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사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순간

‘사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순간

[쿡리뷰] ‘사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순간

실패한 실험이다.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오컬트 장르를 기반으로 가족 드라마, 액션, 히어로 장르 등을 섞었으나 뭘 본 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재밌는 오컬트 장르가 가능하다는 믿음, 출연 배우들에 대한 믿음, 전작 ‘청년경찰’을 만든 감독에 대한 믿음이 단번에 무너졌다.

‘사자’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가는 용후(박서준)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선한 경찰이었던 아버지를 갑자기 잃은 용후는 그 분노와 원망을 종교에 쏟아낸다. 성인이 된 용후는 격투기 챔피언이 되어 돈과 명예를 얻지만, 어느 날 손바닥에 생긴 원인 불명의 상처로 밤마다 고통 받는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바티칸에서 온 구마 사제 안 신부(안성기)를 찾아간 용후는 손에 난 상처에 특별한 힘이 있음을 깨닫는다.

매력적인 설정이다. 용후는 등장하는 순간부터 드라마와 액션을 온 몸에 두르고 있는 인물이다. 종교에 대한 믿음을 버린 그가 구마 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설정 자체가 흥미롭다. 그와 반대의 길을 걷는 미스터리한 악인 지신(우도환)과의 대결과 흥미진진하다. 마치 영화 ‘검은 사제들’의 신선함과 영화 ‘곡성’의 대결 구도를 적절히 섞은 느낌이다. 영화 ‘존 윅’의 스타일리시한 액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것만으로도 129분의 상영 시간을 지루하게 않게 볼 충분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소재와 장르의 매력을 충분히 살리는 것엔 실패했다. 악마에 씐 사람들의 모습을 공들여 충격적으로 구현해냈지만 정작 구마 의식에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과정이나 의미를 짚기 보다는 의식의 결과에 집중하며 이야기의 동력으로 소모한 탓이다. 복잡한 내면을 갖고 있을 법한 용후의 캐릭터도 단순하게 소모된다. 종교에 대한 인식 변화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 자신의 직업과 미래에 대한 생각이 뒤엉켜 있지만 그것이 영화의 주제로 이어지진 않는다. 결국 악인을 때려잡는 선택을 하지만, 그의 내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고 어떤 의미의 선택인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좋은 재료가 많지만 잘 요리하지 못한 모양새다.

전반적인 균형도 잘 맞지 않는다. 용후는 너무 심각하고, 안 신부는 너무 따뜻하고, 지신은 너무 악하다. 용후가 등장하면 귀신이든 사람이든 이기지 못할 것이 없을 것 같고, 안 신부가 등장하면 CF과 과거 영화들에서 보던 따뜻한 미소에 웃음이 터진다. 지신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심각하고 나쁜지 알 수 없고 궁금증도 생기지 않는다.

이것저것 모두 건드려 본 ‘사자’는 결국 산으로 갔다. ‘사자’를 보면 ‘검은 사제들’과 ‘곡성’이 얼마나 잘 만든 영화인지 확인할 수 있다. 배우 박지현과 아역 배우 정지훈의 악마 들린 연기는 주목할 만하다. 15세 관람가. 오는 31일 개봉.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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