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색 풍선’과 20년의 기적…세월 딛고 돌아온 오빠들

‘하늘색 풍선’과 20년의 기적…세월 딛고 돌아온 오빠들

음악 앞에서 세월은 때로 무색하다. 좋은 음악은 시간을 견디고 남아 다음 세대로 구전돼 영생하고, 다른 이의 입을 빌려 새 생명을 얻기도 한다. 때론 음악이 헤어진 이들을 다시 만나게 만들기도 한다. 신곡으로 돌아온 그룹 지오디와 아일랜드 출신 그룹 웨스트라이프가 그 예다.

돌아온 ‘국민 아이돌’ 지오디

칠레 산티아고 대성당 앞. 장성한 남성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아낸다. 양팔로 동생들을 끌어안은 맏형이 “우리 이 기분 잊지 말자”고 다독인다. 우느라 목이 멘 채 그는 말한다. “우리는 하늘이 축복해준 인연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못 도망쳐.” 지오디의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을 담은 JTBC ‘같이 걸을까’의 마지막 장면이다.

1998년 가요계에 발을 디딘 지오디가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음반 ‘덴 & 나우’(THEN & NOW)를 지난 10일 냈다. 타이틀곡 ‘그 남자를 떠나’는 지오디를 탄생시킨 가수 박진영이 작사·작곡·편곡했다. 지오디의 예전 히트곡을 연상시키는 미디엄 템포 알엔비(R&B)에 아스라하게 퍼지는 코러스로 세련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지오디는 전 세대를 아우른 몇 안 되는 아이돌 그룹 중 하나다.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다른 아이돌 가수들이 강렬한 댄스곡을 주로 선보였던 것과 달리, 서정적인 알엔비 음악으로 감성을 자극한 덕분이다. ‘지오디의 육아일기’ 등에서 보여준 친근한 모습도 인기에 밑거름이 됐다. 데뷔곡 ‘어머님께’부터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애수’, ‘거짓말’ 등 히트곡도 많다. 정규 4집을 냈던 2001년엔 지상파 3사 가요시상식에서 대상을 독식했다.

아픔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준형의 퇴출 위기를 견뎌냈을 만큼 끈끈한 팀워크를 자랑했던 이들은 2004년 윤계상이 탈퇴하며 4인조가 됐다. 멤버들이 연기, 뮤지컬 등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자연스럽게 팀 활동이 뜸해지기도 했다. 이들이 다시 하나가 된 건 데뷔 15주년을 맞았던 2014년. 당시 발표한 정규 8집을 시작으로 지오디는 공연과 음반을 통해 꾸준히 팬들과 만나왔다.

“20년의 기적.” 지오디는 새 음반 첫 트랙 ‘20’에서 지난 시간을 ‘기적’에 비유했다. 음반 곳곳에서 스스로에 대한 다독임과 자부심이 묻어난다. 멤버들이 프로듀서가 돼 옛 히트곡들을 리메이크하고, 아이유 헨리 조현아 양다일의 목소리를 통해 ‘길’을 되살렸다. 데니안은 지오디의 역대 발표곡과 멤버들의 솔로곡, 윤계상의 드라마 출연작 등의 제목으로 가사를 쓴 ‘눈을 맞춰’를 듣다보면 저절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수많은 히트곡의 제목을 헤아리다보면 ‘국민 아이돌’이란 명성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하늘색 풍선’과 20년의 기적…세월 딛고 돌아온 오빠들‘국민 팝송’ 주인공 웨스트라이프, 8년 만에 신곡 발표

웨스트라이프가 2000년 발표한 ‘마이 러브’(My Love)는 한국인이 특히 좋아하는 팝송이다. 부드럽고 포근한 목소리와 분위기가 한국인의 정서와 잘 맞아서다. 쉬운 단어와 문법으로 구성된 가사 덕분에 중·고교 영어 수업에도 자주 활용됐다. ‘아이 레이 마이 러브 온 유’(I Lay My Love On You), 브라이언 케네디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 등도 인기였다.

1999년 데뷔해 최장수 유럽 보이밴드 중 하나로 꼽히던 웨스트라이프는 2012년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했다가 지난해 재결합했다. 지난 10일 발표한 ‘헬로 마이 러브’(Hello My Love)는 무려 8년만의 신곡이다. 영국의 인기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이 이 곡의 작사·작곡에 참여했다.

제목이 유사한 탓에 ‘헬로 마이 러브’가 ‘마이 러브’와 비슷한 발라드일 것이란 추측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웨스트라이프는 업 템포의 팝을 들고 돌아왔다. “더 진화한 모습으로 돌아와 웨스트라이프의 음악을 재창조하고 싶었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빠르게 쿵쿵 대는 리듬이 심장을 울리고 청량한 기타 소리가 질주감을 더한다. 팀의 메인보컬인 셰인 필런은 “우리는 ‘웨스트라이프 2.0’ 버전을 원한다”고 변화의 이유를 설명했다.

‘헬로 마이 러브’는 웨스트라이프의 새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들은 올해 안에 새 음반을 낼 계획이다. 아울러 오는 5일부터 팀 결성 20주년을 기념해 영국과 아일랜드를 순회하며 ‘더 트웬티 투어’(The Twenty Tour)를 연다. 유니버설뮤직에 따르면 이번 투어의 티켓은 48시간 만에 40만 장 팔렸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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