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그 세상에선 설리가 하고 싶은 대로”

“그 세상에선 설리가 하고 싶은 대로”

사진=쿠키뉴스DB

가수 겸 배우 설리의 비보를 전하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생전 그를 괴롭히던 이들 가운데엔 ‘기자’라는 존재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나답게’ 살길 바랐던 청년에게 우리는 얼마나 서슬 퍼런 날을 세웠던가요.

설리는 1994년 3월29일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최진리. 2005년 SBS 드라마 ‘서동요’에서 어린 선화공주 역을 연기하며 연예계에 발을 들였죠. 이 작품으로 주목받아 SM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게 됐고, 4년 뒤 그룹 에프엑스(f(x)) 멤버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에프엑스는 독특한 팀이었습니다. 일렉트로닉 댄스 트랙 위에 난해한 가사를 늘어놓은 음악도 독특했습니다만, 멤버들의 면면도 그랬습니다. 시니컬한 표정으로 힘 있게 춤추는, 남성 아이돌의 전유물 같던 캐릭터를 제 것으로 만든 크리스탈이 있었고, 아예 성별의 경계를 지워낸 엠버가 있었죠. 묘기에 가까운 안무를 척척 소화해내던 빅토리아와 묘기에 가까운 고음을 시원하게 내지르던 루나도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설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뽀얀 피부와 환한 미소 덕분에 ‘복숭아’라는 애칭으로 불렸지만, 복숭아 같은 이미지로 정의되길 원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쓴 시에서 설리는 ‘나보다 예쁜 사람이 많은데 왜 나만 귀여워하고 예뻐할까’라고, ‘사람들의 그런 점이 싫다’고 말했습니다. 자라서도 그는 ‘미소녀’에게 요구되는 통념을 거부했습니다. 대상화된 존재이길 거부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그 삶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말하고, 또 쉽게 잊었습니다. 그가 연인과의 사생활을 드러내면 ‘공인으로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지만, 정작 그의 사생활이 그의 동의 없이 까발려졌다는 사실은 쉽게 잊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신체를 드러내면, 역시나 ‘공인으로서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면서도 정작 그의 신체를 성적인 맥락으로만 보는 자신들의 시선은 쉽게 잊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에는 언론도 포함돼 있습니다. 설리가 관심 인물이라는 이유로 너무 쉽게 그를 도마 위에 올렸습니다. 점잖은 척 얄팍한 이유로 ‘기행’ ‘논란’ 따위의 단어를 가져다 붙였습니다. 정작 그를 향한 지적의 모순됨에는 눈이 먼 채로 말입니다.

‘나는 다르다’라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 비극의 원인을 찾아 책임을 추궁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늦었지만, 사과하고 싶습니다. 그의 화제성에 기생하던 지난날들에, 규범이라고 생각했던 그릇된 잣대에, ‘설리다움’에 대한 몰이해에…. 그룹 카라 출신 가수 겸 배우 구하라의 말대로 “그 세상에서 진리가 하고 싶은 대로” 지낼 수 있길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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