 정보 검색에 불편이 없다면 한 번쯤은 버스를 이용해 느린 제주 관광을 시도해 볼만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 길지 않은 일정으로 제주를 방문해 최대한 여러 곳을 가보려 하니 렌터카 이용이 최우선의 선택이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방문할 때 여행지를 제주 북동부, 북서부, 남동부, 남서부, 또는 최소한 동부와 서부 정도라도 범위를 좁히면 자동차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제주에서 10월은 억새의 계절이다. 10월초부터 피기 시작해 11월까지 달리는 차 안에서, 오름에서 그리고 바닷가에서도 억새가 손짓한다. 거문오름 탐방로 입구에 피어난 억새꽃이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거문오름 탐방로 양쪽 경사면엔 삼나무가 울창하다. 삼나무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림녹화 사업으로 제주도에 식재되기 시작했다. 과거엔 거의 민둥산이었던 오름들이 지금은 대부분 울창한 삼나무 숲을 자랑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품을 떠나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은 부모 집으로 온 아이는 나보다 훨씬 더 씩씩하게 세상을 잘 헤쳐나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엔 이웃집 친구 엄마와 함께 갔어도 다른 아이들을 압도할 만큼 씩씩했으며, 함께 뛰어놀다 넘어져 다친 친구를 집에 데려와 소독하고, 상처 연고 바르고, 그 위에 멸균 거즈를 테이프로 고정해 줄 만큼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가르쳐 준 것들을 잊지 않았다.

거문오름엔 일단 들어가면 나무에 가려서 먼 풍경을 거의 볼 수 없다. 거문오름 탐방을 시작해 오른 첫 봉우리의 전망대에서 비로소 오름 밖의 경치를 본다. 제주의 10월은 여전히 푸르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한라산이 그 품에 오름들을 안고 있다. 
거문오름 분화구 건너편 봉우리 뒤로 수많은 오름이 보인다. 높은오름, 다랑쉬오름, 백약이오름 등 제주 동부의 아름다운 자연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오름들이다.

그러나 아이는 늘 예상한 대로만 행동하지는 않는다. 어느 날엔가 퇴근 시간이 가까운데 아이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보통은 학교에 갔다 오면 전화를 해서 다음날 준비물을 알려주고 퇴근길에 문방구에 들러 사서 집에 들어가는 것이 일과였는데 이날은 전화도 없었다. 당시 병원은 퇴근 시간이 오후 5시였는데 등에 땀이 흐르도록 뛰어 집에 와보니 아이가 없었다. 놀이터에도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는데 이웃과 아래층의 아이 친구 엄마들이 찾아와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거문오름 제1 봉의 전망대를 지나 분화구에 내려서면 큰 키의 억새밭이 반긴다. 제주의 억새는 10월 중순 이후부터 만개해 그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여기서 탐방 1구간이 끝나고 일부는 탐방로와는 다른 출구를 통해 돌아간다.
거문오름은 제주도의 다양한 자연 생태계를 거의 모두 보여주고 있다. 분화구 내 곶자왈은 여러 단계가 보이는데 이곳은 바위 무더기 위에 듬성듬성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하는 비교적 초기의 곶자왈 숲으로 보인다. 떨어진 낙엽을 토양 삼아 덩굴들이 자라기 시작하면 이미 자리잡은 나무들과 뒤엉켜 눈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숲이 된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찾아 나서고도 꽤 시간이 흐른 뒤에 아이들이 해해닥거리며 들어왔다. 세 아이가 저마다 책도 한두 권씩 들고 있었다. 서둘러 두 아이를 집에 데려다 주고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정독도서관에 갔었단다. 아이 엄마가 만들어준 도서관 카드로 어린이 책 빌리고, 급할 때 아빠에게 전화하고 쓰라며 책꽂이에 두었던 비상금을 꺼내 가서 아이들과 군것질까지 하며 나름 신나게 놀다가 왔다. 아이들이 지하철을 몇 정거장 타고 가서 안국역에서 내려 정독도서관까지 걸어갔던 신나는 모험을 하고 온 그날 이후 이웃집 엄마들이 아이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거문오름 분화구 지대는 비옥한 토지여서 이곳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전까지 주민들의 경작 활동이 있었다. 숯가마는 그 이전, 60~70 년대의 흔적으로 보인다. 머지않아 숯가마,  방목, 농사 등 사람이 개입된 모든 흔적을 나무와 풀이 깨끗이 지울 것이다. 

