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하나도 안 웃긴 ‘아내의 맛’의 ‘전라디언’

하나도 안 웃긴 ‘아내의 맛’의 ‘전라디언’

[친절한 쿡기자] 하나도 안 웃긴 ‘아내의 맛’의 ‘전라디언’

예능 프로그램에 또 지역 비하 표현이 등장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방송사는 해당 용어의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몰랐는지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의 용어는 지난 25일 방송된 ‘아내의 맛’에서 등장했습니다. 트로트 가수 송가인이 가족을 만나기 위해 고향인 전남 진도를 방문하는 과정에서 그를 보고 깜짝 놀라는 송가인 아버지를 ‘전라디언’이라는 자막으로 표현한 것이죠.

전라디언은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에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전라도’에 영어 접미사 ‘-ian’을 붙여 탄생한 단어로 전라도 지역을 별도의 국가로 구분짓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전라도인과 인디언을 합쳐 비하하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이를 두고 논란이 일자 TV조선 측은 26일 “제작팀은 이 용어가 일베 사이트에서 시용되는 용어로 인지하지 못한 점을 사과드린다. 앞으로 더 신중하고 주의깊게 방송을 살피겠다”고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사과문을 읽고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입니다. “절대 실수가 아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넣었냐”, “몰랐다면 더더욱 자격이 없다”는 등 격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베에서 사용되는 비하적 표현이 방송을 탄 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5월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은 방송인 이영자가 어묵을 먹는 장면에서 세월호 뉴스특보 이미지를 사용해 물의를 빚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전지적 참견 시점’은 7주간 결방하기도 했죠.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다 해도 제작진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었습니다.

또 최근 송가인과 같은 TV조선 ‘미스트롯’ 출신 트로트 가수 홍자가 지역 행사에서 전라도 비하 발언을 해 몸살을 겪기도 했습니다. 홍자는 지난 7일 무대 직후 “전라도 사람들은 실제로 뵈면 (머리에) 뿔도 나 있고 이빨도 있고 손톱 대신에 발톱이 있고 그럴 줄 알았다”며 “여러분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주셔서 힘이 나고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으로 논란이 커지자 홍자는 지난 10일 자신의 SNS를 통해 “적절치 않은 언행으로 많은 분들게 불쾌감을 드려 죄송하다. 변명의 여지 없는 저의 실수이며 실망하셨을 분들께 사과드린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야 했죠.

‘아내의 맛’의 자막 사건으로 전라디언의 유래를 알게 된 시청자도 많습니다. 그만큼 지역 비하 용어가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는 얘기기도 하죠. 그렇다고 비하 발언이 방송에까지 등장하는 건 단순히 몰랐다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집에서 쉬면서 웃기 위해 보던 시청자들이 느꼈을 불쾌감과 프로그램과 방송사에 대한 무너진 신뢰는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요. 의미를 잘 알지도 못하는 단어를 사용해야 했을 정도로 자막에 쓸 어휘가 부족했는지, ‘전라디언’이 정말 재밌는 표현이라 생각했는지 의문입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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