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장자연·김학의 사건 그리고 ‘냉장고 속 여자들’

장자연·김학의 사건 그리고 ‘냉장고 속 여자들’

[친절한 쿡기자] 장자연·김학의 사건 그리고 ‘냉장고 속 여자들’만화 ‘그린랜턴’의 주인공은 악당에 의해 여자친구를 잃었습니다. 여자친구는 잔인하게 살해돼 냉장고 속에서 발견됐죠. 주인공은 분노의 힘으로 악당을 물리치고 영웅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남성 캐릭터의 각성을 위해 살해당하거나 고통을 받는 여성 캐릭터는 드라마나 소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냉장고 속 여자들’입니다. 냉장고 속 여자들은 쉽게 소비되고 쉽게 잊혔습니다. 이들의 죽음으로 남은 것은 남성 캐릭터들의 각성된 능력뿐이었습니다. 이는 단지 만화·드라마 속 이야기에 불과할까요. 

최근 고(故) 장자연씨 사건과 ‘별장 성폭력’ 의혹을 받는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다수의 국민들이 잊혔던 사건에 대해 분노했고 진상규명을 바라고 있습니다. 18일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고 장씨의 수사 기간 연장 및 재수사를 청원하는 청원이 63만명을 돌파했습니다. 게재된 지 일주일 만입니다. 김 전 차관 사건의 피해자 신분 보호와 엄정수사를 요구하는 청원도 닷새만에 11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습니다. 검찰 수사에 대한 규탄이 일고 있습니다. 여·야에서는 “정치적 음해다” “해명해야 한다”는 각축전이 벌이지고 있죠. 

고 장씨 사건은 지난 2009년 종결됐습니다. 고인이 죽기 전 룸살롱 술접대와 성상납 등을 강요받으며 감금, 폭행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수사가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술접대 강요 혐의를 받은 피의자들은 모두 무혐의 처리됐습니다. 고 장씨의 소속사 관계자만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습니다. 김 전 차관은 지난 2013년 강원도 원주의 한 별장에서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당시 김 전 차관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성관계 동영상이 증거로 제출됐으나 “얼굴을 특정할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이후 피해 여성들이 협박과 폭력에 의해 성접대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이렇다 할 처벌은 없었습니다. 

분노는 무언가를 바꾸는 원동력입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도려내고 정의를 바로세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가해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도 필수적입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의 설치 등이 답으로 제시될 수도 있겠죠. 

다만 선행돼야 할 것은 희생된 여성들에 대한 애도와 반성, 재발방지 약속입니다. 여성을 ‘도구’로서 보는 시선이 변화해야 합니다. 이러한 움직임 없이는 성접대라는 이름의 성폭력에 희생되는 여성들이 또다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여성을 짓밟고 처벌받지 않는 권력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습니다.

고 장씨와 김 전 차관 사건을 규명하는 방식이 곧 여성 인권의 바로미터가 될 것입니다. ‘정쟁’으로 취급하며 사건을 절하하는 목소리, ‘물타기’를 통해 어물쩍 넘기려는 시도는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절반, 그리고 그 이상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그 이후의 변화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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