최소한 하루 전에는 예약해야 하고 당일 예약은 받지 않는다. 예약 절차도 그리 간편하지는 않다. 예약된 시간 전에 도착해서 예약자 신분을 확인하고 입장권을 구매하면 입장이 가능하나 반드시 해당 시간에 배정된 해설자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오전 9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오후 1시까지만 한 회당 최대 50명씩 450명만 입장한다. 매주 화요일은 이마저도 쉰다.

탐방로가 분화구를 거쳐 건너편 능선에 올라서면 8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가 이어지고 그 끝에 탐방로 시작점이 있다. 이 구간은 소나무, 참나무, 제주의 사철 푸른 나무와 덩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린 숲이다.

한겨울 눈이 와도 등산용 지팡이와 아이젠 착용은 금지되어 있으며, 비 오는 날 우산 사용 역시 금지되므로 비옷을 입어야 한다. 물 이외에 어떤 종류의 식음료도 지참할 수 없으므로 출발하기 전 사물함에 보관해야 한다.

수국은 제주에선 7월에 만개하는 꽃이다. 거문오름의 환경 때문인지 수국 외에도 여름꽃이 10월 초에도 피고 있었다.

거문오름 한 번 보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래도 방문자는 줄지 않는다. 꽃피는 봄에는 이곳 방문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제주 여행 일정을 확정한 다음 이곳 방문 예약을 하려고 보면 예약은 일찌감치 마감되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양하는 잎이 생강과 비슷하다. 양하꽃은 8월~9월에 거의 땅바닥에 붙어서 피는데 꽃이 벌어지기 전의 봉오리를 식재료로 사용한다.

거문오름은 어떻게 해서라도 한 번은 가서 걸으며 보고 들을 가치가 있다. 거문오름은 2005년 천연기념물 제444호로 지정되었고, 3년 후 거문오름, 만장굴, 용천동굴이 포함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와 성산일출봉 그리고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가시엉겅퀴는 제주의 오름에서 7~8월에 흔한 꽃이다. 거문오름의 이 가시엉겅퀴는 마치 제철을 맞은 양 꽃을 피웠다.

방문 예약부터 까다로운 이유는 국내 유일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라고 해설사들은 말한다. 가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없이 걷다가 와야 할 곳이다.

물봉선은 산지의 물가나 습지에서 많이 보인다. 마지막 꽃을 피우고 있다.

거문오름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있다. 그 하나는 오름의 흙이 검은 데다 숲이 우거져서 오름이 검게 보인다 하여 ‘검은오름’으로 불리다가 한자를 넣으면서 거문오름이 되었다는 설명이 있다. 거문오름은 한자로 巨文岳(거문악)이라 표기한다. 제주 고유어로 불리던 많은 오름들이 어느 때부터인지 한자 이름을 얻으면서 그 이름의 유래를 밝힐 수 없게 된 경우들이 있는데 거문오름은 예외인 듯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거문오름’을 ‘검은오름’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꿩의다리로 보이는 이 꽃의 정상적인 개화시기는 6~7월이지만 거문오름에선 10월인 듯하다. 

또 다른 설명에 따르면 신(神)이라는 뜻을 지닌 ‘검’이라는 단어에서 ‘거문’이 유래했다고 하면서, 신령스런 산이라는 의미로 거문오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과거 인근의 주민들이 거문오름을 거물창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여기서 ‘창’은 분화구를 뜻한다고 하니 이도 남득할 만한 설명이다.

참나물꽃이다. 이른 봄 밥상에서 상큼한 향을 내는 나물이 꽃도 이리 예쁠 수가 있다. 6~8월이 제철인 꽃이다.

거문오름에 처음 간 때는 10월 초였다. 탐방 시간을 오전 9시로 예약하고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 주차장은 아직 한산했다. 마치 만화영화에서 본 듯한 납작하고 날렵한 건물이 보인다. 세계자연유산센터다. 외계 비행선처럼 생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도넛 모양의 건물이어서 하늘을 한 번 더 보았다.

으름이다. 저 열매가 충분히 익어 벌어지면 하얀 속에 달작지근한 과육을 보여준다. 이 숲에서는 새들이 모두 차지할 듯하다.

이날 9시에 탐방객 정원을 거의 다 채워 출발했다. 해설사가 다시 간단한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거문오름으로 출발하는데 이제 피어나고 있는 억새꽃이 햇빛에 반짝인다. 그 뒤로 보이는 오름 길에 짙은 삼나무 숲 그늘이 검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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