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선 환자당 최소 10분, 현실은 왜 다른가요?"

잇단 간호사 죽음으로 정부 대책 마련나섰지만...현장선 볼멘 소리

"교과서에선 환자당 최소 10분, 현실은 왜 다른가요?"

서울의료원에서 근무하다 3개월만에 그만뒀다는 간호사 A씨의 말이다. 14일 '연이은 간호사의 죽음이 가져온 변화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A씨는 "학교에서 배우는 '간호사 핵심술기 20가지' 교과서에는 기본적인 간호사의 업무 프로토콜과 소요시간이 담겨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정부도 아무 노력을 하지 않는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그는 "혈압, 맥박, 체온 측정에 교과서상으로는 환자 한 명당 최소 10분이다. 적어도 그 시간을 지킬 수 있도록 인력을 배치해줘야 하지 않느냐"며 "저는 운이 좋게도 환자 10명을 담당했지만 동료들은 환자 30명을 보기도 했다. 왜 정부는 현실과 교과서를 일치시킬 수있도록 노력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故 박선욱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와 故 서지윤 서울의료원 간호사.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젊은 두 간호사의 잇단 사망으로 간호계 '태움'과 직장 내 괴롭힘, 그리고 과로 등 구조적 문제가 수면 위에 올랐다.

정부와 의료계는 대책 마련에 나서고, 일부 변화의 바람도 불었다.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3월 故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판결했다. 보건복지부도 최근 간호정책을 전담하는 간호정책 특별전담조직(TF)을 신설해 간호사의 근무환경 개선 등 간호 인력 수급과 업무범위 조정 등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현장 간호사들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를 낸다. 우선 박 간호사와 서 간호사의 죽음과 관련 제대로된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이 높다.

박 간호사의 산재 문제를 담당한 권동희 공인노무사는 "근로공단 판정위는 사업주, 동료 조사 등 적극적인 조사가 부족했으며 향후 지침에 있어서도 이를 강제할 수단이 사실상 없다. 또 인력 충원, 업무시간 준수, 연장수당 지급 등 사업장의 현실적 조건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고 서지윤 간호사 시민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서울의료원 김경희 간호사도 "서울시는 여전히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유족조차 만나주지 않았다"며 "진상대책위가 꾸려진 지 50일이 지나도록 서지윤 간호사와 함께 일한 동료간호사들의 인터뷰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간호사 관련 대책에도 쓴소리가 나왔다. 최원영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간호사는 "복지부가 내놓은 간호사 정책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교육전담간호사 배치에 76억을 배정했는데 정작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세미나가 아니라 현장에 특화된 실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캐나다같은 선진국에서는 간호사 교육에 1년을 소요한다. 이에 반해 우리는 1년간 상근으로 일한 7년차 간호사가 중환자실로 발령날 때 겨우 3~6일 OT를 주는 식이다. 이렇게 투입돼 실수를 하면 모두 간호사 책임이 된다"고 호소했다.

또한 최 간호사는 "고용노동부는 박선욱 간호사 산재 판정 이후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간호사를 자살로 몰아가는 환경임을 인정만 하고 후속조치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관련 정책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피겠다는 입장이다. 고병곤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 사무관은 "고용노동부는 간호사 직무스트레스 측정 도구를 개발해 실제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직무스트레스가 심한 사업장에 대해 컨설팅 지원도 하고 있다"고 고용부 차원의 노력을 소개했다. 이어 "병원이나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하반기에 특별기획감독을 예정하고 있다. 특히 서울의료원과 서울아산병원 등 자살사고가 있는 곳은 특별감독에 준하여 자세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승령 보건복지부 간호정책 TF 팀장은 "간호사 배치기준 강화는 일자리위원회를 통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시범사업도 진행하고 있다"며 "다만, 배치기준을 강화했을 때 상급기관으로 쏠림이 강화될 수있다는 우려가 있다. 간호조무사와 간호사의 업무범위 조정과 연결된다. 따라서 배치기준 강화와 함께 보건의료직역간 업무범위 조정을 동시에 진행하려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소병원과 상급병원에서 어느 정도의 인력이 필요하고, 현장 활동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 오는 10월에 시행되는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통해서 최대한 현장과 연계하는 방향으로 시행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故 박선욱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는 지난해 2월 설연휴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입사 3년차 간호사의 비극적 죽음은 의료현장의 '태움'을 알린 계기가 됐다. 

올해 1월에도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의료원의 故 서지윤 간호사는 유서에 '같은 병원 사람들은 조문도 오지 말라'고 적어 '태움' 논란이 격화됐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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