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女心) 공략 나선 씨름, 다시 한 번 ‘으랏차차’

여심(女心) 공략 나선 씨름, 다시 한 번 ‘으랏차차’한국 전통 스포츠 씨름이 시원한 ‘뒤집기’ 한 판을 노린다.

과거 씨름의 인기는 ‘국민 스포츠’ 야구에 비견될 정도로 대단했다. 현재는 방송인으로 익숙한 이만기라는 스타 선수의 등장으로 정점을 찍은 뒤 ‘신성’ 강호동과의 라이벌 구도로 90년대 초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1988년 천하장사 결승전 시청률은 68%에 달했다. 

하지만 기술 씨름의 쇠퇴, 연맹의 내홍 등이 겹치며 몰락했다. 한때 10개에 달했던 프로팀은 전부 사라졌고 이젠 지자체 소속의 실업팀 위주로 명맥만 이어가는 처지가 됐다.

떨어진 인기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부흥을 노렸지만 씨름계는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젊은 층은 물론이거니와 중장년층의 향수조차 자극하지 못했다. 

그런데 평범한 씨름 동영상 한 편이 상황을 반전시켰다.

지난해 8월 학산배 전국장사 씨름대회 단체전 김원진과 황찬섭의 결승전 경기를 담은 7분 가량의 동영상은 최근 조회수가 급상승하더니 8일 기준으로 193만회를 돌파했다. 댓글은 1만5000여 개가 달렸다. 영상 속 주인공인 두 선수의 SNS 팔로워 수도 덩달아 늘었다. 

씨름 선수를 향한 젊은 층의 편견을 깬 것이 주효했다. 흔히 씨름 선수 하면 ‘통통한 몸매’를 떠올리기 쉬운데, 75kg 이하 ‘경장급’인 이들은 근육질의 다부진 몸매에 준수한 외모를 자랑한다. 영상을 클릭하면 “이 좋은 걸 할아버지들만 보고 있었네”, “완전 아육대(아이돌 육상대회) 조선 버전 아니냐” 등 선수들의 외모를 칭찬하는 댓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씨름을 향한 관심도가 높아지자 대한씨름협회도 서둘러 노를 젓고 나섰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씨름 영상을 올리며 홍보에 나섰고 KBS와 손을 잡고 프로그램 제작에 들어갔다. 씨름판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11월 말 첫 방송을 목표로 현재 촬영에 들어간 상태다. 기술 씨름의 진면목을 보여줌과 동시에 씨름 선수들의 인간적인 매력까지 어필하겠다는 각오다.

▲ 스모는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나

미디어와 손잡은 씨름계의 행보는 일본의 전통 스포츠 스모가 위기를 극복한 방식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스모가 국민적인 인기를 유지하게 된 데에는 미디어의 도움이 컸다.

스모도 씨름과 마찬가지로 큰 위기가 있었다. 1989년부터 1997년 여름 대회까지 666일 연속 만원 관중 기록 등을 이어가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2003년 다카노하나가 은퇴한 이후 관심도가 줄어들었다. 설상가상 2011년 터진 승부조작 사건으로 팬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위기의식을 느낀 스모계가 꺼낸 해법은 미디어를 이용한 팬들과의 교감이었다.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선수들의 일상 사진을 공유하며 팬들과의 거리감을 좁혔다. 선수들도 팬들과의 스킨십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공영방송 NHK는 꾸준히 스모 경기를 중계하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이는 결과적으로 평균 관중의 증가와 더불어 여성팬의 유입을 불렀다. 스모 선수를 뜻하는 ‘리키시’와 ‘여성’을 합친 ‘리키조’라 불리는 여성팬 무리가 스모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스모를 향한 여성팬의 관심이 날로 뜨거워지자 ‘스모팬’이라는 여성 전용 잡지까지 나왔다. 리키조들은 SNS에 스모와 관련된 게시글을 포스팅하면서 적극적으로 스모 홍보에 힘썼다. 이러한 선순환이 반복되면서 스모는 위기를 극복, 국민 스포츠로서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 여심(女心) 공략이 해법 될지도

여성팬들이 스포츠 흥행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미 국내에서도 수차례 입증됐다. 씨름의 실낱같은 부흥 조짐이 여성들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은 그래서 의미있다. 

프로야구가 2011년 이후 8년 연속 600만 관중을 돌파한 데에는 여성 관중의 힘이 컸다. 700만 관중 시대를 연 2012년 당시 여성 야구팬의 비율은 40.7%에 달했다. 최근 젊은 층에서 큰 인기를 끌며 국내 온라인 최고동시·평균 시청자 기록을 경신한 롤 e스포츠는 여성 관중 비율이 41.5%다. 유료 관중 200만 명을 돌파하며 황금기를 맞은 프로축구의 올 시즌 흥행도 여성팬의 유입이 있어 가능했다. 씨름 역시 다양한 마케팅으로 여심 공략에 성공한다면 다시 한 번 날갯짓을 할 수 있다.

씨름협회는 마케팅에 힘쓰면서도 씨름의 경쟁력 강화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대한씨름협회의 이승삼 사무처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황찬섭 선수의 경기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젊은 층들에게 씨름을 어필할 생각”이라며 “KBS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잘 될 경우 선수별 이모티콘 등을 만들어 배포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밖에도 체급을 더욱 세분화해서 기술로 점철된 씨름의 진정한 묘미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고 전했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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